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에 만난 인생의 시간표
동네 산책을 하다가
오래된 목욕탕 앞을 지나게 되었다.
낡은 건물 입구에는 사장님의 센스가 돋보이는
재미있는 문구의 간판 하나가 붙어 있었다.
“다 때가 있다.”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목욕탕이라는 공간에 이보다 더 완벽한 문장이 있을까.
하지만 한 걸음 떨어져 그 문장을 다시 곱씹어 보니,
그것은 단순히 몸에 묻은 물리적인 '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때', 즉 인생의 시간이 있다.
목욕탕이라는 공간은 묘하다.
안에 들어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 하나는,
그곳은 나를 치장했던 모든 것을 벗어야만 비로소 입장이 허락되는 곳이라는 점이다.
두꺼운 외투도, 직함이 적힌 명함도, 화려한 장신구도 없는 알몸의 상태.
그 상태로 마주하는 사람들이기에 서로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겉모습만으론 가늠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직장에서 고군분투했을 것이며,
누군가는 여전히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방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문 너머 뜨거운 물속에 몸을 담근 순간만큼은,
모두가 같은 온도의 위로를 나누고 있을 것이다.
나는 멈춰 서서 다시 그 문장을 떠올렸다.
다 때가 있다.
사람들은 종종 자기 인생이 늦었다고 생각한다.
앞서가는 누군가의 성공을 바라보며
마치 내 시계만 멈춰 있거나 늦게 가는 것처럼 느껴져 불안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연을 보면 세상에는 단 하나의 공통된 시간표란 없다.
어떤 꽃은 찬 바람을 뚫고 봄에 피고,
어떤 꽃은 뜨거운 뙤약볕 아래 여름에 피며,
어떤 꽃은 고요한 가을 서리를 맞으며 핀다.
모든 꽃이 같은 계절에 피어야 한다고, 자연은 결코 강요하지 않는다.
문득 영국 시인 A. E. Housman의 시 「Loveliest of Trees」가 떠올랐다.
Loveliest of trees, the cherry now,
Is hung with bloom along the bough.
(가장 아름다운 나무인 벚나무가 지금 가지마다 꽃을 달고 있다.)
시인은 인생을 70년이라 가정했을 때, 다시 오지 않을 스무 살의 시간을 아쉬워하며 남은 봄을 계산한다. 꽃이 피는 봄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기에, 그는 숲으로 가서 눈처럼 피어 있는 벚꽃을 보겠다고 노래한다.
다시 목욕탕 간판을 바라본다.
어쩌면 이 말은 단순히 '순서가 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라'는 위로가 아니라,
'네가 머물고 있는 지금 이 계절을 놓치지 말라'는 당부인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어떤 때를 살고 있는 걸까.
그리고 당신의 때는 지금 어디쯤일까.
봄에는 봄의 시간이 있고,
여름에는 여름의 시간이 있듯,
사람에게도 저마다의 계절이 있다.
목욕탕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뿌연 수증기를 바라보며,
나는 그 문장을 조금 다르게 이해해 보기로 했다.
'늦었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도 당신만의 소중한 한 때'라는 뜻으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유리창에 적힌 또 다른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목욕은 영혼의 세탁기.”
직접 몸을 씻으러 들어간 것은 아니었지만,
산책길에 만난 짧은 문장들 덕분에 마음의 얼룩이 조금은 씻겨 내려간 기분이었다.
다시 걷기 시작한 나의 발걸음이 아까보다 한결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