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4 "봄날의 고양이를 좋아하세요"
“나 1년 만에 고양이를 사랑하게 되었어”
낯선 대륙 아프리카, 그보다 더 낯선 나라 튀니지에서 1년을 보내며 나조차 낯선 새로운 나의 모습이 많이 생겼다. 현지인들만 사는 동네에서 현지인 집에 세를 얻어 살며, 현지인처럼 살아서 일까? 그들처럼 와인을 즐기기 시작했고, 디저트와 샤와르마, 그리고 고양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내가 살던 튀니지 집에는 아주 작고 어여쁜 정원이 있었다. 그 집으로 처음 이사 온 날, 정원에 누워 난생처음 보는 외국인을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던 고양이 부부와 친해질 수 있을까 고민하던 일이 생각난다. 절대 친해질 수 없을 것 같았던 고양이 부부는 그 해 따뜻한 봄, 우리 집 정원에서 아기 고양이 4마리를 낳았다.
평생 단 한 번도 고양이와 눈을 마주쳐본 적도, 고양이를 만져본 적도 없는 나는 1년 간 그 작은 정원을 고양이 가족과 나누어 쓰게 되었다.
그리고 내 손바닥보다도 작은 아기 고양이들이 걸음마를 떼고, 그루밍을 배우고, 몇 번의 시도 끝에 화분을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도 튀니지 사람들처럼 그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무슬림인 튀니지 사람들은 고양이를 무척 사랑한다. 이슬람에서는 모든 동물에게 영혼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동물을 이유 없이 괴롭히거나 해하는 것을 종교적으로 금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고양이에 대한 사랑은 각별한데, 선지자 무함마드는 자신의 옷소매 안에서 잠든 고양이를 깨우지 않으려고 옷소매를 잘라내고 기도하러 갔다는 설이 있을 정도이다.
고양이는 사고팔 수 있는 재산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려동물 샵 같은 건 없고 그저 모든 길고양이를 소중하게 다루고 보살핀다. 아마 우리 집에 살던 고양이 부부도 따뜻한 햇살과 주인집 할머니의 부드러운 손길, 맛있는 고기 냄새에 이끌려 정원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고 가족을 꾸리게 된 걸 거다.
고양이 부부와 정원을 나눠 쓰는 식구가 된 지 한 달쯤 지났을 무렵, 예고도 없이 비가 쏟아지는 어떤 날이었다. 눅눅하고 고단한 몸으로 겨우 집에 왔을 때 계단 아래 우유 박스에서 꼬물거리는 생명체들을 발견했다. 엄마를 닮아 까맣지만 코와 가슴이 하얀 턱시도 고양이, 아빠를 닮은 줄무늬 고양이, 둘을 반반 닮은 회색 고양이, 3마리의 아기 고양이가 새까만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때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양이와 눈을 마주쳤고, 사실 그때 이미 그 녀석들을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아기 고양이들은 빠르게 자랐다. 알고 보니 엄마를 똑 닮은 검정고양이까지 총 4마리의 아기 고양이는 내가 그다음 달 집세를 내기 전, 벌써 포슬포슬한 털이 생겼고, 새까맣기만 했던 눈에 저마다의 색깔이 생겼다. 정원을 나서고 또 들어올 때 나를 살피는 흰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의 작은 눈들이 반가웠다. 언젠가부터 튀니지 아기 고양이들에게 “갔다 올게!” “나 왔어!”라고 한국말로 인사하는 나였다.
그리고 여름, 긴 튀니지의 저녁을 만끽하려 한국에서 가져간 줄넘기를 가지고 정원으로 나가면 장난감인 줄 알고 신나게 달려오는 아기 고양이들이 기억난다. 운동은 커녕 장난만 실컷 치다가 들어온 기억이 생생하다. 줄을 잡아채려고 뻗는 통통한 발과 분홍색 젤리를 보며 어째서 고양이 발바닥에 대해 그토록 많은 캐릭터, 굿즈, 일러스트, 밈이 나온 지 단번에 이해했다. (정말 말랑말랑 작고 소중하다!)
크리스마스 직전 이삿짐을 들고 나오면서 그 해 봄부터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꼬박 사계절을 함께 보낸 고양이들에게 인사를 했다. 이 행성을 함께 쓰는 다른 생명을 사랑하게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앞으로도 이 정원에서 열심히 나른하게 행복하라고.
길고양이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고, 스스럼없이 쓰다듬어주고, 사랑해주는 튀니지를 떠나 한국에 돌아와 동물 복지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언제 만날지 모르는 길고양이들을 위해 가끔 가방에 츄르를 넣어 다니기도 하고, 집고양이들과 함께 사는 집사들의 집에 놀러 다니기도 하면서 늘 정원의 그 아이들을 생각한다.
‘고양이’를 구글링 하니 “고양이가 지구를 구한다.”, “지구는 고양이가 지킨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늘 나를 빤히 바라보던 튀니지의 아기 고양이들을 떠올리며,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고개를 끄덕여본다.
고양이를 사랑하게 만들어 준 낯선 나라 튀니지, 기꺼이 나와 정원을 함께 써준 낯선 고양이 친구들에게 고마워하며 “이젠 정말 잘 있어!”
고양이 가족과 행복했지만 짜장면이 먹고 싶어 엉엉 울기도 했던 튀니지, 또 다른 추억이 궁금하다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