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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e Mar 14. 2020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출발선에 선다

 책상을 정리하며 발견한 것들

온전히 집중해왔던 프로젝트가 끝났을 때, 내 시간이라는 자원을 더 이상 투자할 필요가 없지만 생각과 마음의 리듬이 정리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가령 몇 개월 전에 끝난 일에 관한 자료를 읽고 자연스레 반응하게 되거나 생각을 이어가는 것이다. 세 번의 이직과 매년 새로운 사업과 과제, 개인적으로 참여했던 프로젝트까지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해내고 싶고, 해내야만 했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나는 단 한 번도 일에 관한 생각과 마음의 리듬을 삶에서 끊어내 본 적이 없었다. 즐겁게 일해왔지만 나도 모르게 쌓여있던 피로감을 의식적으로 덜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렇다 보니 내가 생활하는 공간과 환경은 그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책상 위가 그렇다.  

내게 있어 책상이란 일터이자 퇴근 후 삶이기도 하다. 사회생활의 절반 이상의 기간 동안 원격근무와 재택근무를 병행해왔다. 운이 좋게도 대단히 실험적인 환경에서 일할 수 있었던 거다. 고정된 사무공간 없이 집에서 많은 일을 하다 보니 책상이란, 업무를 위한 최적의 자원이 모인 작은 일터가 되어갔다. 더불어 '이건 다시 봐야지', '다시 고민해봐야지', ‘다시 써봐야지', ‘꼭 보관해야지' 등 유형의 약속과 다짐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어쩌면 의도적으로 끊어내지 않았던 ‘일에 관한 생각과 마음의 리듬’이 책상 위에 머물러 나를 신나게 해 주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야 춤추고 노래하듯 일할 수 있을 테니까.  


오- 나의 우주, 책상 정리가 필요하다


본격적인 휴식의 시간, 나라는 인간에게는 작은 도전이기도 한 시간을 마주한 건 지난 1월부터다. 이 순간을 위해 지난 1년간 '하던 방식과 생각'에서 벗어나겠다는 다짐과 뭔가를 자꾸만 하려는 관습, 사회인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불안과 싸우며 그 끝에 오늘이 만들어졌다. 책상을 바라보면 도무지 연결고리를 알 수 없는, 성격이 전혀 다른 주제의 자료나 물건들이 섞여 있고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관심사가 모인 거대한 우주와 같았다. 문득 그 우주 속에서 수첩 하나 올려 메모할 자리도 없다는 걸 알았다. 노트북을 닫고서 수첩을 올려야 메모할 수 있다니,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지금 내 삶에 맞게 책상도 정리가 필요했다.  

그렇게 아주 오랜만에 ‘지금의 나’를 위해 책상 정리를 시작했다. 그 어떤 정리의 시간도 최초에 목적한 바대로 정리만 하는 데 집중할 수가 없다. 추억에 잠기고 생각하고 연락을 취하고, 대충 이러다 보면 어느새 정리보다는 잔뜩 펼쳐놓기만 한 모양새가 돼버린다. 하지만 뭐 어때, 정리하는데 누가 쫓아오지 않는다.     


     작년까지 공들였던 프로젝트와 관련된 인쇄물, 단행본, 메모와 스케치들은 디지털 파일로 변환하거나 책장으로 옮기고,    

     올해 새롭게 시작한 프로젝트와 관심사에 관한 자료들은 별도의 함을 만들어 손에 닿기 쉬운 곳에 폴더별로 정리해 꽂아두고,     

     요즘 푹 빠진 8권의 책들은 책장에 꽂지 않고 책상 한쪽에 나란히 쌓아 올렸고,

     생각나면 금방 쓰고 그릴 수 있는 큼지막한 노트를 항상 펼쳐두었다.    

     꼬마 조카들을 위해 때마다 모아 온 놀이도구들, 색지, 읽을거리 등도 꽤나 많다. 서랍장 한구석보다는 책상 위 한쪽에 두기로 했다.     


이런 과정에서 분류되지 못한, 제자리가 원래 없기도 했던 것들이 발견된다. 책상에서 지난 시간은 모두 정리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지금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은 것, 당분간 생각하고 싶지 않은 주제의 것들이다. 때로는 필요 이상으로 내게 많은 것들이 그렇다. 놀랍게도 포장도 뜯지 않은 2020년 달력이 5개나 나왔다. 생각해보면 매년 이렇게 넘치는데, 책상 정리를 잘하지 않는 나로서는 쓰임을 잃어가는 그해 달력을 지나치게 늦게 발견한다. 그래서 매년 “이렇게 만드는 게 최선인가” 속으로 화를 내며 스프링과 종이를 분리하고 버리기 일쑤였다. 올해는 다행히 쓰임의 시간이 많이 남은 것 같았다. 무려 3월이라니!  


뜻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아릿하다


또 다른 쓰임을 고민할 때는 언제나 당근마켓이다. 잘 포장된 것을 골라 무료 나눔으로 글을 올렸고 며칠 뒤 메시지가 왔다. 보통의 경우와 왜 달력이 필요한지 차근히 설명해주셨고 낯선 경험이지만 읽는 순간, 입가에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 남편분의 새로운 사무실에 둘 달력을 구한다는 이야기였다.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새로운 출발선에 계신 분 같았다. 약속된 시간에 나서보니 어느 중년의 남자분께서 일찍이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서로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어떤 대화도 어렵겠거니, 조심스럽게 건네고 돌아서려는데 "드릴 것도 없고.." 라며 가방 속에서 마스크를 하나 건네신다. 놀란 마음에 허리를 숙여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만 전한 채 걷는데 마음이 뭐라 표현이 어려울 정도로 이상했다. 언제나 묵혀두다 버리던 것, 버리는 과정마저 힘들어 내내 퉁명스럽게 만들던 것, 그렇게 필요 이상으로 많았던 달력을 전했을 뿐인데 모두에게 귀한 마스크를 조심스럽게 전하시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사실 당근마켓 거래에서 이런 아릿한 감정을 느낀 건 처음이 아니다. 세탁소에서 받아왔던 옷걸이가 지나치게 많아 무료 나눔을 했고 자취를 시작했다는 학생에게 전하게 되었다.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문득 스무 살이 되던 때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잘 쓰세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잘 쓰라니. 옷이 떨어지지 않도록 잘 걸었으면 좋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듣는 사람은 다소 황당할 수 있겠다 싶은 갑툭 한마디였지만 좋아하는 옷을 오래 입을 수 있게 잘 보관하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옷과 옷걸이에서 한 사람의 나이와 직업, 취향 등을 발견해볼 수 있다. 어렸을 때는 서랍장에서 넣거나 외출 후에는 의자에 툭 하고 걸어도 괜찮은 옷이 대부분이니 당연히 옷걸이가 모자라도 버틸만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아무렇게나 걸어두면 절대 안 되는 옷, 내가 얼마나 과감한 인간인지를 증명한 값비싼 옷, 정말 오래 입고 싶은 선물 받은 옷들이 탄탄한 옷걸이에 걸려 옷장을 채우고 있다. 분명한 건 나 역시 옷걸이 모자라 선배들에게 받아왔던 기억, 그것도 모자라 옷을 겹쳐 걸었던 기억들이 있다는 거다. 잘 쓰라는 엉뚱한 한마디를 하고서야 깨닫는다. 모든 게 모자라고 어설펐던 시간을 지나 내가 한 뼘 정도 자랐다는 사실을.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모자람이 따른다.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풍요로운 상태에서 뭔가를 시도해본다는 건 경험하기 힘든 일이다. 내게도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선에 서서 신호를 기다렸던 순간이 있었다. 많은 게 충분하지 않았던 나였기에 삶의 배움과 성장이 누구보다 크고 가득했다. 출발선을 지나 쉬지 않고 달리다 문득 어느 방향으로 속도를 내야 할지 망설여졌고, 휴식의 구간을 만들어보기로 한 상태다. 그 구간에서 머물던 중 또 다른 누군가의 출발선을 발견했다. 정리를 시작했고 넘치는 무언가를 찾아 나누니 세상의 다른 출발선들이 보인다. 내 생각과 마음속의 달력과 옷걸이, 모자랐다고 생각했지만 분명 넘치고 있는 것들을 찾으면, 그리고 나의 부족함을 찾고 추구할 때 다시 새로운 출발선을 그리게 있게 되지 않을까. 어쩌면 그 날엔 또 한 번의 책상 정리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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