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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주형 Aug 07. 2022

지극히 평범한 도망 일지

2. 여행 준비가 이렇게 허술해도 되나요?

 여행 준비는 늘 부모님의 몫이었다. 내가 준비해야 했던 것은 여행 기간 동안 입을 속옷이나 잠옷 같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부모님 없이 가는 해외여행은 많이 달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스스로 준비해야 했다. 일주일을 가는 거니 옷은 7개? 아니야, 너무 많다. 옷은 돌려 입는 걸로 하자. 상의 5벌에 하의 3벌 정도만 가져가는 걸로 하고. 그래도 속옷은 매일 갈아입어야겠지? 잠시만, 앞뒤로 하루씩은 없는 걸로 치자. 그럼 옷이 너무 많은가? 이걸 빼면 너무 적어질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짐 싸고 있지? 하는 고민으로 시간을 보냈다. 출국일을 얼마 남기지 않고 친척과 전화하게 되었는데, 친척은 나더러 정작 중요한 선크림이나 세안 도구, 돈은 왜 준비도 하지 않았느냐며 나를 나무랐다. 그 말을 듣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나면서, 다시금 엄마를 붙들고 나와 도움을 청했다.


 제법 빵빵해진 캐리어를 끌고 교회에 도착했다. 더워지기 시작한 7월 말의 날씨를 두고 땀을 주룩주룩 흘려댔다. 그렇게 꼼꼼히 챙긴다고 챙겼는데, 교회에 도착하고 나서야 내가 선크림을 현관에 두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굴에 덕지덕지 발린 선크림. 오늘 바르고 나오려고 캐리어에서 빼는 순간 내 안중 밖으로 밀려난 그 선크림을 생각하니 아찔했다. 교회에 도착해서 바로 엄마에게 선크림을 두고 왔다 연락을 보냈다. 엄마는 어떻게 그걸 까먹을 수가 있냐며 그냥 친척 것을 빌려 쓰라고 했다. 그렇다고 하기엔 친척이 챙겨 온 선크림의 양도 턱없이 적어서 (캐리어에 넣을 수 있는 액체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를 모르겠어서 그랬다고 했다.) 빌려 쓰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여름 날씨에 가져간 캐리어 치고는 그 크기가 대단했다.


 친척 집은 교회와 걸어서 10분에서 15분 정도 거리였는데, 이모가 스틱형 선크림 두 개를 들고 교회에 나타나셨다. 물론 그 뒤에는 엄마도 서 있었다. 사다 준다고 말하면 될 것이지 틱틱댈 건 또 뭐람. 나는 엄마를 세게 꽉 안고는 잘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어린 딸을 보내는 엄마의 시선 속에는 걱정이 잔뜩 담겨 있었지만 애써 모른 체했다. 아마 알은체를 했다면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 졌을 것이다. 그랬다면 내일 당장 딸을 해외로 보내는 엄마는 더욱 걱정스러웠을 것이고, 딸보다 더 긴 밤을 보냈을 것이다.


 엄마가 간 후에 나는 클렌징 폼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를 부르기엔 시간이 너무 늦어, 그냥 비누로 모든 것을 해결하자 체념했다.




 두렵고 설레는 마음에 밤 잠을 설쳤다. 전날 밤을 설쳤든 푹 잤든 우리 일행은 새벽 일찍 일어났어야 했다. 그렇게도 해가 길다는 여름인데도 해가 뜨지 않은 아침에 출발했다고 하면 우리 일행이 얼마나 일찍 출발해야 했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오 분도 자지 못한 것 같은데 시끄럽게 울려대는 알람 탓에 무거운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교회 앞에는 버스 한 대가 서 있었다. 우리를 공항까지 데려갈 버스였다. 그나마 다행인 셈이었다. 짐칸에 짐을 다 싣고, 인원 체크를 하고, 다시 짐 확인을 하고, 버스는 출발했다. 공항까지 가는 버스는 출발 직후에 잠깐 소란스러웠다가, 바로 고요해졌다. 우리는 고요한 버스에 담겨 공항으로 향했다. 중간에 버스를 바꿔치기했어도 모를 정도로 조용한 상경길이었다.


 공항은 처음이었다. 거대한 공항의 입구에 한 번 놀라고, 자동문이 열리면서 나오는 몇의 외국인을 보며 놀랐다. 내 인생 중 외국인을 처음 본 것이었으니, 벌어진 입을 다물기 어려웠다. 외국인의 푸른 눈을 어찌나 뚫어져라 쳐다봤는지, 옆에 서 있던 친척이 실례라며 눈치를 줄 정도였다. 자기도 신기하다는 듯 같이 쳐다봤으면서. 공항은 외부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더 넓었다. 그리고 깨끗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출입하고, 이렇게 넓은 공간인데도 항상 청결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눈을 돌릴 때마다 청소하는 사람이 보였던 것이 제일 큰 이유였겠지만.


 준비는 모두 끝나 있었다. 사실상 내가 할 일이라고는 없었다. 그냥 내 짐을 카트에 잘 실어놓고 방해가 되지 않게 멀찍이 떨어져 있다가 오라 하면 가면 되고, 다른 사람들을 따라 움직이면 되는, '너는 가만히 있는 게 돕는 거야'의 정석이었다. 우리는 가져온 짐 중 일부를 기내 수화물로 가져갈 생각이었다. 캐리어 무게가 얼마 이하인 사람들이 가능한 것이었는데, 나는 캐리어 속에 담긴 책들이 마음에 걸렸다. 첫 해외 여행을 가면서 책을 챙겼던 그때의 나는 참 어리석었다. 가족들과 여행을 갈 때는 책을 챙기는 것이 당연했으니까, 이번에도 가서 책을 읽을 생각이었나? 물론 그 당시에도, 앞으로 있을 몇 차례의 다른 해외 여행에서도 책을 챙기는 것은 포기하지 못했다. 캐리어에서 책이 빠지게 되는 것은 이후, 여행에 가서 내가 글씨를 단 한 자도 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이다.


 오래 전에 갔던 여행이라 그런지, 아니면 정말 별 문제가 없었던 것인지, 우리는 큰 탈 없이 출국심사를 마쳤다. 우리가 타려는 비행기 쪽으로 가까워질 때마다 꼭 영화의 한 장면을 걷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전날 밤까지 내가 탄 비행기가 추락할까 노심초사하던 나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당장이라도 비행기에 올라타고 싶었다. 물론 당장 비행기에 올라타는 것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긴 인내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럴 거면 조금 더 늦게 출발하지. 텍스-프리 샵을 구경하다가, 먹을 것을 사 먹다가, 이내 다들 모여 있는 자리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일찍 출발한 탓이었다. 내부가 시원했던 것도 한몫을 했고. 그때는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때인 데다가, 어차피 해외를 나가서 폰을 켜지도 못 한다는 (폰을 사용하는 순간 요금 폭탄을 맞을 거라는) 무시무시한 말들에 휴대폰도 챙기지 않았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가만히 앉아서 조금 졸며, 비행기 보딩 시간까지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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