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기록 (초여름의 기록)

by 강흐름


6.1

‘하늘’이라는 단어는 하나인데 그 모습은 매일같이 달라진다.

어떤 날엔 하늘이 바다를 닮고,

어떤 날엔 바다가 하늘을 닮았다.

서로 닮아갈수록 더 아름다워져서 그저 길을 지나가던 나에게도 이런 세상을 보여준다.


누군가와의 관계도 이렇게 흘러간다면 우린 모두 아름다운 세상을 만나게 되는 건가?라는

혼자만의 되물음.



6.2

일하고 있는 곳의 화장실 변기가 막혔다.

불특정 다수의 손님이 오가는 곳이니 가끔 일어나는 일들 중 하나다.

그런데 그 순간, 옆에 있던 사장님의 말이 얼마나 감동적이던지.

이런 건 본인이 할 테니 젊을 때는 예쁜 것만 보라고 하신다.

지금까지 여러 사장님과 일을 했지만 이런 말을 해주는 분은 처음이었다.

변기를 뚫는 거야 내가 하든 사장님이 하든 해결하면 되는 일이지만,

예쁜 것만 보며 살 수 없는 게 삶이라서,

그 횟수를 조금이라도 줄여주려는 마음인 것 같아서.


-


무언가를 내려놓은 그 자리에 부지런히 자리 잡아버린 또 다른 욕구들.

종이 위에 적어보니 자잘하면서도, 추상적인 무언가가 이어진다.

이루어질 것들은 이루어진 다하니 이 자잘한 욕구들을 하나씩 지워가는 것도 좋겠다.



6.4

잊고 있던 굳은살이 눈에 띈다.

새 살이라도 돋아나고 싶은 건지 미세한 간질거림이 느껴지는 덕에 발견한 셈이다.

굳은살이 다 떨어져 나가 매끈한 살을 다시 만날 때쯤이면

그 사이엔 또 어떤 추억과 기억이 생겨 있을까.

굳어지고, 새로 생기고를 반복하는 살덩이를 보며

나의 날들도 결국 그렇게 흘러왔음을 새삼스럽게 인지해본다.



6.5

‘회피’와 ‘해결’은 다르다.

당장의 상황이나 감정을 마주하는 게 피곤해서, 혹은 힘들어서 피하는 것.

그로 인해 아프고 싶지 않아서,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아서 미뤄두는 것.

그게 ‘회피’의 일반적 정의가 아닐까.


그러나 요즘의 나는 때때로 ‘회피’하는 나를 안아준다.

미뤄두는 것도, 피하는 것도, 모른 척하는 것도 찬성할 때가 있다.

다만 꼭 기억할 게 있다면, 언젠가는 마주하여 ‘해결’할 거라는 믿음.

회피의 시기를 거쳐 해결을 하고,

그게 결국 변화와 확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배웠기에.

당장 해치워야 할 필요는 없다.

이 묵직함을 안고 갈 힘이 있다면 조금 더 안고 가고,

해결하여 다른 ‘나’를 발견할 힘이 있다면 발견하면 된다.

우리는 언제나 어느 쪽이든 선택할 권리가 있는 존재기에.



6.6

무언가 정리가 필요한 시점.

폭식과 잦은 음주.

도파민 중독.


에라 모르겠다 하고 즐겨보니 남은 건 소화불량과 눈의 피로감.

가짜 욕구였음을 깨닫는다.

내면에 숨은 진짜 욕구가 괜히 깊고 복잡하게 느껴져

가짜 욕구와 맘 편히 놀아버리겠다는 객기를 부린 것도 있다.

괜한 피해를 본 위장과 마음 어딘가에 미안해진다.


조절과 정리.

나를 위해, 짙은 가치를 얹어 내기 위해 맑은 정리가 필요한 시점.



6.7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는데 괜한 페달을 돌리며 속도를 내다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달이 바뀌었다.

나를 돌아본다는 내용의 글을 자주 쓰고 있으면서도 얼마나 진정성 있게 대했는지 모르겠다.


솔직했는가? 자연스러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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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무심코 튀어나온 한 마디.


“잔재했던 것들아, 잘 가라.”


행여 자만하거나 흘러넘치지 않도록 조용히 나의 내면을 바라봐야겠다.

생소한 기분인데 자꾸만 마주하고 싶은 느낌.



6.9

섬에 머무는 게 흥미로운 이유는 정말 많다.

다른 지역에 비해 유난히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점이 그중 하나.

토박이는 물론이고 그 속에서도 농업 종사자, 어업 종사자가 극명하게 나뉜다.

열대과일부터 구황작물까지 생산되고,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어종이 동네 분위기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돈 많은 다국적 투자자들과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유명인사들,

역마살 혹은 자유로운 에너지가 가득한 여행자들과 이주민들, 일하러 온 외국인들,

불특정다수의 관광객들까지.

특유의 숲과 바다가 가까이 공존하는 것만으로도 멋진 섬인데

거의 모든 종류의 세상 사람들을 볼 수 있으니 매일 새로운 캐릭터를 발견하는 재미가

나를 이곳에 발을 더 오래 두게 하는 것 같다.


세상 구경을 이 섬에서 축소판으로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6.10

살아있는 한 우리는 ‘노동’과 떨어질 수 없는 존재인 걸까.

‘노동’이 있기에 생활을 하고, 여가를 즐기고, 때로는 가치를 확인한다.

육체적 노동, 정신적 노동뿐만 아니라 사회성과 가치 창출, 시장 순환이 주는 불가피한 특징 때문에

인간은 ‘노동’과 함께 평생을 살아가는 셈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이 단어를 지혜롭게 대해야 한다.

무작정 강요되는 노동, 스스로 압박을 주거나 타인을 망가트리는 노동이 이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6.11

이토록 뜨겁고 많은 양의 피가 몸에서 빠져나오고 있다니.

비워내도 어느새 또다시 채워지고 있다니.



6.12

가끔은 꿈속이 현실같고, 현실이 꿈같을 때가 있다.

어느 쪽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점점 더 알 수 없는 날들이 많아진다.


정신적 공허함에 물리적 폭식을 밀어 넣는 모습을 마주할 때면

인형 뽑기 속 갈고리로 내 뒷덜미를 잡아 올리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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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사랑자유평화낭만’이라는 카페에 다녀왔다.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아야 할,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단어들을 아낌없이 다 집어넣어

가게 이름으로 내건 주인의 용기와 실행력이 멋지다.


어느 골목 안, 오래된 수선집을 커피 내리는 곳으로 변화시킨 곳.

공원이나 길거리에 있을 법한 벤치를 카페 안에 들여다 놓은 곳.

개의치 않고 실행하는 것들이 주는 힘이 있다.


변화와 시도. 사유와 확장.

너무 많은 이유와 망설임을 내려놓고 조금 더 자유롭게 살아도 된다는 것을 매 순간 깨닫는다.



6.14

아침에 처음 드는 생각 혹은 처음 뱉게 되는 말은 가장 솔직한 것 중 하나인 것 같다.

무의식에서 깨어나며 툭하니 떠오르거나 내뱉어졌으니.

오늘 아침이 문득 그랬다.

불면증을 가끔 마주하는 나에게 눈 뜨자마자 “아, 잘 잤다!”라는 말이 튀어나온 건

살면서 몇 번 안 되는 경험이다.

잘 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에 어찌나 반가웠던지.

-

여기저기 써 둔 글을 조금씩 꺼내어 놓고 있다.

생각 없이 털어내고 있는 건 아닐까 브레이크를 걸면서도,

때로는 기록의 순수한 목적과 나를 위한 흔적이라는 생각에 정제하는 과정을 느슨하게 둔다.

잘 정리된 글만 내놓아야지 했던 시간이 길어질수록

‘쓰는 행위’에 대한 브레이크가 더 강하게 걸렸기 때문이다.

이 글들이 누군가에게 엄청난 흥미를 불러일으키거나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일은 없을지언정

나에겐 이 기록 자체가 과정이고, 시도이기에.

꾸준히 남기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자 이유가 되었다.



6.15

‘의자’에 집착하고 있다.

지난 한 달 동안 중고의자와 새 의자를 사고팔고를 반복하며 애를 쓴다.

그냥 바닥에 앉자니 쥐가 나고, 접이식 의자에 앉아있으니 몸이 같이 삐걱이고,

부피가 큰 편안한 의자를 두자니 단기거주로 구한 한 칸짜리 원룸에서 너무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


‘의자’에 빗댄 거겠지만 아마 내면에서 지금 부딪히고 있는 게 한둘이 아닌 거다.

모쪼록 스스로 원만한 합의와 결정을 내려 이제 그만 애를 쓰기를 바랄 뿐.



6.16

본의 아니게 인복과 먹을 복이 이어지는 감사한 요즘.

삶 자체가 복이다 싶은 요즘 같은 시기를 어떻게 담아내어

좋은 에너지로 다시 돌려줄 수 있을까.



6.17

참 많이도 다친 지난 일주일.

손등이 베이고, 손가락은 곳곳에 멍이 들고, 손목은 꺾이느라 정신없었다.

게다가 제대로 넘어지는 바람에 이마와 어깨, 엉덩이에 크고 작은 멍이 골고루 생겼다.

이만큼 다친 것에 감사해야 하는 걸까 싶은 생각도 든다.

페퍼민트 오일에 의존하며 하루를 무사히 버텨냈다.

몸의 상처가 많아지니 감정적 울렁임이 다가왔지만

약간의 고통은 곧 무던하게 지나가고, 심리적 불편함은 그와 함께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왜 이렇게 많이 다쳤을까.

빠져나갈 심술쟁이들이 많았던 걸까. 다 빠져나가고 회복할 일만 남았겠구나.



6.18

단순하게 사는 게 더 어려운 일이었다니.

머릿속에 하려다 만 것들이 둥둥 떠다닌다.

몸이 더 무거워지는 기분.


그럼에도 좋아하는 것들을 잔잔하면서도 꾸준히 즐길 수 있다는 것,

다행히 그게 아직까지 애정 어린 온도로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

좋은 날들과 인연들, 순간에도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을 보내야겠다.

그렇게 주고받은 에너지로 나에게 다가오는 불편한 것들을 좀 더 지혜롭고 편안하게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6.19

꾸준히 글을 기록하거나 ‘쓰지 못한’ 찜찜함과,

정제되지 않고 마구잡이로 흘러나오는 글을 ‘그저 써 내려가는’ 찜찜함 중

어느 쪽이 더 짙을까.



6.20

오늘의 사랑스러운 것들.


- 방충망에 붙은 모기를 있는 힘껏 불어내던 나비를 닮은 요가 선생님.

- 오가는 수많은 손님들 중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주는 아기 손님들.

- 수련이 끝난 후 산발이 되고, 붉어진 얼굴을 하고 서있는 나



6.21

며칠 전 꿈에 일기를 쓰는 내 모습이 보였다.

지금 쓰고 있는 일기장이 꿈에서도 보였고, 다른 사이즈의 노트가 한 권 더 보였다.

이쪽저쪽을 오가며 무얼 그렇게 쓰고 있었던 걸까.

아마 다른 사이즈의 그 노트엔 더욱더 정제되지 않은,

잡다하면서도 더 솔직한 날것 그대로의 내용이 쓰이고 있진 않았을까.


잠에서 깨니 사라진 그 노트엔 나도 모를 정도로 깊은 곳에 숨어있는 무언가가 적혀 있었을 것만 같다.

스스로 이끌어가는 삶이 감사하고 소중하면서도,

혼자서는 열지 못할 것들이 있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어떤 벽을 마주하는 기분이다.

나는 지금 스스로에게 더 솔직해져야 하고, 스스로를 더 믿어야 할 때라는 것을,

그 시간에 몰입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6.22

‘최소한’의 살림을 지향하지만, 의식할수록 사고 싶은 건 하나둘씩 늘어나는 아이러니.

육지에서 챙겨 왔던 생필품들이 차례로 떨어져 가는 것을 보며

날짜와 시간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숫자들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만 같다.



6.23

쓰는 아침, 읽는 저녁.


좋은 글을 쓰고 싶은 걸까, 좋은 마음을 진짜로 지닌 사람이고 싶은 걸까.

건강한 몸을 가지고 싶은 걸까, 멀쩡해 보이는 몸을 만들고 싶은 걸까.

내려놓고 싶은 걸까, 채워가고 싶은 걸까.

나의 글은 진행형일까, 바람들일까.


양가적인 질문들이 이어진다.

그저 흘러가자 해놓고 불안과 안도, 평화와 흐릿함이 공존하는 날들.

아무래도 지난주에 넘어진 후유증이라 이름 붙여야겠다.



6.24

사람이든 상황이든 무언가 삐걱이거나 애매할 때는

‘한 번만 더’를 떠올리거나 ‘조금만 더’를 되뇌며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생각 뒤에 따라오는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다.

더 나아지거나, 아니라는 판단을 하게끔 알려주거나.



6.25

부디 서로에게 베푸는 친절이 당연한 것들로 여겨지지 않기를.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을 내려 두기를.

나도 모르게 올라오는 자만을 더 크고 싶은 겸손으로 안아주기를.

아는 척보다 차라리 모르는 척 하기를.

말은 간결하지만 또렷하게, 글은 솔직하지만 넓고 깊게 전할 수 있기를.



6.26

쓰는 행위가 말하는 행위보다 편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가끔 내가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구나 놀랄 때가 있는데,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거나 결이 맞는 사람을 알게 됐을 때다.

한참을 떠들고 나면 매번 목감기처럼 목구멍이 저릿하게 아파오는데도 흥미로운 건

‘하고 싶은 말이 이렇게 많았구나’에 대한 낯섦.

-

레몬수를 “레몬이 잠시 목욕하다 지나간 맛”이라 표현하는 어느 아주머니의 말이

하루 종일 귀여운 덩어리가 되어 머릿속을 맴돈다.



6.27

20대의 나는 마치 개미의 구조처럼 크게 3등분으로 나뉘어 있던 것 같다.

‘머리-가슴-배’ 대신 ‘머리-마음-몸’으로.

각자 타고난 성향과 운명이 있음에도 쉴 새 없이 3등분 안에 끼워 맞추려 했다.

타인과 사회가 만든 3등분 구조에 나를 얹으려 하니 매번 방향을 잃고 헤맸다.


요즘의 나는 3등분이 아닌, 한 덩어리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나의 본질과 사회의 구조가 어떻게 잘 섞일 수 있을지를 연구하며.




6.28

빠이(Pai)에서 돌아온 지 벌써 두 달이 되었다.

그곳에서 짧게 인연을 맺었던 사진작가 Sebran과 여전히 메일을 주고받고 있는데

매번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문장들이 숨어있다.


“이제 마당엔 다양한 과일과 약초가 열리기 시작했어.
네가 돌아오면 식량을 쇼핑을 할 필요도, 돈 걱정을 할 필요도 없을 거야. ”

“네가 돌아오면 쓸 수 있도록 필름 카메라를 준비했어.
네가 괜찮다면 아날로그 촬영과 현상을 진심으로 알려주고 싶어.
왜냐하면 그게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야.”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을 누군가에게 공유하거나 알려주고 싶은 마음.

그게 너무나 따뜻하고 감동적이어서 하루종일 메일 속 문장을 안고 있었다.



6.29

하룻밤 사이에 너무 많은 꿈을 꿨다.

매번 희미한 장면 몇 개만 안고서 눈을 뜬다.

어느 쪽이 꿈이고 현실인지 여전히 헷갈린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나’를 잃지만 말자.

꿈이든 현실이든, 한국에서든 외국에서든, 섬에서든 육지에서든,

산에서든 바다에서든, 혼자이든 함께든.



6.30

그것은 정말이었다.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흘러간다는 것.

이제야 그걸 발견했을 뿐.


좋은 생각과 감정으로 지내다 보니 연이어 마주하는 것들도 좋은 것들이다.

단순히 철학적이거나 이상적인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사랑은 사랑을 부르고, 감사하는 마음은 더 감사할 일을 부르고 있었다.

이렇게도 살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대부분의 순간이 이렇게 채워지다 보니 드문드문 만나는 모난 것과 불쾌한 것들이

즉각적으로 털어지거나 회복되는 것 또한 놀라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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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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