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빨간 쿼카의 병가일지

EP.0-병가를 준비하며

by 볼 빨간 쿼카

‘이제 지쳤다. 난 할 만큼 했어. 쉬고 싶어’

지난주 월요일, 그와의 간담회를 마치고 후련한 마음으로 집에 와 오랜만에 편하게 자고 난 다음날 나의 머릿속 한편에 들어온 생각이었다.


나는 작년 9월부터 11월까지 보호자의 지속적인 민원을 응대하다가 스트레스가 심하게 쌓였는지 신체반응으로 나타나 11월 말부터 병가를 쓰게 되었다. 병가 기간 동안 ‘나는 왜 아무 말하지 못하고 이렇게 병가에 들어가야 하는가?’, ‘나는 학교에 돌아갈 수 있을까?’등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그 생각에서 벗어나는 데만 한참이 걸렸다. 그 생각에 벗어난 후에는 학교에 복귀하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나의 회복에 쉬는 것이 도움이 될지, 학교를 나가는 것이 도움이 될 지에 대한 생각을 계속하며 방학을 보냈다. 의사 선생님은 일상생활로 돌아가 회복하는 것을 추천하셨고, 학교에서도 나의 상태를 고려하여 담임이 아닌 전담교사로 배정해 주었기에 ‘한 번 부딪혀보고 힘들면 그때 생각하자.’는 마음으로 복귀를 선택했다.


오랜만에 복귀한 학교는 조금 힘들었지만 다행히도 많은 동료들이 챙겨주고 지원해 주어서 잘 회복해 갔다. 힘들면 힘들다고, 어려우면 어렵다고 말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몸과 마음이 쉽게 전처럼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올해가 지나면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봤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내일부터 병가에 들어간다. 몸과 마음의 상태가 8월보다 악화되었다. 기존에 먹던 약은 효과가 없어 약을 바꾸고 있는 중이다. 일상적으로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다. 그리고 스트레스받는 상황이 되면 구토감이 올라온다. 특히나 나에게 부당한 행동을 한 사람이 눈앞에 나타날 때는 더더욱(이 사람은 비단 한 명은 아니지만, 그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그래도 작년의 경험 덕분에(?) 나의 스트레스 반응을 조금 더 빨리 눈치챌 수 있게 되었다. 8월 말부터 시작된 두통과 구토감, 나를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내 몸이 보내는 신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교권보호센터에 연락하여 상담을 신청하고, 나의 신체 반응을 이야기해도 5주 동안 지켜보자고만 이야기하는 병원을 바꿨다. 그리고 상담을 받으며 어떤 부분에 내가 자극받는지 생각해 보며 올해를 돌아봤다. 작년 일을 겪고 올해는 ‘참지 않겠다’라고 다짐했던지라 할 말은 하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참지 않았지만 또 많이 참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상담을 받으며 내가 올해 그를 참을 수 있는 임계치는 1학기에 끝났고, 그래서 2학기에 그를 다시 만나면서 몸이 안 좋아지고 있었고 9월에 병조퇴를 쓰는 과정에서 겪은 부당한 일이 시발점이 되어 급격히 나빠졌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나의 8개월이 이해가 됐다.(그에 대한 이야기는 기회가 되면 나중에 다른 글로 풀어보겠다.) 그래서 8개월 동안 담아두었던 것을 적어 교육청에 고충심사청구를 했으며, 교사회를 통해 만들어진 그와의 간담회 자리에서 그동안은 메시지나 부장, 교장선생님들을 통해 이야기했던 것들을 직접 말했다. 직접 말해도 그는 똑같았다. 여전히 답답했다. 하지만, 나는 내 할 일을 다했다는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첫 문장의 생각과 함께 잠에서 깼다.


그날부터 13일간 병가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진단서를 떼고, 인수인계를 준비하고,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영어실도 정리했다. 출근 시간을 채워두지 않으면 집에서 잠만 자며 지내다가 우울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오전 운동도 등록했다. 작년에는 갑작스레 들어가게 된 병가에 학교도, 나의 상태도 대비하지 못했는데 올해는 두 번째 해본다고 작년보다는 능숙해진 느낌이다.(ㅎ.ㅎ)


교직에서는 이런 일들(보호자나 관리자 등에 의한 스트레스로 아프게 되는 것)을 ‘사고’라고 부른다. 교사의 경력과 상관없이, 교사가 열심히 하고 말고 와 상관없이 갑작스레 찾아오기 때문이다. 나는 어쩌다 보니 작년에 한 번, 올해 한 번 사고를 연속으로 당했다. 사고를 두 번째 겪으며 드는 생각은 사고를 낸 사람 탓에서 벗어나 나의 회복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엄청 어렵고 나도 안 돼서 맨날 씩씩대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그렇게 둬야 나한테 좋을 것 같다. 물론, 참으라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일을 겪으면서 나한테 ”그 사람은 이상한(또는 아픈) 사람이니 네가 참아라. “는 말이 제일 상처였고 화났다. 할 수 있는 것은 다하고 다했으면 내 맘처럼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거기에 매여 있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무튼 나는 내일부터 병가다. 이번 나의 병가 목표는 ‘몸과 마음 건강하게 일상생활 유지하기’다. 그래서 매일최소 활동량을 정해놓고(하루 만보), 오전에 집에 있지 않기, 나의 하루를 정리하며 브런치에 나의 병가일지를 매일 남기기를 실천해 볼 예정이다. 병가여도 아직 고충심사청구 과정이 남아 있어 학교에서 자유로울 순 없지만, 부디 잘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혹시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또는 놓일 사람이 있다면 이 글이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의 병가일지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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