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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슬 Aug 16. 2022

Prologue

장애인이라고 해서 엄청나게 특별하지는 않습니다만

어디를 가든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어 보려고 가볍게 자기소개를 하며 운을 떼곤 한다. 코로나19의 개인적인 순기능 중 하나는 이러한 '첫 자기소개'를 비대면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인데, 때문에 나를 컴퓨터 화면으로 처음 본 사람들은 나를 직접 대면하기 전까지 내가 휠체어를 탄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물론 내가 대면하기도 전부터 휠체어를 탄다고 선수를 치는 일이 잦지만.)


아주 재미있는 것은, 내가 그들에게 "있잖아, 나 사실 몸이 좀 불편해서 휠체어 타." 라고 이야기했을 때 반응이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쿨하게 "응, 그렇구나" 하고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말그대로 '갑분싸'가 될 때도 있다. 대부분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몰라서 그러는 듯한데, 당황스러운 기색이 (텍스트로 드러날 정도로) 역력해 보이면 내가 먼저 '너 나 만나면 바로 알아볼 걸? 나 만나면 먼저 인사해 줘 ㅎㅎ' 하고 웃어 버리는 편이다. 아, 예외적으로 휠체어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갑자기 나에게 불의의 사고를 당했냐며 연민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있긴 했다. 이럴 때는 사고 당한 거 아니고 어렸을 때부터 이랬다고 대충 얼버무린다. 내가 굳이 당신에게 나조차 정확히 모르는 내 장애의 시발점을 읊어 주고 있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어찌됐건, 적어도 이 사회에서 '신체적 장애', 특히 청년이 가진 장애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어쩌면 생경하고, 때로는 특별한 요소로 자리매김한 듯하다. 장애라는 말 한 마디에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공기가 시시각각 변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나 정작 나는 2n년을 이 몸으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딱히 스스로를 '장애인이어서' 특별하다고 여긴 적은 없다. 물론 동작이 좀 느리고 소위 '몸을 쓰기를' 요구하는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데에 있어 가끔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신체적인 차이가 적어도 내가 속한 사회에서 나를 특출난 존재로 만들어 주지는 않았다. 결국 나 역시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 20대 청년일 뿐이고, 같은 공동체에 속함으로써 비슷한 사회적 경험을 하며 자라났으니까. 


물론 나에게 있어서 장애란, 내 정체성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내게 어쩔 수 없는 수많은 영향을 끼친 존재다. 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은 장애를 내 정체성의 전부로 바라볼까? 내가 바라보는 나와, 남이 바라보는 나 사이에 생겨 버린 이 괴리를 좁히려면 역설적이게도 내가 나의 장애에 대해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어떤지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겪은 경험이 다른 장애인 분들의 것과 동일하다고 무조건 일반화하기에는 많이 위험할 것이다. 그러나 세간에 자리 잡힌 사회적 인식을 바탕으로 나에게 초면부터 온갖 잣대를 들이미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바꾸려면, 내가 그들로 하여금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경험을 한 장애인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것도, 내가 가장 자신 있는 표현의 매개체인 글을 통해서.


이러한 생각의 꼬리들이 [장애가 나에게 가르친 것들]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내가 나의 장애로부터 배운 모든 것들에는 세상의 따뜻한 면과 냉혹한 면이 공존한다. 그러한 공존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 이제 이 시리즈를 통해 '장애가 씨를 뿌리고, 결국 이한슬이라는 대체 불가한 정체성이 피어난' 순간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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