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정성스러운 마음.
진심 어린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이 단 한 사람에게라도 전해진다면.
많고 적음에, 크고 작음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나눌 수 있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꺼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11.2
지금으로선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것.
그것뿐이다.
-
초록빛 바다를 만난 날.
때때로 한바탕 뒤집어져야, 엎치락뒤치락해야, 파동을 겪고 나야
반짝이는 윤슬도, 전에 없던 빛깔의 바다색도 새롭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도 깨닫는다.
11.3
무언가에 집중하지 못해 엉뚱한 것들에 시선과 시간을 쓰는 날들.
‘무엇을 원하는지’가 흐릿하다.
몸과 마음을 조화롭고 평화롭게 유지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다.
욕심일까.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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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퍽퍽 칠 때가 있다.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해 정신이 자꾸만 흐트러진다.
코와 목의 정상화가 시급하다.
11.5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괜한 고민 하다 놓치지 말고 그 모든 순간을 꼭 안아주기를.
그렇게 채워낸 충만한 에너지를 또 다른 많은 존재들에게 흩뿌릴 수 있기를.
다시 한번 생명을 느끼고, 다시 한번 사랑과 온기를 가득 담아서.
11.6
삶에서 느끼는, 깨닫는, 중요하다 생각했던 것들을
마음속에 홀로 차곡차곡 쌓아두다 그것을 주고받을 기회를 만나는 것.
시간이 지날수록 외적거리감보다 내적거리감이 가까워지는 인연.
정말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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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천천히 움직이며 나 자신을 정립할 수 있는 것,
그것을 짧게나마 기록할 수 있는 것,
개운하게 집으로 향하는 순간을 만끽하는 것.
-
평소와 다르게 많은 얘기를 털어놓고 나니
두리뭉실 떠다니는 듯했던 마음도, 희미하게 엉켜있던 생각도 안정화가 된다.
자연스러운 것임을,
심각한 것이 아님을,
잘 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숲길을 걸으며 결국 내 마음에서 시작됐을 먼지들을 다시 한번 털어낸 날.
11.7
무언가 드러내지 못하는 것들이 또다시 켜켜이 쌓여가고 있다.
마냥 즐길 수 없는 것들을 성실하게 해내려 애쓰는 날들.
하마터면 또다시 구덩이를 파고 있는 건가 철렁할 뻔했으나
줄어든 일조량을 핑계로 우울을 그럭저럭 마주할 수 있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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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하는 날씨 때문인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급증한 파리.
매장이 따뜻해서일까.
모기도 잡지 못하는 나였건만 가로막힌 공간에서 끊임없이 나타나는 파리들을
파리채라는 직관적인 물건으로 하나둘씩 잡기 시작했다.
이번 생을 통틀어 파리를 이렇게 많이 잡아본 건 처음이다 싶을 정도로.
때려잡을 줄 알게 된 것도 새로운데 계속해서 나타나는 것들과
계속해서 죽여내는 내가 상당히 불편한 흐름이다.
파리의 잔재와 마음의 잔재가 뒤엉키는 중.
11.8
고향에 대한 정의도, 정착에 대한 목적이나 이유도
내 삶에선 여전히 부재한 것들임을 또다시 깨닫게 된 날.
11.9
나다운 곳에 머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나의 많은 부분을 드러내지 않는 곳보다, 드러낼 수 있는 곳에서.
어디로 가면 될까.
무엇을 하면 될까.
이 흐름을 타고 어떻게 나아가면 될까.
몸과 마음이 오롯이 놓인 곳에서 더 깊고, 더 넓게
삶의 에너지를 채워 모든 존재와 다 함께 껴안을 수 있기를.
11.10
모든 조언을 무작정 받아들이기보다
한 발짝 물러나 나를 알고, 나를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애정 어린 조언일지라도
타인의 상황과 나의 상황은 분명히 다를 수밖에 없기에.
그러니, 다른 무엇보다 나의 주체적 의지와 에너지를 항상 안고 있기를.
어떤 일이 들이닥쳐도 굳건히 마주할 수 있도록.
11.11
유동성. 자율성. 독립성.
무엇을 시도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는 날들.
-
원물 그 자체만으로도 완전한 맛을 가진 사과와 고구마를 먹으며
내 본성도 이토록 알차고 온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조화롭게 섞여가야 할 때를 준비해 본다.
어우러지고, 가다 듬고, 합심하고, 스스로 정립하면서.
11.12
인간은 왜 집단이 되는 순간 갈등이 일어나고, 텁텁한 감정이 쌓여갈까.
그럼에도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구정물에 막혀버린 정화조를 누군가가 뚫어야 할 필요는 있다는 것.
흙탕물에 맴돌며 스스로 자책하는 것을 멈추고,
다시 맑은 물을 끌어올릴 준비를 하는 것.
그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만으로도 움직일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11.13
산책의 힘은 생각 이상으로 광범위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과 함께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더더욱.
한량을 의도하지만 진짜 한량이 되기엔 뼛속까지 스며있는 타고난 성질이
자꾸만 이게 맞냐고 되묻는다.
그냥 산책이나 하라는 듯 돌아오지 않는 대답.
-
관계성을 재정비하고, 방향성을 고민하는 것을 보니 곧 연말이다.
변화에는 늘 어떠한 결정이 따를 수밖에 없기에 고민 또한 자연스럽게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날들이 이어진다.
그저 가만히 놓여있고 싶건만.
11.14
우연히 보게 된 ‘가짜 노동’에 관한 영상.
이대로 가다간 물리적 생존만을 고민하다 저 세상으로 가는 개체가 되어
이 땅에 비비적대고 있을 것 같아 혼란스럽다.
11월의 단어는 ‘변화’.
사방에서 ‘변화’라는 단어가 다가온다.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것을 포기하고, 스스로 사랑해 줄 수 있는 길을 택하는 것.
그것은 짧지 않은 마음 앓이와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다.
차라리 잘 나서였으면, 차라리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이었으면
그것을 적절한 핑계로 삼았겠지만 그 모든 핑곗거리를 비껴간 나에겐
겉보기와 달리 쓰디쓴 마음 정리가 때때로 필요하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의 깊고 진실된 세계가 외부에 존재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피할 수 없는 고독과 고립을 기꺼이 환영하기로 했다.
그 결과는 꽤 아름답다.
11.15
십 년 정도 늘 몸에 지니고 있던 목걸이와 은반지 두 개를 오랜만에 빼보았다.
수련을 할 때 자꾸만 걸리적거린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버텨왔던 차였다.
십 년 동안 켜켜이 흘러온 나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생생하게 지켜봤을
유일한 물건이기에 더 애착이 갔던걸까.
오락가락하는 나의 체온은 물론이고, 혼자 중얼대던 무언의 말들까지 다 느꼈을 테니.
그래서 결국, 다시 착용하게 됐다는 얘기.
11.16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며
일상 또한 수련처럼 묵묵히 대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말의 힘은 어딘가로 투둑 하고 뻗쳐 나가는 성질이 있기에.
-
불편해도 거부하고 싶지 않은 인연과,
편한데도 거리를 두고 싶은 인연이 있다.
무언가 뒤바뀐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다.
11.17
모든 인간에겐 마음 어딘가에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잘난 척하고 싶은 심리가 있다.
정도와 드러남의 차이가 있을 뿐.
그것을 어떻게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을까.
11.18
좀 더 과감해야 한다.
이 정도 변화로는 이전의 미련과 습을 끊어낼 수 없다.
하고 싶지 않음에도 붙잡고 있는 것들, 쪼그라들게 하는 것들은
결국 스스로 확실하게 결정하고 정리해야 할 것들.
계기와 메시지가 주는 신호를 부지런히 행동으로 옮기자.
나의 중심을 매끄럽게 감싸 안고서.
-
어딘가에 의존하기보다,
그저 내가 내 얘기를 듣고, 호흡하며 평온을 찾아가는 날들이 시작됐다.
하나, 둘, 셋 하고 숨을 쉴 때마다 불안하고 거친 장면들이 느슨하고 부드러워져 간다.
11.19
기록의 힘이자 매력.
시간의 흐르며 자연스럽게 옅어진 수많은 삶의 흔적들을
과거의 내가 참 잘도 모아놨다 싶었던 날.
거창한 목표보다 쓸 수 있음에, 찍을 수 있음에, 경험할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11.20
마구잡이로 써내려 간 글을 다시 읽으며 다듬는 작업을 하는 요즘.
백지에 써내려 갈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과정.
살림을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게 어렵듯이,
지난날 동안 써온 글을 펼쳐놓고 쳐내야 할 것, 버려야 할 것들을 골라낸다.
꽤 많다는 것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시간들.
11.21
아주 오랜만의 동네 오일장.
북적이는 중앙 건물을 가로질러 나오자 출구에서 꽤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고구마 트럭 하나가 보인다.
조금 떨어진 조용한 곳에서, 오로지 한 가지 작물만을 정성스럽게 바구니에 담아 팔고 있던 사장님.
집에 와서 맛을 보니 대성공.
어쩌면 내가 가지고 갈 삶의 모양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조금 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그러나 진심으로 나의 몫을 활용해 좋은 것을 퍼트리는 것.
11.22
본질을 알아가는 것에 초점을 두고 수련하는 날들이 이어진다.
육체만 움직이기보다 내면까지 발견하고 확장시킬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11.23
너무 많은 짐과, 너무 많은 인연, 너무 많은 정보들은
오히려 나를 무겁게 하거나 발목을 붙잡을지도 모른다.
11.24
‘고요함의 지혜’라는 책을 읽고 있다.
생각은 곧 에고의 것이고, 그것을 완전히 없애려 애쓰기보다 지배당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한다.
‘성찰’은 에고에겐 우울한 일이지만,
나에게는 결국 자유를 가져오는 일이라는 말과 함께.
오랜 시간 우울을 참 많이도 만났었는데,
그게 결국 자유를 만나기 위함이었다면 오히려 고마워진다.
여전히 에고는 들쑥날쑥 등장하겠지만 그럴수록 내가 할 일은
내면의 느낌을 충분히 인지하고, 지나가는 것들을 지나가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11.25
상대가 누구든, 어떤 행동을 하든 개의치 않을 수 있는 마음.
진심 어린, 애정 어린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자세.
11.26
마음에 쏙 들었던 고구마를 사러 다시 방문한 오일장.
그 사이 고구마의 품질은 완전히 다른 모양새가 되어있다.
깨끗하고 매끈했던 것들이 생기를 잃고, 군데군데 곰팡이가 피어 바구니에 놓여있다.
관리하기에 따라 원물의 상태도, 주인의 마음가짐도 달라진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보고 느낀 날.
11.29
권위적이지 않은데 권위가 있는 사람.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조금씩 발전과 확장의 방향으로 바꿔가는 사람.
그게 눈에 선명히 보이는 게 신기해서 나도 모르게 조용히 따르게 되는 사람.
-
매 순간 의도하지 않아도 감사한 것들이 많아지고,
거의 대부분의 것들이 그저 괜찮은 존재가 되어 곁에 머문다.
11.30
평온함 속에 나름의 긴장과 혼란이 있었다.
그리고 그 긴장과 혼란을 털어내는 과정에서 진짜 평온함을 만나는 날들.
무엇이 나를 숨 쉬게 하는지,
무엇을 깨달으며 나아가야 하는지 생각하는 시간들이
조용한 희열을 느끼게 한다.
어떤 모양새든 성장의 속도를 체감할 수 있다는 건 어마어마한 경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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