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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e Sep 03. 2019

회고와의 재회

전환일기 #1.

내 나이 앞자리 숫자가 바뀌거나, 큰 시련을 마주하거나, 이직이나 결혼 등 주변 환경에 큰 변화가 일어났거나. 여러 이유나 계기로 누구에게나 삶의 전환기가 찾아온다. 사전적으로 전환이란 ‘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뀌거나 바꾼다는 것’. 이제 막 서른이 된 것도 아니고, 제대를 앞둔 것도 아니고, 당장에 큰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닌데 전환기가 찾아왔다. 누구나의 삶에는 크고 작은 산과 바다, 강이 있겠지만, 지난 몇 년을 돌아보면 혼자 오지를 지나온 것처럼 숨이 가쁘고 온몸의 마디마디가 아파오는 듯했다. 오지 속에서 걷던 지난날에는 ‘일’을 몹시 사랑했고 몰입하다 까맣게 익은 피부결과 굳은살로 가득해진 내 두 발을 살피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수년간의 오지체험 중 ‘내가 얼마나 걸었지?’, ‘내가 느끼고 본 게 뭐지?’, ‘내가 얻은 게 뭐지?’, ‘난 아쉬운 게 없었나?’ 이런 생각이 밤이고 낮이고 문득문득 깊은 생각에 잠기게 했다. 


깊게 생각하면 깊은 뭔가가 떠오를까

그렇다. 생각만 해서는 아무것도 해소할 수 없다. 생각과 고민에도 움직임이 있어야 하고 그 움직임 속에서 내 생각의 방향을 어디로 두어야 할지 힌트를 얻어야 한다. 사실 나는 일에 있어 이런 원칙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일이라는 건 언제나 내 마음 같지 않고, 생각하지 못한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손가락을 얄밉게 콕콕 찔러보든, 나뭇가지로 쿡쿡 치든, 과감하게 내 발을 내디뎌 보든, 어떤 방법이든 돌다리를 두드리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일에 있어서는 ‘막막하다’는 감정을 잘 느끼지 못했던게 사실이다. 

그런데 일과 거리를 둔 ‘나’는 다소 낯설었다. 힌트를 얻기 위해 돌다리를 두드리는 것도 모자라 이미 길을 건너가고 있을 시간에 소심해진 보폭으로 제자리걸음 중이었다. 낯선 내 모습을 보면서 꽤 괴로웠지만 나도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고 좋게 좋게 해석하던 와중에 ‘회고(retrospective)’와 만났다.



엄마가 주니까 좋은 거야

사실 ‘회고’와는 재회의 연속이었다. IT회사에서 서비스를 직접 운영하고 있거나 개발자 혹은 디자이너로 참여하고 있다면 ‘프로젝트 회고’라는 이름의 무언가를 경험해봤을 것이다. 나 역시 직장에서 처음 동료들과 회고를 시작했고 워크숍 혹은 회의에서 종종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의 역할로 참석자들과 함께 회고하는 시간을 가져왔다. 그런데 ‘어디에, 어떻게 좋은지 모르겠지만 엄마가 주니까 먹는 한약’ 같은 느낌이었다. 어떤 점이 좋았고 아쉬웠는지 나누는 건 분명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당장 느껴지지 않는 한약의 효능처럼 회고가 어떤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지 정리되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가 준 한약’에 가까운 효과는 처음이 아니었다. 조금 더 과거로 가서 전 직장에서는 혁신에 관한 다양한 방법론과 프레임워크를 학습하고 일에 마음껏 접목할 수 있는 소중하디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멋지게 구조화된 방법론과 도구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 같은 느낌,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은 일에 있어 여러 교육 과정을 설계하거나 업무 프로세스를 구축할 때 도움이 되었지만, 어느 순간 명쾌함은 사라지고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체한 것처럼 명치끝이 답답했다. 엄마가 준 한약이 어디에 좋은지 물어보고, 내 몸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관찰해야 했다. 도구와 방법론은 그 자체보다 결국 내가 어떤 의지와 마음으로, 어떤 목적으로 적용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고 학습하며 여전히 어렵지만 퍼실리테이션의 가치를 일에 접목할 때마다 조금씩 실험했다. 급 요약하자면, 결국 건강해지고 싶다는 마음과 의지가 활활 타오르니 “엄마가 준 한약이 역시 효과가 좋아"라고 말할 수 있었다. 


어렵지만 다시 보고 싶은 치명적인 너

회의나 워크숍, 여러 프로세스를 기획하고 설계하는 입장에서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탐구한 끝에 도구와 방법론이라는 독을 스스로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회고의 독’에 빠져있는 느낌이었다. 그 시간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떠올려보자면 이렇다. 내가 몸담고 있었던 조직에서 회고는 중요한 문화이자 가치였다. 격하게 동의하는 바였고 회고의 가치와 철학을 잘 이해하고 아주 잘 활용하는 팀도 있어 보였다. 프로젝트에 대한 회고보다는 매일 개인적으로 회고하고 그 내용을 팀원들과 공유하는 방식이었는데 당시 ‘회고에 대한 회고’는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다.


좋았어 :-)

그 날, 그 날의 동료의 기분이나 감정 상태를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던 점
(서로의 감정에 대한 케어가 중요하다고 늘 생각하지만 묻고자 하는 마음도, 행동도 늘 어렵다고 느낀다)

이유가 무엇이든, 동료의 그 날의 상태를 파악했을 때 소통 과정에서 오해의 소지가 준다는 점    

일일 회고 결과가 누적되면서 동료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다는 점    

맡고 있는 업무 난이도가 너무 높은지, 적당한지, 쉬운지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    

원격근무(remote work)를 하다 보면 소름 끼치도록 한 마디도 못하고 해가 저무는 경우가 있는데, 적어도 회고하는 시간이나 과정을 통해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점    


    아쉬웠어 :-(

감정과 기분 상태, 기본적인 욕구에 관한 내용이 이어지면서 한풀이 대잔치로 느껴진 점 

맡고 있는 업무에 대해서 구체적인 내용을 꺼내서 회고하기가  어렵게 느껴진 점
(같은 팀이었지만 내가 맡은 일의 목표를 함께 달성하기 위해 일하는 동료나 시간은 제한적이었기에 서로에게 피드백을 구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 등이 결정적인 이유가 된 것 같다)

매일 회고를 기록하지만 되짚어본 적이 별로 없었다는 점    

회고를 바탕으로 개선할 점을 팀 리더와 상의해본 적이 없었다는 점    

개인 회고에서 아쉬운 점이 반복되었다는 점    



살펴보면 당시의 회고는 거의 실패에 가깝다. 회고를 통한 통찰과 개선이 이루어지는지 치열하게 발견하려 하지 않았고 환경과 상황보다 회고에 임하는 '나 자신'이 어떠했는가를 생각하지 않았다. 회고의 독에 빠져 진한 실패를 경험하고 나선 여러 조직을 관찰해보니 종종, 많은 사람들이 겪는 실패 경험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들 어떻게 진화하고 있을까. 

그렇다. 내가 회고에 대해서 본 것, 들은 것을 실전에 적용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어렵지만 어떻게든 내 몸에 꼭 맞는 무언가로 발전시켜보고 싶었다. ‘이건 정말 훈련이 필요하다’라는 생각과 함께 회고를 통해 내 전환기를 잘 보내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프로젝트 회고나 팀 회고의 어려움을 토로하거나, 이거 정말 퍼실리테이터로서 나는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기 이전에 내가 일상생활에서 적용해보면 느끼는 게 분명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길 기회가 생겼고 한 달에 한 번, 곧 스무 번째 월간 회고를 앞두고 있다. 여전히 어렵고 탐구 대상이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나는 회고를 통해 이 글을 쓰겠노라 다짐했다는 것! 그리고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지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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