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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terstella Dec 19. 2020

엄마의 커리어 욕심, 사치인가요?

스타트업으로 옮기기 전, 나는 6년간 광고회사에서 일했다. 클라이언트의 일정에 따라 급하게 돌아가는 업계이다 보니 야근은 당연했고 주말 근무도 잦았다. 매월 청구하는 야근 택시비만도 어마어마했고 집에 와서는 씻고 잠만 자는 날들이 허다했다. 그래도 좋은 선배들이 있었고, 배움과 성장이 느껴져 참 즐거웠던 시절이었다.


문제는 5년 차에 육아휴직에서 복귀한 이후였다. 갓 11개월이 된 아이는 이제 엄마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대략 엄마가 집에 올 시간이 되면 계속 현관문을 쳐다본다고 했다. 8시 반이 되면 눈이 스멀스멀 감기는 아이인데도 엄마가 오지 않으면 눈을 비비며 엄마를 기다린다고 했다. 일을 하다가도 저녁 시간이 되면 나를 기다리는 아이의 얼굴이 내 눈 앞에 아른거렸다.


나는 팀장님과의 논의 끝에 과감히 정시 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급한 회의가 없으면 7시에는 퇴근해서 집에 달려오면 7시 반, 아이 얼굴을 한 시간은 볼 수 있고 아이를 내 손으로 재울 수 있었다. 아이가 곤히 잠들면 나는 아이가 깨지 않게 살금살금 일어나 매일 12시, 1시까지 일을 했다. 맡은 일을 대충 처리하거나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거나 하는 건 못 참는 성격이라 더 눈에 불을 켰다.




그렇게 5-6개월이 지났나? 우연히 헤드헌터로부터 스타트업으로의 이직 제안을 받았다. 원래 PM까지 하고 나면 옮길 계획이 있었고 스타트업의 조직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흔쾌히 프로세스를 진행하기로 했다. 면접 과제도 있어 그 주에는 한 시간씩 더 늦게 잠들어야 했지만 나는 홀로 부엌 식탁에 앉아 초롱초롱한 눈으로 리서치를 하고 과제를 수행했다.


실무면접을 거쳐 대표 면접을 보고 오던 날, 나는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제목은 "엄마의 커리어 욕심은 사치인가요?". 가벼운 마음으로 프로세스를 진행한 것인데 대표 면접까지 보고 나니 당장이라도 옮기고 싶은 마음이 들어버렸다. 그런데 당시에는'스타트업'이라 하면 광고회사 못지않게 야근이 많고 주말에도 당연히 출근하는 곳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터라, 아직 어린아이가 있는 나에게는 불가능한 도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회사는 그나마 저녁에 퇴근해서 아이 재우고 다시 일할 수 있는데 그것마저 안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제일 컸다.


사람들의 댓글은 다양했다. "응원하고 싶어요. 흔들리지 말고 힘내세요"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일단 도전해보세요"라는 응원성 의견이 절반 정도였고, "아이는 금세 크니 좀 더 시간 보내주세요" "아이가 커갈수록 챙길게 더 많아져요" "솔직히 한국사회에서 아이와 커리어 둘 다 잡는 건 불가능하죠" 등의 걱정 어린 의견들도 많았다. 내 머릿속에 있는 모든 생각을 펼쳐놓은 느낌.


결국 고민 끝에 이직을 택했고, 2년 넘게 일을 했지만 다행히 걱정했던 정도는 아니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대부분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물론 아이가 잠들면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켜야했지만,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내 손으로 직접 잘 되게끔 만들어내는 과정들이 즐거웠다. 어떤 날은 새벽 2-3시까지 대표와 슬랙을 하고 메일을 주고받으면서도 힘들기보다는 엔도르핀이 돌았다. 옳은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글에도 썼지만, 엄마가 된다고 해서 커리어에 대한 욕심과 열정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한 아이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에, 워킹맘은 그 사이에서 적절한 지점을 찾아야만 하고, 그 과정에서 당연히 고통과 번민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워킹맘에게 가장 필요한 건 기업의 제도와 문화의 변화이다. 당장 돌봄 공백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재택근무나 유연근무, 단축근무처럼 기업에서 워킹맘을 고려한 제도를 마련하고 시행하지 않으면 워킹맘들의 고민은 계속된다. 아이가 커가는 단계 단계마다 워킹맘들의 머릿속에는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라는 질문이 수도 없이 떠오른다.


내 아이의 커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으면서 본인의 열정도 발산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면, 한국에도 아이와 커리어 둘 다 잡을 수 있는 워킹맘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어린아이를 키우는 워킹맘들의 연차가 대부분 황금연차라는 사실을, 그리고 자신의 입장을 고려해주는 회사가 있다면 열정을 불사를 준비가 되어있는 엄마들이 많다는 점을 기업들이 알아주면 좋겠다.


워킹맘의 번뇌가 조금이라도 줄어들 수 있는 세상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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