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의 미학

by 강흐름



결벽증은 아니지만 정리병이 살짝 있는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한 칸짜리 내 방을 청소기로 끊임없이 훑고, 미세하게 흐트러진 물건들을 다시 나열한다.

생각이 많아도 너무 많아 스스로를 지치게 하는 나에게 유일하게 생각을 멈출 수 있게 해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느 주말 오전.

평소와 다름없이 청소기를 돌려대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청소기가 답답한 기분이 든다.

왜 그러나 싶어 분리부터 해봤는데 아뿔싸.

머리카락 뭉치가 쌓이고 쌓여 미어터지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냅다 청소기만 돌려대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틈틈이 청소기도 비워주고 정리도 말끔히 했었건만.

쭈그려 앉아 충격적으로 많이 엉켜있던 청소기 속 내 머리카락 뭉치를 쏟아내고 있자니 그게 꼭 내 모습 같아 퍽 속상했다.

생각이 이미 많은데도 비워내진 못하고 그 위에 온갖 것들을 끊임없이 더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내 상태와 다를 게 없었다.

쓰레기통에 그 어마어마한 양의 머리카락 뭉치를 서둘러 내던져버리며 내 머릿속에 쌓여 있는 알 수 없는 온갖 생각들도 같이 내던져지길 순간적으로 간절히 바랐다.


청소기는 또다시 빈 통이 되었고, 개운한 상태로 다른 먼지들을 쓸어 담을 것이다.

내 머릿속도 비워낼 수 있다면, 가벼운 상태로 또 다른 생각과 무언가를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이도 저도 어렵다면 최소한 미어터지지는 않을 정도만 해두기로 했다.

어느 정도 비워줘야 청소기가 잘 작동하듯, 머리도 어느 정도는 비워줘야 잘 돌아갈 테니까.

비우는 것에 미련 두지 말자. 어차피 다시 잘 돌아가게 되어있으니까.

어쩌면 새로운 것을 채울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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