민수아

오색물고기 | M87수인

by 영하




수아는 계단실을 통해 이곳에 들어온다. 나는 데이타임, 수아는 나이트타임 근무이다. 나의 업무는 대부분 M87에 오는 손님들과 함께하는 것이었고(아주 가끔 찾아오지만) 수아는 미술관과 작품을 보수하고 유지한다.


민수아. 그는 언제나 단단한 느낌을 주었다. 마치 매우 작지만 질량이 높은 블랙홀 같은 느낌이다. 나와 비슷한 작은 체구에 그가 갖고 있는 단단함은 항상 나와의 이질감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오전 9시(사시巳時)부터 오후 7시(유시酉時)까지, 수아는 오후 9시(해시亥時)부터 오전 7시(묘시卯時)까지 근무한다. 그래서 마주 칠일이 거의 없다. 언젠가 한번 마주치고 오늘 두 번째인데, 늘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어서일까, 동갑내기여서 일까, 아니면 내가 잘 때 미술관뿐만이 아니라 나도 그에게 보살핌 받는 기분처럼 느껴서일까. 마치 오래전부터 잘 아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 단단함 때문에 이질감을 느끼고 주춤하게 된다.


“아, 수아야.”

수아가 있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에 조금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수아는 어느새 내 앞에 바짝 와 있었다.


“정말 오랜만이야. 앞머리 내렸네? 안경도 쓰고?”

수아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조금은 부끄럽다고 느껴져서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수아와 거리를 두었다. 수아의 관심이 공격적으로 느껴진 걸까.


“그렇게 되었어.”

딱딱하게 대답했다.


“그래..."

말끝을 흐리던 수아의 눈꺼풀은 살짝 내려앉았다가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그런데 이 시간에 깨어있네? 홀까지 나와있고. 무슨 일이야?”

문득 이 질문에 다시 가슴이 답답해졌다. 꿈과 이마의 고통과 시야의 흐려짐이 되살아나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이 끌려 나왔다. 잠시 그믐달에게 위로를 얻고 있었나 보다. 수아에게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고도 싶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말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수아를 지나쳐 가장 오른쪽에 있는 작품 앞으로 다가갔다.


“수아야. 이 작품은 왜 가려져있는 거야? 아직 그림이 완성되지 않은 건가?”

그림으로 화제를 돌렸다.


“아니, 그림이 망가졌어.”

수아와 조금 떨어지자 나의 눈은 다시 흐릿해져 수아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수아가 그림이 망가졌다고 할 때 자신의 강인함을 담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망가졌는데?”

수아는 다시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와 그림 앞에 서 있었고 대답 대신 그림을 가리고 있던 검은색 암막커튼을 끌어내렸다. 약간의 먼지와 함께 커튼은 바닥에 내려앉았고 나는 영롱한 색을 띠는 옥으로 이루어진 프레임 안에 있는 그림을 마주했다. 나는 이 그림의 오른쪽 하단에 서있었는데, 거기에는 「태몽」이라고 적혀있었다. 전체적으로 보고 싶어서 뒤로 조금 물러섰다. 흐릿하던 시야가 잠깐 동안이지만 초점을 맞추어 그림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마른 바닥에 잿빛으로 말라가는 비늘과 눈이 하얗게 덮인 물고기가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듯했다. 그림은 태몽이 아닌 죽음을 그려놓은 것 같았다.


“원래는 이렇지 않았어. 정말 맑은 물이 가득 차 있던 호수였지. 오색으로 빛난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만 가지 색으로 빛을 내며 물속을 유영하던 작은 물고기들이 살아 움직였어. 그 눈은 사파이어나 옥, 루비, 호박처럼 색을 띠거나 다이아몬드처럼 투명하게 빛났어. 호수 주변의 나무는 꿈결 같은 여러 빛깔의 녹색으로 살랑였지.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되어버렸어.”

수아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영상을 보듯이 설명했다. 그리고 살아있던 무언가를 상실한 듯한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그는 죽어가는 연인을 바라보는 듯이 절망이 배어있는 얼굴로 그림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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