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하루

오색물고기 | M87수인

by 영하





질끈 눈을 감은 사이 이미 우리는 M87이었다. 작품 태몽은 투명한 물에 온갖 색의 물고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오색의 물고기들이 뿜어내는 빛이 M87의 내부에서 일렁였다. 하지만 반대편에 있는 작품을 가리고 있는 커튼 위에서 오색의 빛은 사라졌다. 마치 커튼이 오색의 빛을 흡수하는 것 같았다. 지금껏 빛들이 M87내부에서 노니는 것은 늘 보아왔지만 커튼이 빛을 흡수하는 듯한 광경은 처음 보았다. 이끌리듯이 반대편의 작품 앞으로 다가갔다. 작품 앞으로 걸어가면서 입구가 사라졌음을 보았다. 계단실과 내가 지내던 방은 사라졌다. 그곳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작품 앞에서 망설임 없이 담담하게 암막커튼을 거두었다. 수아는 나의 눈과 손과 발이 하는 것을 주시하며 나를 따라 반대편 작품 앞으로 다가왔다.


아직 이름이 붙지 않은 이 작품은, 두 개의 그림이었다. 하나는 청아한 옥빛과 오로라의 연둣빛으로 빛나는 수사슴과 같은 빛으로 줄무늬를 이루고 있는 백호가 지긋이 쳐다보고 있었다. 수사슴과 백호는 눈이 날리는 설산을 배경으로 두었는데 같은 산의 다른 곳인 것 같았다. 그렇다. 내 꿈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다. 이 그림은 꿈보다 선명했다. 그림에서 사슴과 백호는 빛나는 청아한 옥색에 오로라의 연둣빛이 가미되어있음을 알려주고, 어둑한 하늘의 색도 보랏빛이 함께 맴도는 것을 알려주고,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진 설산도 여러 농도로 그 깊이를 더해 꿈보다 훨씬 더 생생한 색을 알려주었다.


“수아야, 나는.. 가야 할 것 같아.”

나는 문득 깨달음과 동시에 말을 꺼내었다.


“같이 가자, 수아야.”

수아는 미소를 띤 얼굴로 가만히 나를 응시하다가 대답했다.


“나는 M87에 있을거야. 여기서 너를 응원할게. 언제든지 길을 잃었거나 쉬어야 할 때, 또 다른 프레임으로 들어가야 할 때. 이곳에서 다시 만나자.”

나는 사실 알고 있었다. 수아는 함께 가지 않을 것이란 것을. 이 프레임을 넘어서는 것은 나 혼자라는 것을.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수아가 갖고 있던 담대함이 내게 전달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수아는 창문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믐의 묘시가 끝났어. 이제 초하루야. 너는 이 프레임에 들어감과 동시에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는 거야. 다시 M87에 오게 될 때면 이곳 또한 새로운, 다른 M87일 거야. 그리고 너도 나도 새로울 거야.” M87에는 어느새 따스한 태양의 온기가 스며들어 왔다. 더는 지체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느꼈다. 수아에게 다가가 입맞춤을 하고 단단한 발걸음으로 대답했다.


“새로운 M87에서 다시 만나.”

이내 뒤돌아보지 않고 사슴을 응시하며 새로운 프레임에 입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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