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떠오르는 추억들과 단상을 떨쳐내려 고개를 흔드는 아침.
고요함과 사유의 시간은 나를 확장시키거나, 성장하게 하거나, 변화시킨다.
그러나 너무 느슨해진 틈 사이로 과거의 잔상들이 스쳐 지나갈 때가 있다.
지난 인연, 오래전 여행길, 첫 일.
모두 다 과거의 것들이고, 내 선택으로 이뤄졌던 것들이기에 아쉬울 것 없지만,
이왕이면 지금의 것들에 시선을 두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진다.
그래서 그렇게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난 걸까.
그때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도 맞기에 지난날을 여전히 사랑하지만
그것에 마음이 묶이지는 않기를.
10.2
나는 나의 무엇을 사랑하고 믿어주는가.
자유를 선택하고, 그것을 위해 끊임없이 유영하면서도 깊어져 가는 길을 찾아갈 용기.
앞으로도 잘 흘러갈 것이라는 확신.
때때로 찾아오는 게으름에 죄책감보다는 오히려 내버려 둘 수 있는 여유.
뒤늦게 찾은 만큼 더 많이 사랑하고 믿어줘야지.
몸 어딘가에 습이 남아 조급함이 슬금슬금 다가와도 개의치 않아야지.
-
조율.
무조건 속도를 내거나 확장시키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것을,
멈춘다는 것은 끝내는 것만이 아닌 주변과의 조율 그리고 나 자신과의 조율을 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10월의 나에게 전한다.
고개를 풀어주듯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을 다시 한번 바라보고 움직일 수 있는 여유를 습득하기 위한 시간들.
바람의 온도가 내려가는 계절이 시작되고 있다.
10.3
별 거 아닌 행동 하나가 여태껏 고수해 오던 것에 꽤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배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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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개인 요가매트를 장만했다.
전혀 길들여지지 않은 새 매트 덕분에 손발의 힘을 훨씬 더 많이 쓰게 되면서도
‘언젠가 잘 길들여져 함께 오랫동안 나아가자’라는 생각을 한다.
길들이는 일.
신발도, 매트도, 바퀴도 익숙해지는 시간이 꼭 필요한데 하물며 매일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우리에겐
얼마나 많은, 얼마나 다양한 길들임의 시간이 필요할까.
온전한 나의 매트를 꿈꾸며 매트 위에서 더 많이 수련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온전한 나를 위해 더 자주, 더 많이 스스로를 바라보고 생각해 줘야겠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잘 알아감으로써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지는 것.
닳거나 너덜너덜해지는 게 아닌, 따뜻한 손때가 스며있는 유연한 사람이 되어 가기를 바라며.
10.4
아직 여름인가? 이제 가을인가? 곧 겨울인가?를 하루에도 여러 번 묻게 되는 계절.
갈팡질팡하는 날씨가 꼭 내 마음 같아서 오히려 동질감을 느끼는 10월.
올 겨울은 조금이나마 따뜻했으면 좋겠는데.
더위 속에서 시원함을 찾아내듯, 추위 속에서 온기를 잘 찾아갈 수 있는 날이 되기를.
10.5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오는 순수한 마음과 태도, 그리고 말에 담긴 파동은
한 사람 그 이상으로 퍼져나가 공간과 시간의 에너지마저 긍정으로 물들일 수 있음을
선명하게 목격한 날.
10.6
나에게 필요한 것.
‘지속’을 위한 의지.
‘몰입’을 위한 집중.
‘완벽한 준비’보다 행동.
지금의 이 느긋한 삶도, 온기로 가득한 날도 행복하고 좋지만,
그 안으로 꽁꽁 숨어버리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든 날.
때때로 필요할 땐 수면 위로 고개를 힘차게 내밀고, 주변을 돌아볼 수 있기를.
혼자만의 세상이 아니라는 것도,
좋은 사람들과 멋진 일들이 곳곳에 놓여있다는 것도 마주하면서 살아가기를.
-
내 품에 주어지는 게 너무나 많아서 울컥하고 감사한 날이 이어진다.
나도 무언가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는 요즘.
결국 이런 생각과 관계 속에 어떤 교차점과 조화로움, 순환점이 쌓이고 쌓여
새로운 흐름과 변화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확장성과 가동범위에 대한 아쉬움.
더욱더 몰입할 무언가를 만나고 싶어졌다.
10.7
사랑하는 것들을 마음껏 듣고, 만나고, 먹고, 만끽할 수 있는 시간들.
그런 시간들을 보내다 보면 너무 좋아서 자고 싶지 않은 밤이 있다.
행여 자고 일어나면 이 귀한 기분이 사라지거나 옅어질 까봐.
그럴수록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막연히 꿈꾸는 것이 뒤섞여 두서없이 튀어 오른다.
어쩌겠는가.
내버려 두는 수밖에.
어디 한번 마음대로 튀어올라 보렴.
순서, 중요도, 넓이나 깊이, 강약의 정도를 개의치 않고 너나없이 마음껏 튀어올라 보렴.
-
여러 감정과 생각들이 뒤엉켜 있지만, 그 모든 게 결국 내 안에서 나왔음을 인정하고,
가만히 지켜보다 이내 툴툴 털어내는 날이 부지런히 찾아오길 바라는 밤.
10.8
세 달이 여섯 달이 되고, 여섯 달이 일 년이 되어간다.
야금야금 거주기간을 늘리면서도 장기 계약을 하지 않는 건
여전히 ‘정착’이나 ‘방향’에 대한 확신이나 의지가 없어서다.
철새처럼 어디론가 이동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지만,
단순한 생활 속에서 몸과 마음에 새기기 시작한 몇몇의 것들을 조금 더 깊고 진하게
가져가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졌다. 나에겐 낯설고 놀라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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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대신 얻는 것들이 훨씬 더 많다 싶은 날들.
비워낸 시간은 바다와 숲을 만나러 가고, 드문드문 좋을 글을 탐닉하며,
틈틈이 요가 수련을 하는 데 쓰고 있다.
마음이 지치지 않게, 피와 살이 평온하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안고 있을 나의 삶이
덜 흔들리며, 더 자유롭게 나아가기 위해 채워가는 순간들.
좋은 것을 만끽하고, 그 기운을 마음껏 흡수하여 온전한 나를 만들어 주기 위해 움직인다.
오랜 시간 쌓여왔을 잔재들을 정리하고 다듬기엔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10.9
아무래도 이상하다.
이렇게 혼자를 좋아하다 침잠되는 건 아닐까 문득 조심스러운 날.
어떻게 살아야 될까에 대한 고민과 선택은 날이 갈수록 묽어지는데.
애초에 채워질 수 없는 감정의 그릇을 자꾸만 채울 수 있다 믿는 건 아닌지,
할 수 있는 것과 꿈꾸는 것 사이에서 시공간만 허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나는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얼마나 솔직한가.
나는 나에게 어떤 삶을 만들어주고 있는가.
부디 나의 서툰 마음이 다가오는 기회와 인연을 놓치지 않기를.
서툴게 흘러가는 것마저 사랑하기를.
10.10
‘예쁠 수 있는 인간’.
생소한 표현.
얼큰하게 취할 때만 용기 내어 전화를 걸어오는 친구가 하나 있다.
차마 차단할 수는 없는, 무언가 인간적인 마음이 남아있는 친구라 되도록 귀를 기울여
목소리를 들으려 한다.
유난히 더 횡설수설이었지만, 그럼에도 그 친구의 선한 마음이 느껴졌던 지난밤.
인간은 모두 외롭고, 부처나 예수도 그랬다며 특유의 속사포 같은 말투로 툭툭 던지는
말속에 너의 외로움을 가늠해 본다.
대화의 끝으로 갈수록 ‘그럼에도 예쁠 수 있는 인간’이 있다는 게 아직까지 자기 삶에는
내가 유일했다는 말을 반복한다.
늘 도전하던 사람이었다고, 늘 새로운 길에 겁도 없이 발을 들여놓던 사람이었다고.
행여 또다시 기억에서 흐려지더라도 너는 늘 그런 사람이었다고.
그걸 기억하라며 평소처럼 톡 쏘는 말투로 툭툭댄다. 고맙다.
10.11
오늘 하루 한 게 없구나 싶다가도
잠시 올라온 팔근육을 보며, ‘아, 수련 한 시간은 했구나’
하루의 에너지가 여유롭게 쓰이는 걸 느끼며 ‘아, 오늘 잘 먹어 뒀구나’
글 쓰는 걸 계속 미루는 것 같아 씁쓸하다가도 ‘아, 일기 하나는 썼구나’
이런 날들의 반복.
류시화 작가가 말하길,
시인은 시를 많이 읽고, 소설가는 소설을 많이 읽고, 그만큼 그 세계에 시리도록 파묻혀야 한다는데.
한강 작가 또한,
눈앞의 글을 진심을 담아 읽고, 수없이 많은 글을 여전히 읽고 또 읽는 것이 자신이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는 방법이라는데.
습관.
연습.
체화.
성실성.
나는 어떤 세계를 떠올리며 몸과 마음에 그런 고독하고도 멋진 흔적을 쌓아갈 수 있을까
궁금해지는 밤.
10.12
감사합니다.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수련할 수 있게 해 주셔서,
몸과 마음에 잘 맞는 것들을 가득히 내어주셔서,
따뜻함을 놓치지 않고 느낄 수 있게 해 주셔서,
괜찮은 것들이 훨씬 많은 삶을 살 수 있게 이끌어주셔서.
이 모든 것들을 마음 깊이 느끼는 날입니다.
이런 귀한 삶에 있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래도 평온한 에너지와 함께 꼭 필요한
몇 마디의 말들, 그리고 따뜻한 온기를 깊고 넓게 퍼트리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의 이 호흡과 마음을 언젠가 꼭 어딘가에, 누군가에게 나눠주고 되돌려줄 수 있기를
꿈꿔봅니다.
날이 흘러갈수록 지난날에 대한 확신과, 앞으로의 날에 대한 용기를 가지게 됩니다.
덕분입니다.
10.13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마음을 안고 나아가고 있을 그녀들에게
오랜만의 안부를 전할 생각이다.
이 작은 땅 덩어리 안에서, 곳곳에 흩어져 발을 딛고 있는 우리가
지난밤 꿈에서처럼 다시 마주 앉아 있을 날을 기약하면서.
10.14
각자의 삶에서 주인공은 내가 맞지만,
결코 혼자서는 주인공의 의미도, 필요도 찾지 못했을 것이다.
마주치는, 스치는, 대화하게 되는 모든 사람들이 고마운 요즘.
그들 덕분에 나의 삶에도 용기와 사랑이 다시 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제 어디서 이어지고, 끊어질지 모를 수많은 관계 속에서
여전히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는 중.
-
요가를 하다 보면 어렵거나 힘든 동작에서 순간적으로 숨을 참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무의식적으로 숨을 참는 것.
요가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
힘들거나 어려울 때 숨을 참아버리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숨쉬기를 더 이상 허투루 할 수는 없다.
나를 위한 호흡.
몸과 마음을 조절하다 보면 무의식 안에서마저 진짜로 편안한 내가 될 테니.
10.15
그때의 나는,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괜한 것을 탓했다.
공기가 좋지 않다고, 사람과 빌딩이 너무 많다고,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라고.
시간이 많이 지나 같은 장소를 방문해 보니 그 모든 게 허상 혹은 갖다 붙인 핑계였음을 깨닫는다.
인파 속에서 고요함을 느끼는 것,
호흡을 오히려 차분히 할 수 있게 된 것,
나와 어울리지 않다는 결론보다 평소와 다른 것을 바라보는 재미로 받아들이게 된 것.
이런 변화된 몸과 마음으로 기억 속 힘들었던 도시에 제 발로 찾아와 감사함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게 된 것.
덕수궁을 느릿느릿 걷다 보니 나도, 사람들도, 도시도 분명 더 아름답고 좋아진 것 같다.
10.16
짧은 여행 중 만난 성당.
종교를 가리지 않고 마주하는 편이라 조용히 맨 뒷자리에 앉아 머물다 나왔다.
오늘도 모든 것에 감사하며,
나의 이 온기 가득한 에너지를 고루 퍼트릴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와 함께.
-
익숙한 정보들, 일반적인 방법들을 가끔은 모른척하며
순간의 내가 끌리는 것에 손을 들어준다. 어쩌면 주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게 결국 여행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니까.
10.17
멋모르고 서울로 올라와, 멋모르고 일만 하던 그때의 나는
열정과 의욕 빼면 남는 게 없었는데.
지금의 나는 평온과 자유를 위해 조용하고도 잔잔한 삶을 선택했다.
그만큼 달라진 것도 많고, 좋아진 것도 많지만 과연 이 또한 맞는지는 알 수 없다.
빠르게 돌아가는 서울의 어느 길거리를 배경 삼아,
결국 또다시 공감과 혼란 사이를 걷는다.
지금의 나는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하는가?’
직업적 선택보다 어떤 행위를 하고 싶어 하는가를 알아낼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
10.18
금방 또다시 깔 것을 알면서도 불현듯 SNS를 삭제했다.
습관적으로, 무의식적으로 하루에도 수십 번을 들락날락하던 어플이다.
하루종일 섬세하게 정제되지 않은 온갖 콘텐츠들을 홀린 듯 보고 나면 어느새
대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일단 눈앞에서 지워버리는 표면적 행동으로나마 지나친 접근을 줄여본다.
나의 본질을 찾기 위해 외부적인 것, 쏟아지는 것들을 가끔은 조절할 필요가 있다.
10.19
사계절을 보내자니 짐은 자꾸만 많아져 간다.
살림살이를 줄이는 것에 그토록 열심이었건만, 추운 계절을 준비하는 나의 공간은
또다시 두터운 것들과 무거운 것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는다.
불현듯 머리가 아파온다.
느슨하게 비워두고 싶던 공간이 꽉꽉 채워져 갈수록 이 많은 짐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게
새삼스럽게 체감되어 숨이 막힌다.
유난이다.
10.20
몸과 마음을 온전하게 안고 갈 수 있다는 것.
주변과 외부의 어떤 자극에 흔들리는 강도와 주기가 줄어든다는 것.
나태하다고 스스로를 몰아세울 필요가 없었다는 것.
내버려 두는 것도, 멈추는 것도, 조절하는 것도,
오랜 노력 끝에 얻은 귀한 것들이기에 다행이다 싶은 날.
-
찹찹한 흙덩어리처럼,
푸르르 몸을 흔드는 커다란 나무처럼,
매일이 다른 바다처럼.
이 드넓은 배경에 자그마한 점 하나를 정성스럽게 찍기 위해 색을 만들고,
붓을 다듬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살아가는구나 싶을 때가 있다.
10.21
어쩌면 저게 내 모습인 걸까 싶어 놀란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힌다.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 있는 에너지,
누군가에겐 왜곡될 수 있는 대답들,
누군가에겐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행동들.
모든 사람에게 다 맞춰갈 수는 없지만,
의도하지 않았을 누군가의 불편한 대화법과 행동을 마주하며
저 모습이 언젠가의 내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절로 뒷걸음질 치게 되었다.
내가 불쾌하다는 건 언젠가의 나도 누군가에게 그랬을지 모른다는 것,
내가 무시당하는 기분이라면, 언젠가의 나도 그랬을지 모른다는 것,
결국 도긴개긴이라는 것이 등골을 서늘하게 한다.
-
가능한 모든 것을 사랑하고, 모두에게 친절하라는 말을 되새기며 살지만
그럴수록 자꾸만 나의 기분은 뒤로 간다.
너무 길지도, 깊지도, 친절하려 애쓰지도 않는 그 중간 어딘가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때다.
나를 위한 친절 없이 흩뿌려지는 사랑은 결국 탈이 날 테니.
10.22
정신을 잃었나 싶을 정도로 깊은 잠에 빠졌던 독감.
뒤이어 든 생각은, 혼자서 이 상황을 어떻게든 버텨내겠다는 것.
다행히 약과 식량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게 누군가의 손길로 준비된 것들이었다.
혹시 모른다며 평소에 챙겨준 약과 식량들이다.
몽롱한 와중에도 여러 생각이 스쳤는데,
이 정도 고통은 언젠가 아무렇지 않아 질까?
정신적 외로움은 어떻게 채워야 할까? – 평생 책이나 영화에서 해답을 얻을 수는 없을 텐데와 같은
흐릿한 의문들이었던 것 같다.
괜찮을 때만, 좋을 때만 사람들과 마주하는 버릇을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어둠 속에서 끙끙 앓으며 누군가에게 아프다고, 힘들다고 말하는 법을 여전히 배우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10.23
하루만 고생하면 되겠지 싶었던 게 이틀이 되어도 여전히 맹렬하자
버티려던 마음이 턱 하고 풀어져버렸다.
이제는 대응하기보다 내버려 두는 수밖에 없다.
아주 오랜만의 신체적 고통이 나를 무기력하게 함과 동시에 점점 더 무의식으로 빠져들게 한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물리적 고통이 가져다준 암흑의 시간들.
그리고 조금씩 정상화되어 가는 것을 느끼며 회복성에 대한 감사함과 감탄.
10.24
남아있는 고통의 잔재는 당분간 더 조심히, 정성껏 몸과 마음을 돌보기 위한 경계성 수단이 되어 줄 예정.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의 신경이 고통으로 곤두서 있는 동안
나는 그것을 잘 달래 보려고, 조용히 해결해보려고 했다.
겨울의 문턱.
신고식을 강하게 치렀으니 올 겨울은 아마 무탈할 것만 같다.
10.25
회복하겠다고 기를 쓰는 스스로를 바라보며
내면의 의지를 발견해 낸 상쾌한 기분.
말수를 줄이고,
몸의 열을 내리고,
자극적이지 않은 원재료의 에너지를 섭취하는 것.
지독한 감기몸살에서 회복하기 위해 필요했던 과정들은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까지 얻게 해 주었다.
10.26
계절과 날씨의 변화가 더 섬세하고, 깊게 느껴지는 시기.
온몸이 열려 있다 싶을 정도로 예민하고 섬세한 날일수록
잘 먹고, 잘 자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진다.
-
몰입하지 못해 텁텁한 날들.
끼익대는 조립식 테이블을 괜스레 탓해본다.
문장을 쓴다는 게, 글을 쓴다는 게.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참 넓고도 다양해서, 그중에서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찾아낸다는 게 여전히 쉽지 않다.
그래도 마음에 계속 제 집처럼 남아있는 걸 보니 이 또한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행위인 걸까.
10.27
몸살의 여파로 머리의 울림과 부자연스러운 호흡이 여전히 옅게 남아있다.
아무렴 어떤가.
어찌 됐든 그것을 무사히 잘 이겨냈다는 게 중요하기에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한다.
-
체력과 건강
수련
철학적 배움과 사색
즐길 수 있는 마음과 기록
이 모든 것들이 온몸이 자연스럽게 배여 언제, 어디에 내가 놓이든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기를.
10.28
용량부족 알림이 떴다.
조금이나 덜어내기 위해 오래전부터 저장해 온 수 만장의 사진을 빠르게 훑어본다.
그동안 내가 만났던 인연들, 먹었던 음식들, 가본 장소들, 경험했던 일들이 차곡차곡 잘도 담겨있다.
그리고 그중 대부분은 더 이상 만나지 않는 사람들, 먹지 않는 음식들, 없어진 장소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이토록 별의별 순간들이 펼쳐지는 와중에 지금의 나를 잘 지켜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어쩌면 이 수많은 기록 하나하나가 전부 도움의 손길로 채워진 걸지도 모르겠다.
긴긴날을 고민하고는 했지만 결국 흔들리지 않는 것들, 두려움 없이 뛰어들었던 것들,
후회 없이 정리한 것들이 합쳐져 나의 모든 발걸음에 힘이 돼주었다.
지난 기록, 최근 기록,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기록 모두가 가치 있는 이유다.
다음을 채우기 위해 이젠 지워도 되겠다 싶은 것들을 하나씩 지워가는 작업을 하는 동안
마음도 조금씩 더 가벼워져 간다.
10.29
때에 따라 반복되거나 연결되는 단어들이 있다.
이번 달엔 유난히 많은 편인데,
‘삶과 죽음’
‘자유와 구속’
‘지속과 유동’ 이 있다.
반의어로 보이지만 오히려 양극의 두 단어를 분리시킬 수 없겠다는 게 점점 더 확실해져 간다.
따로 둘 수 없는 이 단어들의 거리감을 서서히 좁혀가면서.
양 끝에 서서 반대편을 바라보고만 있는 게 아닌,
직접 걸어가며 양극을 한 덩어리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얻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지,
나의 목적은 어디에 놓여있는지에 대한 추상적 고민들을
타인을 통해 좀 더 표면적으로, 혹은 노골적으로 만날 수 있던 달.
속도와 순서 없이, 중요도와 정확성을 제쳐두고 품 안으로 들어오는 이 메시지들을
나는 얼마큼 흡수하고 소화해 낼 수 있을까.
어쩌면 그런 의심조차 할 틈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굳이 보지 않아도 될 길을 보거나 들으며
스스로를 자꾸만 흔들리게 할 필요는 없다는 것.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남은 에너지를 불어넣을 것.
10.30
고요.
침묵.
그 속에서 마주하는 것들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별게 없었다.
그러나 가장 확실한 평온함을 얻게 된다.
10.31
각자의 과제와 역할.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내진 못했지만 어쩌면 이미 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보이는 게 다가 아니고,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주 되새기자.
자체적 성질과 마음 깊숙한 곳까지 진실되게 채워가자.
나를 그 자체로 바라보고 놓아두자.
겸손하되 나를 숨기지는 말자.
천천히 나아가고, 조금씩 섞여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