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기록 (봄의 기록)

여행자의 날들

by 강흐름
IMG_3478.HEIC 네팔 카트만두

4.1

되도록 모두에게 친절하자.

그게 어렵다면 말없이 웃음으로라도 답해보자.

우리 모두에겐 각자가 해야 할 일이 있기에.

각자의 방식대로 나아가다 보니 그 타이밍과 결과가 맞아떨어지는 게 어려울 뿐이기에.


관광객이 생계수단인 현지인들과 최소한의 비용으로 여행을 하는 나와의 관계는 오늘도 부딪힌다.

하루에도 수 십 번씩 그들을 거절하는 일은 꽤 피곤했다.

그럼에도 진심 어린 거절 속에 웃음을 담아본다.

그들의 마음과 나의 마음에 다른 모양새로 자리 잡은 피로도가 조금이나마 옅어지길 바라며.



4.2

무지막지한 도로를 건너는 것도, 이곳의 대략적인 물가도 어느새 익숙해져 간다.

그럼에도 사람이든 장소든 시간을 들이면 들일 수록 보이지 않았던 것,

몰랐던 것을 매번 마주하게 된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우연히 마주친 어느 아주머니가 왜 이런 외딴곳에 혼자 있느냐는 질문을 하셨다.

그러게. 나는 왜 지금, 여기, 이곳에 있게 됐을까.

미처 이유를 만들지 않고 떠나온 여행. 그리고 깨달았다.

목적지 없이, 어떠한 제한 없이, 어딘가에 머물다 보면

보지 못했을, 듣지 못했을, 먹지 못했을, 깨닫지 못했을 것들을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그 순간을 사랑한다는 것을.



4.3

표면적인 주제 이상의 대화.

이방인으로서가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대화.

여행을 다니다 보면 아주 가끔 그런 일이 가능해진다.



4.4

신기한 경험을 한 날.

마음이 열린 상태에서는 언어와 성별, 나이가 아무 상관없을 정도로 거의 모든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그러나 마음이 닫히면 아주 쉬운 단어조차 들리지 않고,

단순한 문장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된다.

언어는 정말 수단에 불과했다.

마음 상태에 따라 대화가 흐를 수 있다는 것을 깊게 체험한 날.

IMG_3844.HEIC 박타푸르 사원


4.5

여전히 정신없는 네팔의 도로 위에서 문득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다 괜찮다 싶다.

어마어마한 매연 속에서 소음과 함께 평생을 아무렇지 않게 사는 사람과

매 순간 명상을 하며 고요함과 함께 사는 사람.

그들은 지구에 이미 공존하고 있으며, 어느 쪽이 더 옳다고 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시끄러움에 도가 튼 사람과, 조용함을 찾아 떠도는 사람 중에 맞고 틀리고를 가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많은 것을 알아내기 위함이 아닌,

의외로 아무렇지 않게 세상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어느새 무던해질 나를 꿈꿔본다.



4.6

매 순간 마주쳤던 인연과 상황들이야말로 가장 큰 선물이자 추억.

매일같이 감사한 것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편함 없이 잘 지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그리고 그걸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게 여행이라는 것도.



4.7

혼자 새로운 곳을 여행하다 보면 나 자신을 점점 좋아하게 된다.

스스로를 위해 모든 것을 결정하고, 낯선 상황을 즐긴다.

여행은 나에게 모든 의미로서의 사랑을 다시 한번 끌어내는 과정.

-

갑자기 오게 된 다음 여행지.

새벽 도착이라 환전은커녕 유심도 구하지 못했다.

인터넷과 현금. 중요한 두 가지 없이 해가 뜨길 기다린다.

뭔가가 훨씬 더 많이 없던 시절의 여행은 지금보다 단순하면서도 깊고 진했을까?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잘 흘러가는 모양새가 퍽 자연스럽다.


최근 사진 보기.jpeg

4.8

일몰 무렵 우연히 만난 어느 저수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세상이 아무리 유능해지고, 끝내주는 발전과 자본의 성장을 이뤄도 ‘낭만’만큼은 꼭 있어야 한다고.

들숨과 날숨, 음과 양이 있듯이 삶의 발전만큼이나 낭만은 언제나 함께 해야 한다고.

그것이 결국 우리가 기계가 아닌, 하나의 살아있는 존재임을,

인간임을 잊지 않는 길이라는 것을.



4.9

신중히 자리를 잡고 앉아 무념무상 해야 할 것 같던 ‘명상’.

스스로 정의 내린 명상에서 벗어나 나에게 필요한 방식의 명상을 찾고 있다.

고요함 속 소란함, 소란함 속 고요함.

양쪽 모두가 좋아지고 있는 걸 보며 ‘명상’의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4.10

누군가를 안내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만큼 보람 있는 일이겠구나 싶었다.

고산지대부터 시내 한복판까지 책임감 있게 가이드를 하는 ‘나나’를 보며 든 생각.



4.15

삶이 매일 오늘 같은 기분이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

이 순간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함을 기억하기.



4.16

여행을 하며 알게 되는 수많은 것들 중 하나는 경계 없는 것들이 생기는 것이다.

돈이 많든 적든, 여자든 남자든, 나이나 국적은 더더욱 의미가 없어진다.

다 같은 여행자로서 그저 설렘과 낯섦을 안고 각자의 순간을 즐긴다.

한계 없는 다양한 대화와 일상의 따뜻함을 더 잘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재밌게 사는 게 꿈인 내가 여행을 사랑하는 이유.




우리의 삶은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냥 네가 안전하다고 느끼게 하는 곳,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만드는 열정,
아이스크림 등이 있다면 충분할 것이다.

/ 태국의 어느 에세이 중, (Feat.구글번역기 최고)






4.17

유창한 언어실력은 아니어도 감정과 생각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고,

언제 어디서나 ‘나’라는 존재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들을 잊지 않고 챙겨줄 수 있게 됐다.

삶의 모든 순간과 인연이 결국 나의 마음과 의지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배우면서.


이곳에 머물며 자연과 예술, 인간과 동물, 시간과 공간이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연결고리임을 깨닫는다.

그 연결고리들을 본능적으로, 과하지 않게, 아름다울 만큼 몸과 마음에 담아본다.

어느 순간에 이 마음이 작아지거나 증발해도 괜찮다.

지금 담고 있는 에너지와 고유의 성질만큼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기에.

무심코 향한 발길 끝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과 순간 속에서, 오늘도 거대한 감동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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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

내가 지향하거나 바라는 삶을 살기 위해선 보다 유연한 사고와 진심으로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어떤 가치관이나 신념을 무조건적으로 가두기보다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묵묵히 지켜 나가야

오랫동안 함께 할 ‘진짜 신념’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맹목적인 비건, 이유 없는 정치색, 출처마저 흐려진 일반화와 사회화의 오류를 보며

나의 자유와 삶의 기준점을 조금 더 뚜렷하고 단단하게 쌓아가야겠다는 다짐.



4.19

다시 한번 떠올리는 말.

언젠가 세상의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 해도 ‘예술’과 ‘낭만’만큼은 부디 살아남기를.

자본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도 맞지만, 낭만을 잃은 인류가 되어버리는 건 너무 슬픈 일이 아닐까.

거창한 예술이 아닌, 순수함과 낭만을 잊지 않을 정도의 예술과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오늘의 밤.


더 넓은 시선과 생각을 천천히, 차곡차곡 쌓아가며 이번 생을 사랑해야겠다.

‘우다다다’가 아닌, ‘스르르륵’의 삶을 조용히 꿈꾸며.


흐르는 인연에, 맴도는 순간에 그저 친절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것,

그것마저 즐겁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더없이 편안해 보이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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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

비수기라 대부분 문을 닫은 빠이의 요가원.

그럼에도 굳이 요가 클래스를 찾아다니는 나를 보며 Sebran이 웃으며 말한다.

요가든 명상이든 너에게서 끌어내.
밖이 아닌 안에서 충분히 찾을 수 있는데 왜 애써서 그렇게 찾아다니는 거야?


개의치 않는 마음, 당장에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내려놓거나 끝내 잊어버리는 흐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마주하는 순간들. 그 속에서 여전히 많은 것을 느낀다.


뭔가를 자꾸만 배우려 하고 채우려 했던 마음조차 굳이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그의 말을 곱씹어보며.

거부하라는 게 아닌, 모든 흐름을 자연스럽게 맡기며 몸과 마음을 가볍고 깊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뜻 같다. 이런 마음으로 일상까지 살 수 있게 될까?



4.21

오랜만의 야외요가.


잔디 위에서 수련을 하는데 매트 위를 오가는 개미들을 보며 함께 몸을 움직이게 된다.

어우러질 수 있는 삶,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삶, 무엇보다 내 눈과 마음이 살아있는 삶을 상상하면서.


모든 여행이 아름답지만, 지금의 여행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출발 전에 안고 떠나온

흔들림과 막연함이 거의 사라졌다는 점이다.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음에도.



4.22

우리에게 주어진 수많은 일과 인연은 크고 작음이나, 쉽고 어려운 것으로 제단 될 수는 없는 것 같다.

당사자의 의지와 마음이 얼마큼 열리냐에 따라 그 모양과 결과가 시시때때로 달라지고 있기에.


자본과 재능을 핑계 삼기에 앞서 내가 그것을 행할 ‘의지’가 있는지 가장 먼저 되물어봐야 함을,

없는 것과 부족한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마주한 것에 흐름을 맡기며 살아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았다.


잘도 흘러온 시간들.

크게 아프거나 다치지 않고, 그저 감사할 수 있는 순간들.

끊임없이 이어지던 자유에 대한 갈망이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조금은 알게 됐고,

나의 본성을 바라보고 인정하게 된 계기.

이 마음을 온전히 품고서 남은 여행도, 일상도 나아갈 수 있기를.



4.23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실제로는 나를 끌려 다니게 할 때가 있다.

탐욕이 여유를 흔들리게 한다는 것을 나에게서 발견했다.



4.24

주거지와 여행지의 경계를 허물고, 일상과 여행의 구분 또한 굳이 만들지 않고,

이런저런 것들을 무던하게 바라본다.

그렇게 매 여행마다 발견과 확장을 경험하며 언제부턴가 집으로 돌아간다거나 여행을 마쳤다는 말을

굳이 쓰지 않게 됐다. 그 대신 또 다른 여행을 이어간다는 말을 하게 됐다.



4.25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는데 어느새 이곳은 계절이 바뀌고, 벚꽃 잎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흐르는 것들에 대한 단상과 한결같은 것들에 대한 존경을 떠올리게 된다.

계절과 날씨의 변화에 얹혀 스스로의 변화까지 함께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신기하면서도 놀라운 날들.



4.26

그녀의 노력이 결코 짧은 시간과 작은 시도가 아니었음을 알기에.

어느새 가벼워지고, 환해진 표정을 보며 남몰래 울컥한 날.

바다의 윤슬과 겹쳐 보이던 그녀의 미소.




4.27

보이지 않는 고유의 성향들과 변하지 않은 마음을 되찾아가는 길.

완벽이 아닌, 각자의 자연스러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순간들.




4.28

나의 속도와 온도, 현상을 사랑하며 나아갈 것.

주어진 인연과 순간에 다시 한번 마음을 열어 맞이하자.

깊은 느슨함을 만끽하는 날들.




4.29

서로의 진심을 모르면서 건넨 배려는 소통의 오류와 이해 불가능으로 이어지게 했다.

우리는 한동안 그것을 날카로운 칼날 위를 걷는 듯한 기분으로 함께 마주해야 했다.

각자의 시간과 이해를 위한 공부 없이는 칼날에서 내려올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나친 희생정신과 거절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았다.

각자가 원하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말해보기 시작한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우왕좌왕하거나 일시정지가 되는 건 앞으로도 종종 발생할 테지만

그럼에도 조금씩 달라지며 이렇게 드러내고 알아차리기만 할 수 있다면.

무엇을 원하든 우리 모두가 각자의 방식과 속도로 살아갈 수 있기를.




4.30

차분하되 소중하고, 너무 깊지 않지만 여운은 진하게 남는 것.

남아있던 방어력과 자격지심을 넘어서자 기다리는 것들이었다.

미처 열쇠를 찾지 못했던 마음의 문들이 은근하게 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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