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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기록 Apr 19. 2019

엔딩 노트1. 영정사진 준비

우울증 환자의 <and-ing note project>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많은 사람들은 슬픔을 나눴다.

슬픔을 나누는 와중에서도 우리는 아쉬운 점을 말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심지어 가족 중에서도 그 이야기를 했었다.

바로, 영정사진.

할머니는 단단히 화가 난 표정이었다.

당시의 나는 그저 할머니를 떠나보낸 슬픔과, 쓸쓸하게 돌아가신 당신의 가여움과, 사진 찍는걸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할머니 영정 사진을 내가 찍어드리지 못했다는 한탄스러운 마음 때문에 이 사진이 잘 눈에 보이지 않았는데 지나고 보니 다른 사람들의 말대로 할머니의 표정이 너무나도 안 좋았다.

어색한 포토샵은 주름 없는 88세의 할머니의 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할머니의 모습이 아니다.

분명 할머니도 이 사진을 찍고 확인했을 테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을게 확실하다.


나의 영정사진을 생각해본다.

배경색은 꼭 무채색이어야 하는가?

흑백이 좋을까, 컬러가 좋을까.

웃는 얼굴이 좋을까, 무표정이 좋을까.

꼭 얼굴만 나와야 하나? 꽃이나 좋아하는 물건 같은 소품을 들고 찍을 순 없을까?

영정사진이 여권사진이나 운전면허증처럼 꼭 정해진 법칙이 있는 것인가?

무슨 옷을 입고 찍을까? 노메이크업 상태가 좋을까?

문상오는 손님들을 위해 생기 있는 얼굴로 맞이해야 한다면 메이크업을 해야 할까?


죽음도 삶의 일부인데, 왜 우리는 죽음을 어둡고 음침하게만 생각하게 된 걸까.

나는 내 영정사진을 직접 찍어 볼 생각이다.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의 옷을 입고, 내가 태어난 날짜의 나의 탄생화를 들고서.

https://ko.wikipedia.org/wiki/%ED%83%84%EC%83%9D%ED%99%94

<참고해보면 좋은 나의 탄생화 찾기>




사실, 이 영정사진의 스토리는 따로 있다.


1.

약물치료를 줄이고 심리치료를 시작하기에 앞서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기로 했는데, 

그중 첫 번째는 바로 '꽃'이다.

인간이란 역시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자연물을 만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평온을 찾게 되더라.

27살, 첫 회사를 관두고 꽃을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꽃시장과 꽃집을 열심히 다니며 꽃을 만지던 때가 있었다.

꽃을 만지다 보면, 이파리를 다듬고 흙은 만지고 줄기를 잘라주고 그 향에 취하니 모든 상념이 사라진다.

그렇게 완성된 한 폭의 그림 같은 꽃묶음은 분명한 행복감을 주었다.


2.

취미라고 찾아보자면 아마도 사진을 찍는 것이다. 특기라고 뒤져보자면 필름 사진을 찍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 중 제일은 분명히 '필름 사진 촬영'이다.


처음엔 단순한 이유였다.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하고 싶은 욕구.

나는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고 미대를 졸업했지만 좋아하는 것과 잘한다는 것은 분명히 달랐다.

'그림은 잘 못 그리니까, 사진으로라도 남겨야겠다. 셔터만 누르면 되는 이토록 쉬운 기록법이라니'라며.

처음엔 그렇게 잡은 카메라였는데, 이제는 안다.

그 '셔터만 누른다'는게 정말 어렵다는 것을.


셔터를 누른다는 것은 아주 신중하게, 내가 담고 싶은 순간을 끈기 있게 기다리고, 또 그 기다리는 동안 모든 숨을 참고 집중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내 숨과 그 순간을 함께 담아내야 하는 일이라는 것. 그렇기에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셔터를 클릭하는 단순 행위가 아닌 찍히는 피사물의 영혼은 물론, 찍는 이 본인의 영혼도 담겨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그렇게 찍힌 사진들은 찍는 이와 찍히는 이, 그리고 모는 이들 모두에게 소중 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종종 "나는 사진들을 보면 찍은 순간이 모두 생각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본인 포함-그것은 개뻥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쳐본다. 저런 마음가짐으로 셔터를 눌러본 사람이라면 진정 내가 이 사진을 언제, 어떻게, 왜 찍었는지 알 수 있다. 분명히. 그것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런 가치 있는 사진을 찍어내고 싶다.


3.

사실 카메라의 등장은 회화로부터 출발했다고 하니, 내가 그림 대신 사진을 택한 것이 영 터무니없는 일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제 1번과 2번을 합치겠다. 나는 모두의 사진을 찍어주고 싶다. 모두의 영혼을 담고, 나의 숨을 불어넣은, 각자의 탄생화를 들고 찍은 생의 마지막 사진. 그 첫 번째 주인공이 바로 나 자신인 것뿐이지. 언젠가는 그런 사진관을 차려 운영하고 싶다. 될 수 있다면 나의 남편, 부모님, 친구들의 사진을 내가 찍어주고 싶다. 그들에게 어울리는 그들을 닮은 꽃다발을 한 아름 들게 하고.




3일 후에는 엄마와 함께 조금 장기간(4주)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영정사진을 촬영하는 것은 조금 미뤄야 하겠지만, 이것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왠지 조금 더 살고 싶어 졌다.

그 사진들을 찍어내기 전까지는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아, 참고로의 나의 탄생화는

희향(Fennel)이라는 꽃. 꽃말은 '극찬'이다.

출처는 구글 이미지 검색에서 받아왔는데, 문제가 될 시 삭제하겠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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