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 2015>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 The Anthem of the Heart, 2015
멋진 성 안의 공주님과 왕자님의 이야기로 꿈을 꾸던 어린 시절의 준은 참 순수했다.
순수한 모습을 가진 어린이기에 엄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순수한 한마디의 말 때문에 집안의 행복은 망가졌고, 상처를 남겼으며, 상처받은 부모의 고스란히 그 상처를 다시 아이에게 전달했다. 자신 때문에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 상처받은 아이, 주인공 준은 그렇게 달걀의 저주에 걸렸다며 말 못하는 아이로 변해가고, 점점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하기 시작한다.
성 모양으로 생긴 '러브호텔'안에서 나오는 아빠를 봤다는 한마디.
그 러브호텔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성 안에서 나온 왕자님이 아빠라는 것이 무척이나 설레었던 아이에게 부모는 예민한 칼날을 들이대었고, 그것이 상처가 되었다.
말을 할 수 없는 달걀의 저주. 그 저주는 무서웠다. 말을 하고자 하는 의지 자체를 없애버렸고, 말을 하면 안된다는 의식에 사로잡혀서 말을 하고 싶지만, 말을 하면 배가 아파서 도망치는 그렇게 말 못하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고등학생이 된 준, 새로운 반에서도 늘 그래왔듯이 달걀의 저주를 풀지 못한 채, 말 못하는 아이로 살았는데,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지역교류회위원이 되면서 준의 새로운 난관이 시작되었다. 영화의 초반, 말에 대한 상처가 심한 준은 어떤 상황에 놓일 때마다 말 못하는 자신에 상태를 대변하듯 늘 이렇게 말한다.
'말은 절대로 되돌릴 수 없다고, 후회해도 되돌릴 수 없는 거라고!'
절대로 되돌릴 수 없고, 후회해도 되돌릴 수 없는 것.
그 것 때문에 상처를 받았지만, 방법을 몰라 헤매며 그렇게 하루를 살아가는 준, 하지만 이 영화에는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 또 등장한다. 준의 엄마는 배신한 남편에 대한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고, 상처받은 딸을 위로하고 보듬어야 했지만, 자기 자신을 위로하기에도 벅차고, 위로하지 못함에 결국은 좌절하고, 딸에 대한 상실감만 가득한 사람. 싫고 귀찮아도 늘 불편한 말은 하지 않는 쪽이 편해서 참는 다쿠미. 자기가 다쿠미를 사랑하지만 지난 날의 상처에 의해 마음을 외면하며 말을 하지 않는 나쓰미. 야구부 에이스이지만, 성장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다치고, 자기 자신을 위로하지 못해 되려 다른 팀원들에게 화를 내면서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스스로에게 상처를 만드는 다이키. 이 모든 사람들은 내면에 상처가 가득하지만, 현실속에서 그저 잠시 다른 것으로 덮어둔 채, 일상을 살아가는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게 말로는 되지 않는다면, 노래를 통해서 하면 되지 않을까?'
말을 하지 못하는 준에게 다쿠미가 했던 말이다. 다른 방식의 표현, 그것이라면 가능할까?
이 작은 호기심은 이들에게 작고 큰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말이 상처가 되어 마음을 닫은 준이었지만, 또 다시 말이 위로가 되어 용기를 낸 준.
그래서, 이 네 명의 친구들은 준이 적은 준의 이야기를 뮤지컬로 제작하기로 하는데, 준이 말하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그 외면만 보고 판단했던 많은 친구들은 무엇인가 행동해야 한다는 자체를 불평과 귀찮음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준이 보여준 용기 있는 행동이 그의 진심을 읽게 했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서 함께 돕고 참여하기로 결정한다.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싶다고 손을 들어 용기내어 표현하게 한 순간, 변화하려고 준비 되어 있던 많은 것들이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영화에서는 말로 표현하지 않고, 무조건 참는다는 것은 결국 오해를 일으키고, 원하는 쪽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을 잘 깨닫게 해준다. 이 영화에서는 해소하는 그 방법이 뮤지컬이었을 뿐, 결국은 회사나 가정에서 늘상 벌어지는 우리의 삶의 이야기다. 서로 다른 성격과 말과 행동 속에서 조율해가며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 속에는 진실함과 용기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 상처를 받는 것도 나 자신이고,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결국 내 내면의 변화에 의해서 되는 것이라는 사실. 상처받은 사람이 치유하고자 하는 의지 없이 마음을 닫아버리면 그 통제력은 실로 무섭다. 하고 싶은 의지를 꺾고, 마음을 닫아버리게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이 성립되는 순간이니까.
영화 내에서 그들은 방법을 찾고, 설득하고, 만들어가면서 깨닫는다.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고, 진심을 말하고, 알고, 느껴간다.
때로는 잘 이루어지는 것 같아 보여도, 크게 다가오는 마음의 부담. 작아진 자존감이 조금씩 성장해가도 큰 일이 닥치면 다시 예전처럼 작아지는 모습 때문에, 또 다시 숨고자 하는 의지가 불쑥 튀어나온다는 것. 숨고 피하고, 회피하고 싶은 어떤 것들에 대해서 다시 또 다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준의 에피소드를 통해 다시 이야기한다. 자존감을 일으킬 환경과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닌 것이 나타났을 때, 아닌 것을 아니다 라고 이해할 수 있는 어떤 힘이 필요하다는 것.
그래서 이해가 성립되었을 때, 그것 자체를 용기있게 걷어내버릴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결국은 상처치유의 문에 다다른 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부딪히는가, 아니면 회피하는가.
준은 부딪혀서 일어서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것은 곧 모든이들에게 변화에 대한 확신을 주는 계기가 된다.
한 아이의 성장과 위로 그리고 찬구들의 변화를 통해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 영화는 생각보다 빠른 전개에 조금 당황스럽고 실망스러운 부분도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상처받은 아이가 성장해가는 과정 중에 담겨진 상처치유 과정과 그 아이를 통해 변해가는 주위의 환경변화는 충분히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매 순간마다 겪게 되는 일에 대한 고민과 낮아진 자존감의 회복, 무언가 답답함을 해결하고 싶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표현하지 않고, 말하지 않고도 나의 생각을 다 알거라고 생각하는 착각과 우리가 서로에게 하는 소통의 방식에 대해서 잠시나마 생각해 볼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