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

오색물고기 | M87수인

by 영하





넓고 큰 동굴이었다. 우리는 물길이 이어진 곳을 따라 더 깊이 들어갔다. 물길이 닿아있는 곳은 한 명씩 기어들어가야 할 만큼 작은 입구를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는 한 명씩 기어서 입구를 통과해 들어갔다.


들어선 공간은 수아와 내가 들어서자 꽉 찰 정도로 작았고 우리는 둘 다 몸을 굽혀야 했다. 작은 입구로부터 빛이 들어왔다. 분명 이 곳에서 물길은 끝났다. 물길이 끝나는 곳엔 아주 얇고 긴 줄기가 얽혀있는 뭉텅이가 물이 올라오는 것을 막고 있었다. 웬 식물인지 나무인지 모르겠지만 이 뭉텅이를 치워야만 물이 샘솟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아는 이 작은 공간에 들어온 후로 저 뭉텅이만 가만히 쳐다볼 뿐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 있었다. 수아의 얼굴은 왠지 슬퍼 보였다. 나는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기에 뭉텅이에 다가가 밀어내려 손을 뻗었다.


“손대지 마.”

나는 너무 놀라 그대로 뒤로 주저앉았다. 내 손이 뭉텅이에 닿기 직전에 뭉텅이가 말을 한 것이다. 뭉텅이는 그대로 꾸물대며 움직이더니 길고 얇은 줄기 사이로 푸른빛의 얼굴을 내밀었다.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마고였다. 호수와 돌밭의 마고와는 다른 피부색을 지닌 동굴의 마고는 이끼가 낀 초록색과 얼어붙은 듯한 회색의 길고 얇은 머리카락으로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눈은, 죽어가며 나를 쳐다보던 호수의 물고기의 눈처럼 하얗게 덮여있었다.


마고는 하얗게 덮여 시력을 상실한 것처럼 보이는 눈으로 나를 응시하더니 갑자기 표정을 계속 바꾸기 시작했다. 마치 여러 명의 자아가 삐죽빼죽 얼굴 밖으로 나오려고 몸부림치는 것처럼 보였다. 그 표정이 무척이나 괴이해서 한동안 표정 변화를 보고 있기에 공포스러웠다. 하지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치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까지 받았다.


“그만해.”

드디어 수아가 마고에게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수아는 마고들을 만나면 연민의 눈빛으로 마주 했는데, 동굴의 마고에게는 이해는 하지만 동의할 수 없다는 강경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첫마디에는 목구멍에서 겨우 끌어올려진 힘겨움이 가득했다.


“그만해. 그건 진짜 네가 아니잖아, 마고. 그만해. 우린 그냥 너를 만나러 왔어. 그냥 너의 얼굴을 보여줘.”

수아의 말에 마고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눈을 떴다. 눈동자는 까맣게 변하여 정확하게 초점을 맞추었다. 무표정 일색으로 우리 둘을 천천히 살펴보더니 다시 머리카락 사이로 얼굴을 감추어버렸다.


그렇게 조금 시간이 흘렀지만 마고는 미동하지 않았고 울컥 대며 솟아오르는 물의 소리만 작은 공간을 울렸다. 마치 마고가 우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수아도 동굴에 주저앉아 등을 기댄 채로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수아의 얼굴이 지쳐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왠지 이대로 이 작은 공간에 갇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생각이 드는 순간 우리가 기어서 들어온 동굴의 입구가 조금씩 좁아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렇게 입구를 가만히 쳐다보는데 정말 그러한 것 같아서 벌떡 일어나 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진짜였다. 입구는 좁아지고 있었고 이제 몸을 웅크리고 기어나가기 어려운 상태까지 좁아져있었다. 이곳에 갇혀 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나고 뱃속이 조여 오고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수아야! 입구가 작아지고 있어 빨리 나가야 돼!”

하며 수아의 몸을 흔들어 댔다. 수아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작아지고 있는 입구와 마고를 눈동자만 움직여서 번갈아 보고는 다시 눈을 감고 말했다.


“마고가 닫고 있는 거야. 여기 이 방은 마고 그 자체거든. 마고가 열지 않으면 열리지 않을 거야.”

나는 주저앉은 채로 작아지고 있는 입구와 마고를 번갈아 보다가 입구 쪽으로 조금이나마 차오르던 물길까지 완전히 막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에 내 목숨도 위험한데 번뜩 죽어가는 물고기가 생각났다. 그 물고기는 햇볕에 말라죽고 나는 이곳에서 숨이 막혀 죽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나만 죽는 게 아니라 수아와 마고 모두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고에게 다가가 마고를 꼭 안았다. 마고는 숨을 쉬는 듯 마는 듯한 호흡과 함께 몸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마고의 머리카락은 축축했고 차가웠다. 내 몸도 그 냉기가 옮겨와 가늘게 떨려왔다. 그리고 머리카락 사이로 숨은 마고에게 속삭였다.


“마고야. 더 이상 숨지 않아도 돼. 숨바꼭질은 끝났어.”

숨바꼭질이 생각난 건, 바위의 마고와는 땅따먹기로, 동굴의 마고와는 숨바꼭질로. 그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정말이야?”

마고가 대답해왔다. 마고가 대답을 할 줄은 정말 몰랐기에 나는 조금 놀랐지만 마고를 더욱 따뜻하게 그리고 강하게 안아주며 대답했다.


“응. 다 끝났어. 동굴의 차가운 목소리는 이미 가고 없어.”

왠지 이 때는 얼음땡을 하자던 목소리가 마고를 이곳에 가두어 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수아가 내게 말했듯이 이 게임에 참가해서는 안되고 만일 참가했다면 끝났다고 선언을 해주어야 했다.


“정말.. 갔어? 정말 끝났어?”

마고는 머리카락 사이로 조그마한 손을 빼내어 자신을 안고 있는 내 팔을 붙잡았다. 나는 다시금 대답했다.


“정말로 끝났어. 목소리는 갔어. 다시는 이 게임을 하지 않아도 돼.”

마고는 얼굴을 불쑥 꺼내어 나와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 내 눈에서 거짓말이 있는지 탐지하는 듯이, 내 마음속까지 깊숙이 들어갔다 오는 듯이 나를 면밀히 관찰했다. 그리고 마침내 입구는 완전히 봉쇄되어버렸다. 입구에서 들어오던 빛이 완전히 차단되어버려 더 이상 마고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나는 동굴의 작은 공간이 아닌 마고의 까만 눈 안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모든 게 다 끝났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갑자기 물소리가 더 이상 울컥 대지 않았다. 오히려 물은 노래를 불렀다. 아름답게 이 작은 공간에 흘러드는 소리였는데 분명 물의 노래였다. 이어서 마고가 노래를 얹었다. 마고의 소리의 울림이 끝나자마자 어둡고 춥고 작았던 공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큰 바람이 불어닥쳤다가 멀리 떠나가며 작은 공간을 스러지게 만든 것 같았다.


순식간에 우리는 작은 공간에 들어서기 전의 넓고 큰 공간에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아까의 그 작은 공간은 완전히 물로 가득 차서 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물은 길을 따라 힘차게 뛰어올라갔다. 물은 호수로 가는 길을 잘 아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물에 손을 담그고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마고를 보았다. 동굴의 마고는 앉아있을 때는 몰랐는데 돌밭의 마고보다 조금 더 키가 컸다. 그리고 더 이상 푸른빛을 띠던 얼굴이 아니었고 머리카락 또한 이끼 낀 초록과 얼어붙은 회색은 사라지고 없었다. 호수와 돌밭의 마고와 똑 닮은 얼굴이었다. 마침내 마고는 눈을 떴다. 까만 눈과 입술에는 미소를 띠고 우리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마고들과 이야기했어. 우리에게 와주어서 고마워. 우리가 다시 이야기할 수 있게 해 주어서 고마워. 오는 길에.. 많이 무섭지는 않았어?”


“무서웠어. 진짜 죽을뻔했다고!”

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대답했다. 마고는 빙긋 웃더니 말을 이어갔다.


“정말 그랬을 거야.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아 줘서 고마워. 그리고 숨어있던 날 꺼내 주어서 고마워. 이제는.. 춥지 않아. 따뜻해.”

마고는 수아를 쳐다보았다. 수아는 지친 기색으로 마고를 가만히 보았다. 이번에는 마고가 먼저 수아에게 다가와서 수아를 안아주었다.


“고마워 옥이를 이곳까지 데려와주어서.”

나는 옆에 서서 놀라며 말했다.


“나를... 알아?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아, 물로 대화했다고 했지? 아니, 그런데 잠깐만. 내가 옥이라는 건 모를 텐데?”

하고 마고를 쳐다보자, 마고는 수아를 놓아주며 환히 웃었다.


“어서 가야지? 호수엔 이미 물이 가득하고 물고기들은 모두 빛을 되찾았어!”

수아는 웃음으로 화답했다. 마고가 안아주고서야 수아는 활력과 웃음을 되찾은 게 분명했다. 마고는 물이 올라가는 길 옆으로 다른 입구를 열어주며 말했다.


“이 길로 가. 여기로 가면 바로 호수가 나올 거야.”

나와 수아는 그 길로 들어섰다. 깜깜한 길이었지만 왠지 전혀 무섭지 않았다. 나는 그 길을 수아보다 앞장서서 걸으며 마고가 어떻게 내 이름까지 알고 있는지를 생각했다. 짧은 몇 걸음에 큰 빛이 우리를 감싸더니 우리는 호수의 나무 사이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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