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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기록 Apr 22. 2019

확실한 건 나는 도망쳐 왔다.

마미 마이 아일랜드 : 1일 차 이야기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도 없이 여행을 다녔다.

하지만 이렇게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떠나온 적이 있었나.

껌딱지처럼 붙어지내는 남편을 한국에 두고, 엄마를 잃은 쓸쓸한 아빠를 한국에 두고, 나와 엄마는 떠나왔다.


나의 현재 상태는 우울장애, 공황장애, 사회 공포증, 범불안장애, 수면장애 등 굉장히 불안정하다.

우리 엄마는 과연 상상이나 했을까? 내 딸이 이런 병에 걸릴 것이라고.

유독 어릴 때부터 외향적인 성격이었던 나는 엄마에게 걱정 없는 자식이었는데, 점점 나이가 먹을수록 사람은 변하더라. 나도 내가 이렇게 되리라고는 정말 단 한순간도 상상조차 해본 적 없지.


그런 나는 역시 사회생활이 현재 불가하기 때문에 회사를 쉬고 있고, 엄마는 충분히 직장생활을 성실히 해왔기 때문에 은퇴했다. 그렇게 우리 둘의 쉼의 톱니바퀴가 맞물렸다. 그래서 그동안의 서로의 고생을 치하하며 떠나온 여행이었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불편할까. 아마도... 사실 나는 도망쳐와서겠지.

나는 도망쳐왔다. 한국으로부터, 사람들로부터.

누구에게든 털어놓고 싶은데, 또 누구에게도 말하기 싫은 그런 거.

상담받는 선생님에게 조차 "선생님이 독심술사였으면 좋겠어요."라는 사이코 같은 말을 던질 정도로 나는 지금 정상이 아니다. 그런 내가 엄마를 방패 삼아 섬으로 도망쳐 온 것이다.

누구보다도 나를 아껴주는 남편으로부터, 남편만큼 나를 걱정해주는 친구들로부터, 가족으로부터.

그래, 그게 정답이기 때문에 내 마음이 이렇게나 불편한 것이다.


엄마는 어떨까? 엄마는 기꺼이 내 방패가 되어주려 이 곳에 있는 걸까? 아님, 이런 나의 괘씸한 생각은 꿈에도 모른 채 은퇴 후의 작은 로망을 실현하러 온 것일까? 한 달 후, 엄마는 이 일기를 읽게 되겠지. 내 마음을 알게 되면 엄마는 나에게 배신감을 느낄까? 엄마, 용서해줘요. 하지만 내가 제일 안정감을 느끼고 사랑하는 사람은 엄마인걸. 비겁한 딸이지만 그래도 엄마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만큼은 진심인걸.


엄마와의 여행은 이번이 네 번째고, 단 둘이 떠나온 자유여행은 두 번째며, 4주라는 시간을 보내는 장기여행은 첫 번째다. 불량한 마음으로 떠나왔지만, 이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쳐야지. 어릴 적 엄마가 내 보호자가 되어주었던 것처럼, 이번엔 내가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 말도 가르쳐주고 길도 안내해주고 차도 운전해주고 그래야지.

이미 떠나온 이상, 이 우울감을 타파하자!


출발
이륙준비
아이언맨
오늘은 엄마의 법정 생일날이다
미리 주문한 대한항공 케이크 서비스
일단, 나하에 도착
밤마실, 들어갈 시간의 제약이 없음을 가장 좋아하셨음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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