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물고기 | M87수인
주위는 어느새 어둑해졌다. 밤이 된 게 아니라 키가 큰 나무에서 뻗어 나온 가지와 널찍한 나뭇잎들이 하늘을 가득 메웠기 때문이었다. 햇빛이 통과하지 못해 어두워진 숲을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푸드덕-하는 소리가 들렸다. 새가 살았나 싶었지만 새의 지저귐은 듣지 못했다. 이상하게 생각되어서인지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푸드덕-대는 소리는 빈번하게 그리고 우리에게 더 가까이 들려왔다.
“수아야 소리 들었어?”
수아는 주위를 살피며 조용히 대답했다.
“조심해야 할 것 같아.”
수아가 주의를 기울이며 이야기하자 나는 더욱 긴장되었다.
그때였다. 순식간에 내게로 날아온 내 몸통만 한 나뭇잎이 나를 밀어 넘어뜨리며 그대로 덮으려 했다. 하지만 수아가 더 빨랐다. 나뭇잎에 맞아 넘어진 나를 단단한 손으로 붙잡고 나를 끌어냈다. 나뭇잎은 나를 놓치고 땅만 덮었는데 나뭇잎에서 파리지옥의 끈끈한 액체 같은 것이 나왔다. 나뭇잎은 그 아래 덮인 땅의 흙과 함께 녹아 녹색 진흙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금세 그 자리는 이끼가 덮인 녹색 바위처럼 단단해져 버렸다. 아마 내가 저 자리에 넘어진 채로 있었다면, 수아가 날 끌어내지 않았다면 분명 나뭇잎과 함께 순식간에 녹아내려 바위처럼 굳어졌을 게 분명했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물풀 밭과 신우대 미로 정원은 약간의 위협이었고 그냥 통과하면 되었지만 이제부터는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손을 꼭 잡아. 나뭇잎이 널 넘어뜨리려 할 거야.”
수아의 말대로였다. 그 숲을 통과하기까지 수차례 나뭇잎에게 맞았다. 넘어지기도 했고 겨우 버티기도 했지만 넘어질 때마다 나뭇잎보다 수아가 더 빠르게 나를 끌어내어 일으켜 세웠고 나도 수아의 단단한 손을 놓지 않기 위해 꽉 붙들었다. 한 번은 넘어지면서 안경을 떨구었는데, 나뭇잎이 안경을 녹여버렸다.
우리는 바닥이 더욱 축축하게 젖어서 걸을 때마다 진흙탕에 발을 담그듯이 걷고 있었다. 물이 차오르는 곳에 다 온 것 같았다. 안개도 점점 짙어져 앞을 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익숙했다. 안경을 쓰든 안 쓰든 상관없이 나는 앞이 흐릿했기 때문에 안개가 껴도 별반 두려움이 들지는 않았다.
걷다 보니 우리는 동굴 앞에 다다랐다. 물길은 분명 동굴의 내부로 이어져있었다. 들어서기 전부터도 느껴지는 섬뜩한 냉기에 수아의 손을 다시 덥석 잡았다. 캄캄한 동굴에서 전해지는 그 차갑고 스산한 공기가 어서 오라는 듯이 온몸을 감쌌다. 그 환영에 안기듯이 혹은 밀려 들어가듯이 동굴로 입장했다.
“수아야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하지?”
수아의 손을 잡고 말했다.
“가만히 들어봐.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소리는 들려.”
정말이었다. 이 소리는 물이 흐르는 소리였다. 아니, 물이 울컥 대며 솟는 소리가 큰 공간을 울리는 것 같았다. 그 소리에 의존해서 수아는 발걸음을 옮겼고 나는 여전히 수아의 손을 잡고 걸었다. 그때 갑자기 한 목소리가 외쳤다.
“지금부터 얼음땡 놀이를 시작할게! 나는 술래야 너희를 잡을 거야!”
이 외침이 끝나자마자 살아 움직이는 냉기가 나와 수아의 손 사이로 밀고 들어와 우리를 떨어뜨려 놓았다. 나는 당황하며 허공에 손을 내저어 수아의 손을 찾았지만 찾지 못했고, 수아를 부르고 싶었지만 냉기가 입을 막아 부르지 못했다. 혼자 살며시 발을 옮길 때마다 더 추워졌다.
살아 움직이는 냉기가 나에게 달려옴이 느껴졌다. 공포감에 ‘얼음’을 외쳤다. 그때 마침 나를 찾던 수아가 나의 목소리를 듣고 내게로 뛰어와 나를 치며 ‘땡’이라고 외쳤다. 그리고는 나의 손을 다시 잡고서 말했다.
“옥아, 이 게임에 참가해서는 안돼. 앞으로 그 어떤 목소리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와도 거부해야 해. 보이지 않는 상대의 말을 따를 필요 없어. 게임에 참가하면 냉기에 휘말려서 얼어 죽게 될 거야. 이 게임에 참가해서는 안돼.”
수아는 재차 강조하며 내게 말했다. 단호하지만 나를 꾸짖는 말투는 아니었다. 나는 더 강하게 수아의 손을 잡으며 알겠다고 했다. 목소리는 다시 상냥한 목소리로 놀자고 말을 걸어왔지만 우리는 대답하지 않고 물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며 걸었다.
목소리는 자신과 놀아주지 않자 그 차가운 공기로 우리를 샅샅이 훑더니 지쳤는지 동굴을 단숨에 빠져나갔다. 그러자 주위가 갑작스레 밝아지고 안개와 추위는 사라졌다. 우리는 이미 동굴의 깊숙한 안쪽까지 들어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