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오늘의 날씨와 닮은 병가 첫날
“날씨 왜 이래?”
오늘 알람보다 일찍 눈이 떠진, 하지만 전혀 기분 나쁘지 않은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난 나는 창밖을 보고 말했다. 재난 문자로 폭우와 강풍이 예상된다고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지금 출근을 안 해도 된다는 것에 안도하는 것도 잠시, 나의 병가 목표 중 하나인 오전 운동을 하러 나갈 수 있을지 걱정되어 ‘오늘의 날씨’를 검색해 보았다. 다행히 비는 아침 9시쯤이면 그칠 것 같다. 창밖의 폭우를 보며 한동안 집안정리를 하지 못해 폭우가 휩쓸고 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의 집을 조금씩 정리했다. 그동안 분갈이 해줘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바라보던 물꽂이 해놓은 무늬 싱고니움을 화분에 심어주었다. 오랜 기간 조금씩 페인트 칠로 하얗게 탈바꿈한 책장 하나를 생각해 두었던 자리에 옮겨두었다. 정리하지 않아 쌓여가는 택배 상자들을 뜯고 물건을 확인하고 나름의 규칙에 따라 자리를 찾아줬다. 이래 저래 정리하며 시계를 보니 8시 20분을 지나고 있었다. 내가 평일 이 시간에 집에서 집안일을 하는 것이 얼마만이던가. 기분이 좋아진 나는 정리에 조금 더 몰두할 수 있었다. 느리지만 나만의 규칙에 따라 정리에 몰두하던 그때,
“우웅”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일어난 후 한 시간 정도 정리를 했으니 잠시 쉴 겸,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들어 문자를 확인했다.
‘자기 실적평가서 ㅡ 다면평가용도 준비해 주세요. 메신저로 주시면 될 것 같아요. ’
‘아… 학교에서 온 문자였을 줄이야. 이 서류는 지금 내는 시기도 아닌데 왜….. 그것도 출근 시간인 8시 40분에 맞춰서………‘
병가의 시작부터 망친 느낌이다. 일부러 괴롭히려고 해도 이렇게는 못할 것이다. 다른 일을 하려고 해도 집에 있으니 그 문자가 떠오른다. 좋게 해석해 보려고 노력해도 기분이 나쁘다. 나의 병가를 망친 그 문자 때문에 화가 난다. 나가야겠다. 여기 계속 있다가는 화에 잠식당해서 기분이 계속 안 좋을 것이다. 운동을 가기 전 산책을 하기로 하고 운동복을 입고 장화를 신고 우산을 챙겨 집을 나선다. 1층에 나와보니 비가 그쳤다. 좀 더 편히 산책을 할 수 있겠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니 몸도 마음도 회복된다. 장화를 신은 김에 물 묻은 낙엽이 잔뜩 쌓여 있는 곳을 펑펑 차며 지나가 본다. 그 문자를 잊기 위해 더 세게 차 본다. 집 앞 공원을 더 열심히 돌아본다.
산책을 마치고 운동 시간이 가까워져 요가센터로 간다. 순전히 가까워서 결정한 이곳, 하지만 오랜만에 다시 운동을 시작하는 나를 걱정해 주고 환대해 주고 프로그램을 추천해 주는 따스함에 반한 곳이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조금 더 일찍 가보았다. 나를 상담해 주셨던 선생님이 오전에도 계셨다. 원래 오후를 담당하시는데 이번주는 오전도 자신이 맡게 되었다며 자신이 있을 때 첫 수업을 시작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주셨다. 첫 시작은 낯설고 그곳의 분위기를 파악하느라 에너지를 쓰게 되는데 처음인 사람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한 설명과 따뜻한 환대에 자연스럽게 요가센터에 녹아들었다. 오늘의 요가는 ‘힐링요가’ 첫 시작이니 천천히 몸을 스트레칭하고 싶었다. 처음엔 선생님이 말하는 데로 힘을 잘 주는 나를 보며 내심 뿌듯했는데 뒤로 갈수록 내 몸이 그동안 얼마나 굳었는지, 테이블 자세에서 골반이 한쪽으로 틀어지지 않게 다리를 올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끼며 나의 몸 상태를 진단하게 되었다. 내일은 근력도 조금 쓰는 ‘도구 필라테스’를 예약해 보았는데 과연, 잘할 수 있을 것인가.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며 어쩌면 당분간은 힐링요가를 하며 굳은 몸을 풀어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나였다.
오늘 아침에 하루 날씨를 검색했을 때는 이제 비는 그만 온다고 한 것 같은데 요가센터에서 돌아오는 길에 폭우가 내렸다. 맑은 하늘에 폭우라니 오늘 아침에 기분 좋게 정리하다가 문자를 보고 급격히 기분이 안 좋아진 내가 떠올랐다, 일단, 점심 먹고 생각하자. 나의 생각을 전환시키려고 점심 메뉴를 떠올렸다. 비빔국수에 고기 몇 점. 기분이 좋아졌다. 기분이 참 쉽게 오락가락한다. 내일 상담사님과 이야기해 봐야지.
점심을 챙겨 먹고 8시 40분에 왔던 ‘자기 실적평가서’를 쓰기 위해 노트북을 켰다. 작성해야 할 서류를 확인하기 위해 업무용 메신저를 켰다. 이게 웬걸, 관련 메시지가 하나도 없다. 화가 난다. 아침부터 문자를 할 거면 최소한 양식은 보내두고 보내야 하는 것 아닌가. 날 놀리는 건가. 하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 실수겠지. 그 실수가 나를 너무 기분 나쁘게 했지만 실수로 화내지는 말자.’
마음을 다잡고 그에게 메시지를 한다. 양식을 보내주세요. 그러자 답장이 온다.
“곧 회의라 끝나고 찾아보고 보내겠습니다. 이따 늦은 오후에 다운로드하여 보세요.”
메시지를 받고 두 가지 이유로 화가 난다.
0. 나에게 준비하라고 메시지를 보냈으면 양식을 보내지는 않았어도 양식을 이미 준비하여 잘 볼 수 있는 곳에 준비해두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0. 이따 메시지 보낼 때까지 기다렸다가 확인해서 작성해서 보내라는 건가? 나는 병가인데 왜 오늘 확인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이거 지금 제출기간도 아닌데 왜 이렇게 급하게 요구하는 거야?
화가 난다. 삐뚤어졌다. 그를 이해할 아량은 이미 다 써버렸다. 나쁘게 밖에 생각이 안된다. 그래서 답장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출 기간도 아닌데 이렇게 급하게 요구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아마 병가에 들어간 나를 배려하려고 보냈다는 답장이 올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8시 40분, 보내지 않은 양식, 이따 늦은 오후에 확인하라는 말 어디에도 나를 향한 배려는 담겨 있지 않다. 회의가 시작됐으니 당장 답장은 못할 터, 컴퓨터를 끈다. 화가 난다. 이 장소를 벗어나야겠다. 산책을 하자. 약속 장소에 걸어가 보자. 좀 진정된다. 하지만 이게 웬걸, 내가 진정되니 맑았던 하늘에서 비가 온다. 정말 좀 잡을 수 없는 날씨, 좀 잡을 수 없는 나의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