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조리 다이어리] 프롤로그.

by 강흐름


드디어 주거지를 옮겼다.

제주도가 좋아 제대로 마음먹고 입도했건만 어쩌다 보니 내 몸은 공항 근처에 살고 있었다.

우연히 알게 된 공항 근처 카페에서 직원 제의를 받았고 얼른 입도하라는 하늘의 계시쯤으로 받아들여

냉큼 수락했다.

차로 15분이면 공항에 도착하고, 10분이면 마트가 있고, 20분이면 시청과 법원을 포함한 모든 주요 시설이 밀집된 곳. 그곳은 내가 살기엔 너무 복잡하고 과하게 편리한 곳이었다.

시청과 법원은 갈 일도 없고, 내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들이 맛있으니 맛집도 필요 없다.

딱히 장도 보지 않으니 최소한의 생필품과 먹을거리만 사면 되는 나의 생활 스타일에는 대형 마트도 큰 메리트는 아니다.

얼른 좀 더 한적하고 깊숙한 동네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렇게 또 다른 나의 인연이 될 동네와 근무지를 하루의 일과처럼 찾아보고 기다리기를 반복.

살짝 당황스러웠던 면접을 끝으로 나는 공항 근처를 떠나 성산읍 오조리에 오픈하게 될 새로운 카페로 출근한다.

함께 일하게 될 사장님이 정말 시골 동네까지 들어와 살아도 괜찮은 거냐며 거듭 걱정하셨지만

오히려 나에겐 원하던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다.

걱정보단 기대가 앞선다.


+ 오전 시간을 잠으로 보내느니 미리 가서 책이나 읽자는 생각에 면접 보기로 한 카페에 일찍 가 있기로 했다.

책을 좋아하지만 가독력이 좋은 편은 아니라 여러 권의 책을 왔다 갔다 하며 찔끔찔끔 읽는 나는 이 날도 그림을 그리다 책을 몇 장 읽다를 반복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약속 시간보다 두 시간 정도 일찍 갔었기에 마음 놓고 내 시간에 푹 빠져있었는데 알고 보니 투자자격인 사장님의 어머니가 먼저 와계셨다.

서로가 같은 카페에서 일하게 될 사이란 것도 모른 채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었던 것.

사장님이 오고 나서야 어머님은 아까부터 눈에 띄었다며, 참하다며 나를 마음에 들어해 주셨다.

아차 싶었다. 사장님과 어머님은 나를 책을 아주 좋아하고 그림을 그리며, 나이에 비해 차분한 사람으로 확신하신다.

나는 책을 아주 찔끔찔끔 읽는 편이고, 그림은 뭘 모르고 끄적이는 수준이며, 나이에 비해 철없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사람인데.

손사래를 치며 그런 사람 아니라고도 해봤지만 이미 그런 사람이 되어있었다.


이런저런 사회생활을 하면서 실망에서 만족이 되는 것보다 기대에서 만족이 되는 게 더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던 탓에 그분들의 리액션과 호의가 솔직히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그 덕에 거의 프리패스 격으로 같이 일하게 되었으니 뭐 어떤가. 그 모습도 내 진짜 모습의 100분의 1 정도는 포함되겠지..라고 합리화를 시켜본다.

말 그대로 그리고 싶은 거 그리고, 읽고 싶은 만큼만 책장을 읽고 덮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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