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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May 08. 2022

태어난 지 1만 일 째에 깨달은 ‘생의 비법’

내가 태어난  1 일이 되던 날은 계획대로 되는  하나도 없던 날이었다.

그리고 남은 2만 일을 훨씬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생의 비법을 배운 날이었다.


5월 1일은 내가 태어난 지 1만 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대한민국 여성의 평균 기대 수명은 86.5세. 내가 평균적으로 산다면 내 인생은 약 3만 일. 내 인생의 1/3을 잘 살아냈다는 것, 인생 3부 중 1부를 잘 종료했다는 것을 꼭, 제대로, 크게 축하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날은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아주 우울한 하루였다.


망했다 #1.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나는 집을 나서자마자 기분이 상했다. 바람이 갑자기 매섭게 불어서 매만진 머리가 단번에 엉망이 되었다. 입으려고 미리 생각해둔 옷만 입기에는 추워 겉옷을 더 챙겨야 했다.


망했다 #2. 나에게 좋은 걸 선물해주고 싶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서 아주 오랜만에 백화점에 들렀다. 그러나 내가 사고 싶었던 딱 그 모델만 없었다. 다른 모델을 착용해보았고 그것도 꽤 마음에 들었지만 어쩐지 김이 팍 새는 기분이었다.


망했다 #3.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미리 사려고 했던 물건이 있었다. 마치 짠 것처럼 그것도 품절. 가고 싶었던 카페들은 약속이나 한 듯 모두 만석이었다. 몇 개의 카페를 돌아다니다가 포기하고 가까운 골목에 있던 한산한 카페에 들어갔다. 기분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망했다 #4. 꽃을 좋아하는 나에게 꽃이라도 사주려고 노동절 행사 인파를 뚫고 간 꽃집은 문을 닫았다. 엄밀히 말하면 문은 열려있었으나 이상하게 꽃이 없었다. 오늘은 꽃집에도 꽃이 없네. 정말 되는 게 하나도 없는 날이구나 라는 생각이 내 마음에 콕 박혔다.


결국 그날 내 계획대로 된 것은 예약한 레스토랑에서의 한 끼뿐이었다. 가장 축하하고 싶었고, 정말 행복하고 싶었던 하루였기에 더 우울했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속으로 토해내며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뒤 오늘,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계획대로 될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에,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가 아니라 합당하게, 타당하게, 합리적으로 해결하고 사는 겁니다.”


출처: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28회


앉은자리에서 그 1분짜리 클립을 5번은 더 돌려보았다. 되는 게 하나도 없었던, 그래서 한없이 우울했던 나의 기념일을 떠올렸다. “계획대로 될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에.”를 소리 내어 말해보았다.


MBTI J형 인간들은 계획형이라기보다는 통제형에 가깝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불편해하기 때문에 계획을 세우는 것이라는 내용을 보고 크게 끄덕였었다. 변수를 싫어하는, 변수에 취약한, 변수를 불편해하는, 변수가 생기면 연약해지는 나를 잘 알기 때문이다.


인생은 변수의 연속이다. 계획대로 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날씨처럼 내가 바꿀 수 없는 ‘중력 문제’에 힘과 감정을 소모하지 않기로 한다. 바람이 세차게 불면 따뜻한 옷을 한 겹 더 걸치면 된다. 이렇든 저렇든 오늘은 단 하루뿐이기에 최선의 선택을 하며 그날에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누리기로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날 아무렇게나 들어간 이름 모를 카페에서 흘러나오던 노래가 꽤나 내 스타일이었던 것, 라떼가 아주 맛있었던 것, 레스토랑 당일 예약이 가능했던 것, 담당 서버가 아주 친절했던 것, 와인 시음 노트가 멋졌던 것… 많은 것들이 참 럭키했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들었다.


5월 1일이 내가 태어난 지 1 만일째였다라는 말에 엄마는 “우리 딸의 1만 일은 아주 좋고 멋졌다 그렇지?”라고 단번에 답했다.



그래 맞아. 내가 살아온 1만 일은 아주 좋고 멋졌다. 진심으로 나의 남은 2만 일도 좋고 멋졌으면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단단하고 지혜로운 내가 되었으면 한다.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그리고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싶다. 이것이 내 남은 생의 하루하루를 결정할 생의 비법이 될 것 같다.


신이시여. 우리에게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God, give us grace to accept with serenity the things that cannot be changed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that should be changed And the wisdom to distinguish the one from the other.

<평온을 비는 기도> 라인홀트 니버


내가 태어난  1 일이 되던 날은 계획대로 되는  하나도 없던 날이었다.

그리고 남은 2만 일을 훨씬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생의 비법을 배운 날이었다.



플라워 클래스를 들으며 했던 생각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우리 인생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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