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떠한 종교나 특정 인물을 믿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에 내려온 그 날 이후부턴 누군가가, 무엇인가가 나를 지켜봐 주고 있다는 느낌이
문득문득 들곤 한다.
위험할 땐 보호해 주고, 배고플 땐 먹여주고, 힘이 들 때 다독여주는 무엇인가.
(길을 잃어버리면 어디선가 개가 나타나 큰 길가로 이끌어주고, 인스턴트만 일주일 내내 먹었을 때쯤엔 누군가가 나타나 반강제로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나는 밥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라도 생기면 사방에서 과일이나 비타민을 건넨다.)
존재하진 않지만 존재하는 것만 같은 무언가 덕에 나는 천천히 나다운 삶을 찾아나가기 시작했다.
신이 존재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근처에 머물고 있을 거라는 속설을 들은 적이 있다.
지금 내 주변엔 분명 신이 있다.
지나가는 개에게서도, 밥 한 끼 제대로 먹이려는 친한 언니에게서도, 내가 하고 싶은걸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누군가에게서도 그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다.
말하지 않아도 나를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그들이 내겐 결국 신과 같은 존재다.
누구에게나 있다는 수호신을 포함해 또 다른 좋은 신들이 나의 앞길에 힘을 실어주는 것만 같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부모님과 내 사람들, 나를 이끌어주는 또 다른 존재들을 위해.
그리고 언제나 나를 위해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이 되길.
+ 바야흐로 수국의 계절이다.
수국 하면 제주도, 제주도 하면 수국이라 드라이브를 가는 곳마다 그것들이 넘친다.
꽃향기를 좋아하지 않아 꽃을 가까이하지 않는 나조차 후각적 향기보다 시각적 향기가 아름다운 수국에 푹 빠져있다. 동쪽을 가도 수국이 보이고, 서쪽을 가도 수국이 보이는 지금 이 시점의 제주는 여전히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