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두는

연습

by 지훈

무언가를 지운다는 건 생각보다 간단하다.

클릭 한 번, 말 한마디, 돌아서기 한 걸음이면 된다.

그보다 어려운 건, 비워진 자리를

억지로 채우지 않는 일이다.




정리를 끝낸 자리에 허전함이 밀려올 때,

나는 자주 그 빈틈을 가만히 바라본다.

뭔가로 채우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그 공간이 나를 조금 더 숨 쉬게 해 주길 기다린다.




사람도 그렇고, 감정도 그렇다.

떠난 사람을 잊지 않기 위해 비슷한 사람을 찾고,

익숙한 감정을 다시 꺼내 그 자리에 눕히고 싶어 지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더 어지러워진다.




어느 날 문득 알게 됐다.

비워두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빈자리를 비워진 채로 남겨두는 일,

그걸 견디는 시간이 결국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는 걸.




예전엔 공백이 싫었다.

대답 없는 메시지, 회신 없는 하루,

텅 빈 시간과 대화 속의 정적이 버거웠다.

그런데 요즘은,

그 공백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다.




비워야 새로운 것이 들어온다고들 말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그저

‘비워두는 것 자체’를 연습해야 할지 모른다.

그 자리엔 아무것도 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그럼에도 괜찮은 상태로 있는 것,

그게 내가 원하는 평안에

더 가까운 모양일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다시 채우기 전에,

한 번쯤은 비워둔 채로 지내도 괜찮다.

그 자리에 머물던 것들을,

조금 더 깊이 기억할 수 있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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