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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기록 Apr 20. 2019

엄마의 필름 카메라와 딸의 일기로 기록하는 모녀여행

마미 마이 레코드 : 그 두 번째 이야기에 앞서

2015년 6월 8일.

엄마의 생일에 맞춰 'MOM-MY RECORD마미 마이 레코드'라는 독립출판물을 발행했다.

엄마와 나의 기록, 이라는 기획 아래 <엄마의 은밀한 일기장과 딸의 흔하고 조금 낡은 카메라에 기록된 크로아티아와 주변국 그리고 터키에서의 이백육십사 시간>이라는 엄청난 길이의 소제목을 가지고 있던 A5판형의 113페이지 포토에세이.

당시 입고했던 <일단 멈춤>의 사장님이 찍어주신 사진

당시 100권 정도 발행을 했었는데, 아무래도 저렴한 가격과 '모녀 여행'이라는 키워드가 잘 받아들여져 빠른 기간 내에 입고 문의는 물론, 재입고 문의도 들어오고 완판된 기억이 난다.

(애초에 엄마의 생신선물로 제작한 책이었기에 2쇄는 하지 않았다.)




<마미 마이 레코드>의 표지

엄마와 딸은 단둘이서 여태껏 총 세 번의 여행을 했다. 그 세 번의 여행 동안, 딸은 손바닥만한 수첩에 무언가를 계속 끄적이는 엄마를 봤다.


딸이 처음으로 엄마가 일기 비스름한 것을 쓰고 있는 걸 본 날은 2013년 3월, 엄마와 딸이 떠난 첫 여행에서였다. 그 여행에서 딸은 엄마의 수첩을 보려고 했지만 엄마는 화들짝 놀라 꽁꽁 숨기고선 절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서 딸은 엄마를 유심히 지켜봤으나, 엄마는 딱히 평소에는 일기를 쓰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항상 어딘가에 다녀올 때면 꼭 같은 수첩을 챙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1년 지난 두 번째 여행 때도 엄마는 밤마다 호텔에서 등을 켠 채로 잠들기 전, 무언가를 남겼지만 역시나 딸에게 보여주지는 않았다. 더 이상 딸도 처음 엄마의 여행 일기장으르 봤을 때처럼 흥분해서 보여달라고 조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자신과의 여행에서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는 엄마를 보면, 어떤 글을 쓰고 있는 건지 궁금해하며 괜스레 설레었다.


1년 이 더 지나 엄마와 딸은 세 번째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딸은 여행을 떠나기 전날, 엄마에게 말했다.


"이번 여행에서만큼은 엄마의 일기를 보여줘. 엄마의 일기랑 내 사진들로 우리 여행의 기록을 영원히 남기자. 그걸로 책을 제작하고 싶어. 처음으로 나오는 건 엄마를 줄게. 내가 올해 생각한 엄마 생일 선물이야"


엄마는 당황했지만 이내 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엄마는 항상 딸과의 여행이 끝나면 딸에게 작은 선물을 받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핸드폰이나 컴퓨터에서 확인해야 하는 디지털 사진이 아닌 직접 뽑은 실물 사진들이었다. 엄마는 그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다시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왔지만, 사진을 볼 때면 다시 또 그곳에 가있는 것이다. 엄마는 그래서 딸이 찍어준 사진들을 좋아한다.


엄마는 여행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본인의 일기장에 적힌 글을 다시 읽지는 않는다. 수첩이 작고 글씨를 휘갈겼기 때문이다.(엄마는 자꾸만 눈이 침침해져 간다.) 하지만 그래도 엄마는 계속 남긴다. 남기지 않으면 시간을 잃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번에 딸이 말한 것은 '내가 기록한 시간들'과 '딸이 기록한 장면들'이었다. 일기장을 보여주는 것은 꺼림칙하지만 그래도 마다할 이유는 아니었다. 여행을 끝내고 엄마는 말없이 일기장을 딸에게 건넸고, 딸은 사진들을 모아 이 책을 제작했다. (2-3p)




이것이 마미 마이 레코드의 시작점이다.

4년이 흐른 지금, 많은 것이 바뀌었다.

20대였던 딸의 나이는 30대가 되었고, 결혼 같은 건 안 할 거라며 외친 딸은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

엄마는 30년을 넘게 다닌 직장을 그만두었다. 서예가 취미였지만 국악이라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엄마는 시어머니를 잃었고, 딸은 할머니를 잃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허전함과 상실감은 남은 가족들이 채우고 있다.

둘은 곧 네 번째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이번에는 조금 더 긴 시간 동안.

가끔 엄마와 딸은 3년 전 제작한 그 책을 이따금씩 펼쳐본다.

어설프기 그지없는 그 책은 그래도 둘만의 영원한 기록이며 추억이다.

그래서 두 번째 책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서로에게 유한한 시간 동안 무한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는 더 잘 알게 되었으니까.




이번에는 역할을 바꿔보기로 한다.

딸은 2013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녀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를 빼고)

그녀에게 기록은 중요하다. 대학교 광고 수업시간,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라는 광고 카피를 본 후부터다.

그 기록은 사진으로, 어느 때는 그림으로, 그리고 2013년 그녀의 생일부터는 본격적으로 글로 남겨졌다.

그렇기에 이번 여행에서 딸이 일기를 쓰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매일 하는 일이니까.

엄마는 딸에게 있어서 원조 사진가였다.

지금은 사위가 딸의 사진을 가장 많이 찍어주는 사람이지만, 원래 딸이 태어난 순간부터 자라나기까지의 그 몫은 전부 엄마였다. 딸의 사진은 물론, 아들의 사진, 남편의 사진, 집의 사진 등 작은 리코 자동카메라를 가지고서 엄마는 매일을 기록했다. 갓난쟁이 여자아이의 목욕하는 순간부터 이불에 쉬야를 하고 벌 받고 있는 모습, 초등학교 입학, 졸업.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대학교 졸업식까지도 엄마는 딸의 성장을 꾸준히는 아니었어도 계속해서 찍어왔다. 그런 엄마에게 이번 여행에서 딸의 사진을 찍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원래 해왔던 일이니까.


4월 22일부터 5월 15일까지 총 24일 동안, 엄마와 딸은 서로를 기록하는 여행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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