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비우기 위해 움직이는 날들.
최소한의 살림과 최소한의 재료로 채워가는 생활을 시도해보려 한다.
심플하게 살기 위해 심플한 환경부터 만들어 보기.
그러나 머릿속에는 ‘이것만큼은 가져가야지’라는 생각이 벌써부터 하나둘씩 떠오른다.
건조대와 노트북.
5.2
흐름에 내맡길 것인가, 가진 것에 가지고 싶은 것을 더하여 더 많이 가질 것인가.
정답이나 결론을 찾는 게 포인트가 아니었다.
그저 눈과 귀를 열어둘 것, 그에 앞서 마음을 열어둘 것.
툭하니 떨어지는 것, 요란스럽지 않으면서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
다가오는 것들에 이전보다 좀 더 관심을 기울여보는 것.
그것이 내가 가져가야 할 포인트였음을.
5.3
가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여행을 다녀오면 여행의 어떤 습관들이 일상에 남아있다.
이번에는 편하지 않던 것들이 편해지고,
신경 쓰이던 것들을 내버려 두게 되는 마음이 함께 온 듯하다.
몸이 느슨해졌고, 마음은 더 느슨해졌다.
5.4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산책을 한 날.
‘사랑’과 ‘야무짐’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친구.
나는 그녀 덕분에 ‘사랑’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각자의 삶 속에서 색을 잃지 않기 위해 고민하는 우리가 꽤 오랜 인연을 이어가는
이유이자 연결고리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는 다른 색을 가졌기에 서로의 보색이 되어 은근하게 곁에 머물 수 있는 게 아닐까.
5.5
어린이날에 떠나는 부모님과의 짧은 여행.
이제 가족 중에 어린이는 더 이상 없지만.
모두가 어른이 되었고, 어느덧 마주 앉아 삶에 대해 얘기하는 관계가 되었다.
미완성이긴 해도 나와 부모님은 어떠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거쳐 오늘의 온도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멋 모르고 부렸던 나의 고집과 두 분의 가치관이 순서 없이 뒤엉키며 지난날의 어딘가를 채웠었는데.
요즘의 우리는 지나친 배려보다 솔직하게 말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할수록 더 편안한 가족관계가 되어간다.
하지 못했던 말,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던 말들이 서로에게 참 많았음을 알게 되는 밤.
그걸 물어보고, 듣게 된다는 게 어쩌면 용기가 필요했던 걸까.
오늘에서야 아빠의 켜켜이 쌓인 마음과 엄마의 눌러 놓은 마음을 두드려본다.
5.6
어쩌면 살아오는 내내 스스로가 만든 욕구와 기준 속에서
자유와 여행을 갈망했던 게 아닐까.
그저 발길 닿는 곳에서 진짜 자유를 만날 수 있다면,
지구 반대편이든 집 근처든 크게 다르지 않음을 내 마음가짐에서 발견할 수 있다면.
매 순간 자유와 여행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5.8
가끔은 궁금하지 않은 것들도 궁금한 척해보고,
한동안 잊고 지냈던 인연들에게 짤막한 안부 메시지도 보낸다.
돌아오는 답변들 속에 잠시나마 서로의 가벼운 환기와 전환을 느끼며.
-
다시 짐을 싸기로 한다.
나에게 필요한 질량은 어느 정도인지, 내가 지향하는 속도는 어느 정도인지
더 잘 알아보기 위한 기간을 가져보려 한다.
일종의 실험. 기약 없는 실험.
5.9
자주 쓰는 것들, 곧 안녕해야 할 것들, 꼭 필요한 것들을 나열하고 나누며
차곡차곡 박스에 집어넣는 행위를 하는 동안 지난 날을 함께 정리하고 가다듬는다.
미쳐 버리지 못했던 것들, 잊고 있던 것들, 손을 대지 않던 것들을
미련 없이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개운해지는 기분.
5.10
이번 이동은 수많은 이유를 두기보다 타이밍에 맞춰 일어나는 일과 인연에
은근슬쩍 맡기며 이루어졌다.
남은 올해를 이곳에서 어떻게 채워갈지 예상조차 되지 않지만
조용히 흥분되는 이 마음을 태연함으로 가려본다. 차분한 흥분.
끓어 넘치는 물보다 미지근한 온도로 좀 더 오랫동안 뭉근하게 머물 수 있기를.
사소한 것에 감사하고, 일어난 일에 미련두지 않기.
자제와 자유의 경계선에서 가볍게 날아다니기.
즐겁게 글을 쓰고, 요가를 배우며 유영하듯 지내보려 한다.
5.11
돌고 도는 투박한 친절함과 미소,
감사한 것들과 익숙한 듯 다른 예전 동네의 모습들,
하루에도 여러 번 바람과 비, 햇빛이 오가는 곳.
여전하다 싶은 이 섬에서 삐걱이던 자잘한 것들을 잠시 멈춘다.
5.12
이게 내가 호기롭게 떠올렸던 최소한의 살림일까.
모든 것을 채우려 하기보다 비우면서 지내보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나에게 남아있는 일상의 습관이 상상이상으로 많았음을 깨달았다.
5.14
얼마 전부터 아빠의 손글씨로 가득한 노트를 문서화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자신만만하게 할 수 있다 했건만 막상 그의 노트를 펼쳐보니 그 양은 물론이고,
곳곳에 담긴 감정과 생각들이 어마어마하다.
수많은 감정과 시간이 뒤엉킨 그의 글자들을 암호 해독하듯 들여다보고 있으니
조금은 피곤하다가도 짠하다가도 감사하다.
이토록 하고 싶은 얘기가 많으셨다는 걸 미처 몰랐다는 게 죄송스러우면서도 놀랍다.
개인과 사회, 정치문화와 철학, 자신과 타인 등에 대한 아빠의 생각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언젠가 세상에 내놓을 일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열심히 옮겨보는 날들.
5.16
지금 머물고 있는 이 동네는 요즘 마늘 수확이 한창이다.
옅은 바람과 파도 소리가 섞이는 이곳에서
묵묵히 논밭의 노동과 함께 하루를 보내는 어른들을 바라본다.
오늘따라 내가 유난히 더 이방인 같다는 생각.
나도 저렇게 건강히 무언가를 수확하고,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는 어른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5.20
많은 것을 바라거나 해내려 하기보다 ‘이루어지는 만큼, 주어지는 만큼’에 초점을 맞춰보려 한다.
때때로 부족하다 싶은 마음과 조급함, 혹은 혼란이 오더라도 그마저 눈앞의 바닷바람에
흘려보낼 수 있기를 바라며.
걱정보다는 호흡을,
고민보다는 순간을 즐기며 보내 보기로 한다.
5.21
몇 년 만에 만났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결이 맞는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더 귀하고 반가운 사실이다.
그런 사람이 살면서 스치듯 존재했었다면, 혹은 지금 곁에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다.
내려놓아야 할 것과 좋아하는 것을 명확히 알아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결이 비슷한 나에게도 그런 흐름이 찾아오지 않을까라는 희망적 추리를 해본다.
섬에서 나고 자란 그녀에게 들은 정보.
원래 야생의 초식동물들은 언제라도 도망치기 위해 잠도 서서 잔다고 한다.
(그렇지 않은 동물도 있겠지만) 각자의 생존법이자 주어진 환경과 삶이 준 습성인 셈이다.
나의 습성은 어떤 모습일까.
5.22
요가 수련을 하고 있다.
꾸준히 다닌 기억은 없어서 얼마나 했냐는 질문을 종종 받을 때면
‘초보입니다’로 얼버무릴 정도다.
그래서 더 편하다.
잘하고 못 하고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좋아서 다니는 행위에 요가가 있다는 게.
느릿한 말의 속도, 짧고 명확한 의사전달, 차분한 음악과 고요한 공간을 이곳에서
만끽하고 싶어졌다.
5.23
짧게나마 일상의 글을 쓰고,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고,
적당히 노동을 하고, 해가 지면 요가를 하러 간다.
혼자 존재하는 시간을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좋아하는 것들로 채운 환경에 머물다 보니
내 마음이 어떤 온도선에서 잘 유지되는지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협의를 통한 삶의 방향 찾기’
지금의 협의는 다른 무엇도 아닌 나와 내면의 나,
혹은 또 다른 나와의 원만한 소통에 목적을 둔다.
5.24
아무도 모르는 비밀 중 하나.
나는 사실 ‘걱정’스러운 삶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5.25
사람마다 고유한 에너지가 있다.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아도 마주했을 때의 눈빛과 느낌만으로도 알 수 있는 것들.
우리는 애초에 서로 다른 에너지를 가졌다.
그래서 상대방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다르다는 것은 알아챌 수 있다.
결국 각자의 에너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가장 마음 편한 방법인 것이다.
흔히 말하는 기싸움보다 기의 조화를 노려보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일지도.
5.26
어쩔 수 없다.
어울릴 수 있는 것과 어울릴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
5.27
서울과 부산이 교복 같은 곳이라면, 제주는 체육복 같은 곳이다.
학창 시절 내내 나에게 교복은 다들 입으니까 입어야 하는 것, 어쩌다 보니 맞추게 된 것,
입학과 졸업을 위해 입어야 했던 것이다.
체육복은 내 몸과 마음이 편해서 자주 입었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훨씬 더 자주 입고 다녔다.
누가 시켜서도 아닌, 그 당시 내가 선택한 몇 안 되는 자유 중 하나.
졸업할 때가 됐을 쯤, 교복은 대도시의 빌딩처럼 여전히 반질반질했고,
체육복은 제주의 어느 감자밭처럼 투박해졌지만 내 몸에 맞게 애정 어린 모양새로 늘어나있었다.
사실 두 가지 다 나에게 필요한 옷인 건 분명하다.
내 삶에서도 교복을 입듯 서울과 부산에 머물며 배우는 시간들이 있었고,
가끔은 체육복을 입듯 제주에서의 시간을 만끽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 과정을 거쳐 스스로에 맞는 모양새의 옷을 찾아가고 있다.
5.29
그랬구나
그런가 보다
어쩔 수 없지
세 마디가 주는 속 편한 날들.
사실 따지고 보면 어쩔 수 없는 것들을 그대로 두거나 흘려보내는 것만큼 당연스러운 게 없는데.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해보려다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와 혼란을 겪었던가.
5.30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면서도 다르다는 걸 느낄 때마다 또다시 허전함이 다가온다.
어른스럽지 못해 ‘진짜 어른’이라는 상상의 존재를 만나고 싶어 하고,
꾸준하지 못해 ‘꾸준한 사람’을 부러워할 때도 있다.
줄줄이 소시지처럼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편이라 ‘느긋한’ 본성을 가진 생명체를 보며 감탄하기도 한다.
아쉬운 것을 아쉬운 대로 내버려 두는 것,
떠오르는 것을 떠오르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
무탈히 지내고 있는 것에 그저 감사하고 만족하는 것.
이게 지금의 내가 할 일의 전부일지도.
5.31
‘뭐 입지?’에 이어 ‘뭐 먹지?’에 대한 고민이 길어질 때마다
이게 삶의 전부는 아니겠지라는 생각까지 이어진다.
아무래도 굳이 불러일으키는 생각의 고리가 참 많다.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을 어쩌겠어하며 트레이닝바지에 삼각김밥을 사러 나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