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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 빨간 쿼카 Feb 01. 2024

볼 빨간 쿼카의 병가일지

EP.36- 몽글몽글

오늘 오전 운동 후 비가 세차게 내렸다. 우산을 가져오지 않은 나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자연스레 잠바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슈퍼로 향했다. 오늘 점심에 먹을 비빔국수에 넣을 샐러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잠바가 두꺼운 덕분에 뒤집어쓴 상태에서는 비를 맞고 있다는 느낌은 없었다. 샐러드를 짚고 조금 더 슈퍼를 둘러보았는데, 잠바도 뒤집어쓰고 더 들고 갈 순 없을 것 같아 지금 당장 필요한 샐러드만 샀다. 샐러드를 사고 오는 길에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 머리 쪽으로 우산이 드리워졌다.

‘이게 뭐지? 누가 잘못 드셨나 보다.’

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신호가 바뀌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나는 다음 횡단보도도 건너야 해서 기다리는데 그 우산을 쓰신 분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분의 우산 크기나 짐을 들고 가는 상황을 볼 때, 나에게 일부러 우산을 씌워주시려고 내 쪽으로 기울이신 것 같았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인류애가 충전되는 순간이었다. 정말 감사한 상황이었는데 감사인사를 못 드린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있으면 고개를 돌려보고 감사 인사를 드리리라, 그리고 누군가 비를 맞고 있을 때 나도 우산을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 생각해 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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