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지 않아도

괜찮은 하루

by 지훈

나는 ‘괜찮다’는

말을 쉽게 쓰지 않게 됐다.


괜찮지 않은 마음을 괜찮다고

억지로 눌러왔던 날들이 오래였으니까.




그러다 정말 괜찮은 순간이 오면,

나는 그 감정을 오래 들여다보게 된다.


요즘의 나는 크게 바라는 게 없다.

그저 오늘 하루, 나 자신을 덜 미워하고,

덜 초조해하고, 조금 더 숨 쉬듯

살아낼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괜찮은 하루다.




예전엔 하루가 끝날 때마다

‘오늘은 뭘 했는가’로 나를 평가했다.

몇 개의 일을 끝냈는지, 누군가에게 인정받았는지.

성취의 숫자가 나를 증명해 준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런 하루보다 더 귀한 날이 있다는 걸.

별일 없이 지나가지만, 마음이 덜 흔들리고

조용히 웃을 수 있는 그런 날들 말이다.




비우고 나면 허전할 줄만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그 빈자리에서

고요한 마음이 자라기 시작했다.


무언가에 애쓰지 않아도,

내가 지금 있는 이 자리 자체로

괜찮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생겼다.




하루에도 몇 번씩 불안해지다가도,

문득 고개를 들고 창밖을 보면

빛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안심시켜 준다.




무언가를 이루지 않았고,

대단한 말을 하지도 않았고,

누구의 인정을 받지 않았어도


“오늘은 마음이 덜 흔들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하루가 조용히 빛날 때가 있다.




나를 채우지 않아도 괜찮은 하루.

그 하루는 버티는 사람에게

가장 단단한 선물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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