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 번째 일기를 쓰러 왔다. 지금은 저녁 9시 49분. 나는 오늘도 제주도의 한 숙소에서 목욕을 하고 있고 joey stamper의 can‘t take my eyes off you가 담긴 플레이리스트를 듣고 있다. 아, 물론 오늘도 한 잔 했다. 아빠랑, 오빠랑.
하나의 뾰족한 주제의 글을 하나 쓰고 싶다만 오늘도 두서없는 잡다한 마음이 담긴 구구절절한 일기가 될 것 같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다만 별 것 없어도 감정에 솔직한 그런 일기.
오늘 아빠, 오빠랑 술을 마시며 이런 질문을 했다. ”아빠, 오빠, 좋은 남자의 특징 두 가지만 말해줘. 그리고 똑똑한 사람의 정의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알려줘. “ 아빠가 물었다. “네가 생각하는 똑똑한 사람은 뭔데?”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음… 미래에 다가올 다양한 문제 상황을 함께 잘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
결론적으로 오늘 나온 좋은 사람에 대한 5가지의 키워드가 있다면 사랑, 배려, 수용, 배움, 긍정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들 중 제일 재미있었던 건, “사랑하면 어떤 일이던 이겨낼 수 있고, 이겨낼 수 있다는 건 사랑한다는 의미다”라는 아빠의 말이었다. 아빠는 곧이어 말했다. “사랑하면 못 헤어져. 못 헤어지는 게 사랑이야. 요즘 연인들이 너무 빨리 헤어지는 걸 보면 그들은 사랑을 한 게 아니라 단순히 연애를 한 게 아닌가 싶어. “
나는 아빠의 말에 공감했다. 사랑과 연애는 다르다. 나는 과연 몇 번의 사랑을 해보았는가. 연애 말고, 사랑. 헤어지느니 죽겠다는 그런 사랑 말이다. 당시에는 분명 사랑이라고 생각했으나, 결과적으로 모두 이별한 것을 보니 나는 아직 사랑을 찾지 못했다고 말해야 하는가.
혹은 우리 세대의 변질된 사랑, 연인, 애정, 관계의 가치로 인해 나 조차도 휘둘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요즘 세대에게 연인, 사랑의 가치는 너무나 가벼워졌다. 뉴욕행 티켓이 아니라 강릉행 열차가 되어버렸지. 너무 쉽게 시작하고, 쉽게 마무리하고. 모든 게 빠른 속도감으로 흘러가고 그것이 관계의 가치에도 반영이 된 이 시대. 일 때문에 바빠 연인에게 조금은 소홀한 사람이 당연해 보이고, 갈등이 깊어지면 맞춰가는 시간이 아까워 헤어지는 이 시대. 나는 어떤 사랑관을 추구해야 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완벽한 정의를 내리긴 어렵지만 분명한 건 나는 어려운 시작과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다는 기대감이 있는 관계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상대의 사랑관은 조금 고지식하고 꼰대스러워도 될 것 같다. 사랑과 관계에 있어서는 무겁고 더 많이 진지해져도 지나치지 않는 것 같으니 말이다.
사람과 사랑이 더 어렵게 시작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별은 더 어려웠으면. 이별하면 죽을 것 같아야 된댔는데 그런 사랑을 느끼게 하는 사람을 이번 생에 만날 수 있을까? 아직 못 만난 건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은 운의 문제인지 혹은 그런 사랑을 주기에 아직은 부족한 나의 문제인지 모르겠다.
하여튼. 사랑에 대해 말하는 아빠를 보고 샘이 나는 밤이었다. 나도 연애가 아니라 사랑을 시작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전에 내가 지향하는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