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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원 Sep 29. 2020

"감사하다"

만남 한 달. 아이들에게 감사하다

9월 마지막 날. 2학기 담임이지만, 코로나 19로 학급 아이들과 대면만남은 13일째. 그리고 벌써 우리 만남의 1/4이 지났네요.

 "감사한다"

오늘 아침 조회시간 우리 만남 1/4이 지난 시점, 소감이라며 아이들에게 짧게 이야기했습니다. 

조금 덧붙이자면,

 "즐겁다. 신난다. 힘이 난다. 흥난다. 에너지가 생김을 느낀다. 교사로 살고 있음을 느낀다"

 더 길게 말하고 싶지만, 담탱이의 긴 조회는 아이에게는 괴로움이기에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해 준 아이들에게 "감사한다"란 단어로 짧게 소회를 밝혔습니다.

단순한 칭찬세례나 가벼운 멘트는 아닙니다. 담임을 하면 희망하는 학급 모습을 그려봅니다. 21년 교육경력으로 아이의 변화는 매우 더딤을 압니다. 기대했던 모습이 나타나기까지 2-3개월은 족히 걸리는데, 우리 아이들은 벌써 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네요. 그 말씀을 드리고 싶은, 아니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글을 또 올립니다.



아침독서 - 책을 읽는 아이 출현^^

맘껏 음악틀어 놓고, 소리 지르고, 게임할 수 있는 공간에서 아침 독서를 하겠다는 담탱이에게 얼마나 갑갑했을까?

  "샘은 아침 15분간 교실에서 책을 읽을테니 책을 읽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존중될 수 있도록 부탁드린다. 갑갑하면 조용히 밖에 나가 시간을 보내도 되고, 자리에서 하고픈 것을 해도 됩니다. 자유롭게^^"

첫 만남에서 부탁했던 이야기 입니다. 강요하진 않았지만, 얼마나 짜증났을지는 첫 날 분위기로 짐작.  두 명만 교실에, 나머진 모두 밖으로 나가더라구요. 그것도 두 명은 엎드려 잠자는 아이.^^  그렇게 시간이 흘러, 9일차 드디어 책을 읽는 아이가 생겼습니다.

함게 책을 읽다

한 명^^.  그리고 또 한 명. 또 한 명. 11일차 3명의 아이가 아침에 책을 함께 읽습니다. 너무 고마운 아이들입니다. 그리고, 부족한 공부하는 아이 3명. 조용히 핸드폰에 집중하는 여러명. 이제는 22명 학급 아이 중 십여 명 이상 자리에 앉아 아침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변화는 교실 들락날락에 조심성이 보입니다. 다른 학급 학생의 출입에도 조심성이 보입니다. 이렇게 존중받는 학급이 되어감을 보고 느끼고 있으니 즐거울 수 밖에요.^^



학급청소 - 함께 하겠다는 아이.

"2반 교실이 너무 깨끗해졌다", "교실이 깨끗하니 수업지도하기가 좋다" 등 교과 선생님들에게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입니다. 그동안, 싫어 하는 것을 시키는 것이 마음에 걸려 교실은 제가 직접 청소를 하고 있습니다. 만남 3일차 "제게도 시켜주세요" 하는 아이가 나오더니, 지난주 금요일 4명의 아이가 함께 하겠다고 합니다. 23명(저 포함)이 사용하는 공간. 어찌보면 크겠지만, 2-3명이 10분이면 충분히 청소가 가능함을 압니다. 이제는 4명이 함께 해주니 5분이면 되지 않을까합니다.^^  

우유 정리하는 아이

우유상자 정리가 잘 안되니 번호를 부여하며 정리해주는 아이, 분리수거를 도맡아 하는 아이, 칠판과 교탁 정리를 하는 아이, 학급 뒷 편 돗자리를 관리해주는 아이, 매일 아침 학급 환기를 시켜주는 아이 등등 각자가 관심있는, 좋아하는, 즐거운 방식으로 학급에 기여를 하는 모습이 자리잡아 가고 있네요. 고민이던 특별실 청소구역도 학급임원들이 모여 방식을 논의하고, 지금 역할구성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10월이면 정리될 것 같아요. 무엇보다 서로 서로 정리하는 문화가 생기니 청소할 거리를 만들지 않으려는 노력이 보입니다. 예전과 확연하게 다른 교실 환경입니다.  오늘도 추석맞이 대청소를 해볼까 합니다. 하고 싶은 아이와 함께^^



야간 자율 학습 - "감사해요"란 이야기를 듣다.

야간 자율 학습 지도 문제로 세 차례. 세 시간 이상의 담임협의회 및 학교 협의회를 했습니다. 그만큼 아이에게도, 교사에게도 부담이 되는 것이 야간 자율 학습이겠지요. 지난 소식지에 말씀드렸듯, 제게도 큰 고민이기에 부모님께도 조언을 부탁드렸지요. 부모님, 교과교사, 담임교사 등 우려와 염려는 익히 알고 있으나, 아이들에게 수차례 의견을 묻고 이야기를 나누며 '찐 자율학습'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감시와 관리의 수동적 삶이 아닌, 야간 시간만이라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으로 주인된 삶을 살라며 본인에게 집중하라 했습니다. 다만, 교실공간은 존중해주길 부탁했습니다. 


야간자율학습 출석부.  자율학습 참여현황.  야자시간 운동장 산책 중인 아이들


온 종일 딱딱한 책상에 앉아 있던 아이가 문자를 보냅니다. 

학생 - '쌤 갑갑해서 그런데, 잠시 바위공원을 다녀와도 될까요?' 

담탱이 - '힘들지? 바위공원은 지금 출입금지이고 공사중이니 다른 곳이나 읍내 쪽으로 산책하면 좋을것 같아. 혼자 다니진 말고'


학생 - '쌤 00이랑 나갔다 와도 되나요?'

담탱이 - '답답하구나. 어디가실라구? 가서 사진 찍어서 보내줘'

학생 - '00카페에 있어요. 2교시때 꼭 들어갈께요'


운동장을 거니는 아이, 카페에서 친구와 차 마시는 아이, 구름다리(학교 휴게 공간)에서 이야기 나누는 아이, 빈 교실에서 친구와 게임하는 아이 등등 다양합니다. 이 다양함이 제게는 아이와 대화거리가 되니 친분도 쌓을 수 있고 너무 좋네요. 무엇보다 교실에서 공부하는 아이는 존중받는 환경에서 자기 공부와 할 일에 집중을 합니다. 또다른 교실의 아이는 이어폰을 착용하고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키보드를 누르며 자기 시간을 보냅니다.


어느날. "선생님 감사합니다" 야간 자율 학습시간을 마음 편하게 만들어 주어서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려와는 달리 아이들이 잘하네요"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계속 잘할까요?  아닙니다.^^  엉망일땐 엉망입니다.  아이나 학교나 아직은 익숙하지 않기에 우여곡절이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방향이 맞다면 우려때문에 시도하지 않는 아쉬움은 남기고 싶지 않아 조금더 긴 호흡으로 도전해보려합니다. "찐 자율학습"을 위해서...

 

SNS에서 퍼 온 아이들의 세가지 소원. 대입상담 프로그램. 급식 잔반 없는 학급으로 아이스크림 상품 받고 즐거운 아이들


SNS에서 오늘 본 아이들 세 가지 소원입니다. 한 번 읽어보셔요. 아이들 소원이 마냥 웃고 넘기기엔 가볍지만은 않네요.  고등학교 1학년.  다른건 모르겠고, 달달한 것은 자주 제공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늦기전에^^. 우리 반이 학교 급식에서 잔 반없는 학급으로 선정되어 아이스크림을 받았네요.  달달한~~~. 진학과 입시에 관심이 높은 학생이 있어 3학년 담임선생님 협조로 대입상담도 진행중에 있습니다. 빵에 관심이 있는 아이는 브레드메밀 대표님께서 체험 기회를 주시겠다고, 음악에 관심있는 아이는 감자 꽃 스튜디어 대표와 감독님이 장소 제공과 상담을 해주시겠다며 너무 큰 도움을 주시고 있습니다. 아이 한 명 한 명 모두 소중히 만나겠습니다. 부족하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내일부터 추석연휴입니다. 코로나19 여파로 어느때보다 낯선 명절 분위기이지만, 휴일은 휴일답게 명절은 명절같이 왁자지껄 화목한 시간이 되시길 희망합니다. 아이와 함께 달 빛, 별 빛 샤워하시며 힘든 것 없는지,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지, 학교 생활은 어떤지 물어보시며 산책하는 시간도 권해 봅니다. 발 맞추어 걷다 어깨 한 번 두드려주면 아이는 알아서 잘 성장하리라 생각합니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출산할 때 바랐던 희망을 넘어 너무나 건강하게 훌쩍 커버린 아이들. 이미 부모님 소원 성취를 해드린 아이. '잘 커줘서 고맙다' 어깨 툭툭 격려하는 센스.^^ 

소원비셔요

명절기간 더 많이 바라보고, 더 많이 이야기하는 풍요로운 한가위 보내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만남이 시간이 흐른 뒤 '행운'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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