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雪山), 수사슴, 백호

오색물고기 | M87수인

by 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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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추위가 덮쳐왔다. 하지만 추위에 익숙해져 있는 것인지 춥지 않다고 느꼈다. 눈을 뜨자 눈 덮인 산의 비탈길에 서 있었고 눈을 들어 올려다보니 역시나 그림에서 본 수사슴이 옥색으로 빛을 내며 까만 눈으로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나는 수사슴을 따라갔다. 분명 미끄러질법한 경사에서도 미끄러지지 않았다. 그저 수사슴이 먼저 간 발자국을 따라 가뿐히 산의 정상까지 올랐다.


꿈에서 보았던 정상의 고원지대에 도착하자 꿈에서 처럼 하늘을 보았다. 그림처럼 먹색과 보라색이 하늘을 덮고 그 위에 눈보라가 엷게 진을 치고 있었다. 다시 눈을 정면을 응시했다. 어느새 옥색으로 줄무늬를 빛내는 백호가 내 앞에 서 있었다. 그 까만 눈은 나를 응시했다. 존재만으로도 심장이 내려앉을 만큼 컸고 위엄이 넘쳤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하얀 털에 옥색으로 빛나는 줄무늬 곁으로 다가가 털을 쓸어내리고는 꿈에 보았듯이 털을 잡고 껑충 뛰어 백호를 올라탔다. 백호는 순식간에 달리기 시작해 거친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단숨에 고원지대의 끝, 이 산맥의 끝에 도달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깊이를 알 수 없는 협곡 위로 뛰어올랐다. 협곡은 깊이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었지만, 맞은편의 산맥까지의 거리도 대단히 멀었다. 뛰어 오른 중에 백호는 내 마음속에 질문을 던졌다.


“건널 수 있다고 생각해?”

나는 곧 대답했다.


“응.”

간결하게 나의 믿음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우리는 단숨에 협곡을 건넜다.

새로운 산맥, 새로운 세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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