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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un 11. 2020

이따금 과거 속에 산다는 것

기억의 잔향

기억하는 어느 세계로 옮겨가고 싶은 사람처럼* 이따금 기억 한 조각 속에 다녀오는 것을 좋아해요. 현재를 살아야 한다지만, 미래를 향해야 한다지만, 잠깐 과거에 머물러도 괜찮아요.
그렇게 건너야 하는 현재도 있는 거니까.


비가 오는 수요일, 아주 많이 지쳤던 하루를 접어두고 화이트 와인을 한 잔 가득 따랐다. 작은 나의 방 한편에 자리한 소파에 무거운 두 다리를 포개 올리고 앉아 홀짝거리고 있자니 안주처럼 문득 생각난 기억 한 조각. 헝가리 부다페스트, 오래된 집 소파에 꼭 지금처럼 다리를 포개 올리고 앉아 화이트 와인을 마시던 밤이 있었다.


21살이었을까 22살이었나 그때의 나는 '언제나 환영이야'라는 말, 사실 말도 아니었지. 페이스북 메시지 한 줄을 믿고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향했다. 아는 거라곤 그 친구의 풀네임도 아닌 '판니'라는 애칭, 그리고 그녀가 페이스북 메시지로 알려준 그녀의 현지 번호. 그 두 가지만 손에 꼭 쥔 채로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 서 있었다. 공항에서 어떻게든 시내에 도착하고 보니 현지 유심을 파는 곳도 마땅치 않을 만큼 깜깜한 밤이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상냥해 보이는 여성분께 휴대전화를 빌려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무작정 다가와 영어를 알아듣냐고 물어보는 동양인 여자애에 대한 당황스러움을 미처 감추지 못하시는 여성분께, 신나게 자초지종을 설명할 만큼 참 무모하고 또 맑던 시절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친구를 만나 들어간 집은 '언제나 환영이야'라는 말처럼, 정말, 꼭 그 말처럼 생긴 공간이었다. 친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본인에게 남겨주었다는 플랫의 나무 바닥은 알 수 없는 저만의 규칙으로 삐걱대는 소리를 내었고, 구석구석에 자리한 작고 큰 스탠드는 모두 주광색 불빛을 내고 있었다. 아마도 할머니가 평생을 사용하셨을 가구와 집기들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할머니 냄새가 났다. 기름기 하나 없이 푸석한, 그렇지만 내 체온보다 5도는 높을 것 같이 따뜻한 할머니 손바닥 냄새. 거실 중앙에 깔아놓은 오래된 매트리스 한 장이 내 침실이자 방이자 공간이었지만, 단언컨대 내가 다닌 그 어떤 여행지의 침대보다 편안하고 아늑했다.



친구의 집에서 4일을 머무르며 부다페스트 시내 곳곳을 돌아다녔다. 어부의 요새 같은 필수 관광지도 가고, 일부러 트램에서 잘 못 내려 아무 카페에 들어가기도 했던 것 같다. 화려하고 아름답고 우아하고 내가 아는 모든 형용사를 갖다 붙이고 싶은 국회의사당 야경만 500장 가까이 찍는 나에게, 부다페스트에서 나고 자란 친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던 것도 생각이 난다. 그렇지만 사실 이제는 거의 가물가물한 기억 속, 오늘 같은 밤 문득문득 떠오르는 선명한 기억의 조각은 딱 2개 있다.


첫 번째 조각은 마지막 밤. 어떤 광장의 벤치에 앉아 친구와 둘이 오래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의 주제도 내용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나이 때 나눌 수 있는 가장 심오한 주제로 나눈 대화였던 것 같다. 관광객도 현지인도 모두 잠자리에 들 만큼 늦은 시간이었고 우리는 전력질주를 해서야 겨우 마지막 트램을 탈 수 있었다. 집에 오는 길 내내 쉬지 않고 깔깔거리던 우리는 집에 도착함과 동시에 이대로 잠들 수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와인 마실래?'라는 친구의 말에 나는 '와인을 제대로 마셔본 적이 없어'라는 말을 하는 대신 '어떤 와인인데?'라고 되물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래된 천 냄새가 나는 소파에 앉아 화이트 와인이란 걸 마셨다. 지금처럼 무거운 다리를 소파 위에 포개어 올리고 말이다.

역시 와인 한 잔을 비우고, 한 병을 비울 때까지 우리가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또는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았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다만, 친구가 작은 초를 켜주었다는 것과 오래된 소파의 감촉, 내가 지금과 꼭 같은 자세로 편하게 앉아 그 밤을 즐겼다는 것은 기억난다. 내가 앉아있던 소파의 맞은편, 살짝 열어둔 창문 사이로 들어온 아카시아 향이었을까 바닐라 향 같은 냄새도.


사진을 보니 큰 초를 켜주었구나, 친구는 잔이 없어 컵에 마셨나보다 / 구불거리는 모습이 재밌었을까? 그저 깔깔대던 마지막 트램


두 번째 조각은 마지막 아침. 와인을 마시고 나의 작은 매트리스에서 꿀 같은 단잠을 자고 일어난 나에게 친구는 마지막이니 아침을 해주겠다고 했다. 어제 먹고 남은 것을 먹어도 좋다는 나에게 '유러피안은 아침을 그렇게 먹지 않아. 그건 너무 무겁잖아'라고 단호하게 말한 친구는 아주 무거 워보이는 컵을 가져왔다. 그리고 뜨거운 물을 가득 붓고는 티를 골라보라고 했다. 태어나서 마실 차를 골라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커다란 컵에 담긴 차를 보며 뼈해장국보다 이게 더 무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친구가 내 컵에 꿀을 듬뿍 짜 넣어주었다. 확실히 이 차가 더 무거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아주 뜨겁고 아주 커다랗고 아주 단 차를 아주 천천히 마셨다.

나는 그때 분명히 알았던 것 같다. 이 기분의 이 아침은 내 인생에 두 번 다시없을 거라는 걸. 그래서 차와 함께 이 나라, 이 도시, 이 오래된 집, 이 낡은 소파, 이 아침을 뜨겁게 그리고 천천히 음미했다. 친구의 할머니가 평생을 쓰셨을 유러피안의 소파에 마찬가지로 지금처럼 다리를 포개어 올리고 앉아서.


늘 앉던 쇼파 자리에서 보이던 창 밖, 그 냄새들 / 유러피안이 해준 유러피안 스타일의 모닝티 : )


이 2개의 기억 조각은 아직까지도 나에게 꽤 자주 찾아온다. 그래서 나는 자주 과거에 있는다.

그날 밤 이후로 나는 와인을 알게 되었고, 지금 집에 라면이 떨어지는 날은 있어도 와인이 떨어지는 날은 드물다. 그날 아침 이후로 나는 여러 종류의 차를 사모으는 취미가 생겼고, 기분이 좋은 주말 아침이면 뜨거운 차에 꿀을 타 먹는 걸 기분을 지키기 위한 루틴으로 삼고 있다.


오늘처럼 아주 지치고 어쩐지 조금 슬프고 누군가를, 무엇을 많이 그리워하고 싶은 날에는 화이트 와인 한 잔을 가져와 소파에 앉는다. 그럼 어디선가 꼭 오래된 천 냄새라던가, 아카시아 향이 날 것만 같다. 포근하고 향기로운 기억 속에서 잠깐 살다가 나올 때 쯔음이면 와인잔은 비어있고, 기분은 훨씬 나아진다.

벌써 걱정이 되는 내일은 아침에 꼭 커다란 컵에 꿀차를 가득 타서 마실 것이다. 그럼 분명 내일을, 새로운 아침을 다시 음미할 힘이 날것임을 나는 안다.


어디선가 [사람이 과거에 있으면 후회하고, 미래에 있으면 걱정한다. 그래서 현재를 살아야 한다.] 같은 말을 본 적 있다. 그 말을 하신 현자께서 이 글을 읽으신다면 경을 치실 수도 있지만. 고백하건대, 나는 자주 과거에 있는다. 술을 마시다가도 차를 마시다가도 과거의 기억 조각들이 나에게 다가오면, 뿌리치는 법 없이 기꺼이 그 속으로 들어가 있는다.

현재를 살아야 하는 것을 알지만 그것이 너무 지치거나 작은 기쁨도 주지 못할 때, 어떤 과거는 분명히 쉴 곳이 된다. 그 기억 한 조각 속에서 잠깐 쉬다가 나온대도 포근하고 향긋한 잔향은 여전히 남아, 현재를 다시 살아갈 이상한 힘을 준다. 그래서 다시 고백하건대, 나는 자주 과거에 다녀오는 것을 좋아한다.


*인용: 파스칼 키냐르『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   내가 찍은, 내가 사랑한, 기억 속 부다페스트의 야경


평일의 어떤 밤, 비 오는 어떤 밤, 아주 지친 어떤 밤, 오늘의 나처럼 현재를 살아야 한다는 말이 또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 무겁게 느껴지신다면 잠시 과거에 다녀오셨으면 좋겠다. 포근하고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어떤 기억 한 조각을 찾아, 꼭 꺼내보셨으면 좋겠다. [자신이 기억하는 어느 세계로 옮겨가고 싶은 사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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