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혼을 응원합니다!
아빠는 늘 나보고 ‘우리 집 사정을 잘 아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혼가정이라는 것이 한눈에 봤을 때는 흠이 되기 때문에, 오랜 시간에 걸쳐 나와 우리 가문을 알아 온 사람이어야만 그 편견을 걷어낼 수 있을 것이란다. 옛날에는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생각 해 보면 그 말의 이면이 보이는 것도 같다. 아빠가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이혼을 했다는 사실이 남에게 흠이 될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혼이 흠이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면 저런 생각도,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빠는 요즘도 나에게 ‘좋은 가정을 못 만들어 줘서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엄마는 나한테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이게 이혼 가정의 자식이 가슴에 불행의 씨앗을 품고 살아가느냐 마느냐를 결정하게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혼가정에서 자라서 너무 좋았어요!’ 라고 말하면 분명 거짓말이다. 7살, 엄마 아빠가 이혼한 직후에 나는 급격하게 말수가 없어져서 엄마가 걱정을 했다고 했다. 또 주말마다, 방학마다, 해가 바뀔 때 마다 엄마랑 아빠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느라 전학도 잦았고, 덕분에 불안한 청소년기를 맞아 혹독한 비행을 하기도 했다.
옛날에는 나한테 이런 시련을 안겨줘놓고 미안한 기색조차 없는 엄마에게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티비를 보거나 주변, 아니 아빠만 봐도 이혼가정 부모들은 자식에게 미안한 마음을 한 켠에 품고 어딘가 처연한 면이 있는데 우리 엄마는 하나도 안 그런거다. 그래서 엄마는 나한테 안 미안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랬더니 조금 안타깝기는 한데 미안하지는 않단다. 꾹 참고 살아보려 했는데 정말 더는 살 수가 없겠어서 이혼을 했고, 그게 엄마 자신을 위한 결정이기도 했지만 멀리 봐선 나를 위한 결정이기도 했다는 거다. 속으로는 무척 미안한데 겸연쩍어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는 진짜로 나한테 그다지 미안하지 않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엄마의 그 당당한 태도가 묘하게 기분이 나빴는데 엄마 말을 듣다 보니 그 말이 맞았다. 엄마가 나한테 미안해야 할 이유가 딱히 없었다. 분명히 엄마는 노력을 했고 결격 사유는 아빠한테 있었으니까. 엄마는 엄마의 선택이 옳았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이혼 앞에, 이혼을 대하는 세상 앞에, 이혼 가정에서 자라게 된 딸 앞에 주눅 들 필요가 없었고 당당했다.
그러다가 한~참 후에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다.
‘엄마가 참고 살았으면 니가 더 행복했을까?’
그래서 갑자기 엄마답지 않게 왜 그런 것을 묻냐고 되물었다. 그 때가 막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할 때였는데, 글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나중에 이 글이 나의 혼삿길을 막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저런 질문까지 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내가 대답했다.
‘아이고, 그것 때문에 막힐 혼삿길이면 그 결혼은 안하는게 낫네요!’
자식은 엄마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대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한다. 엄마는 이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숨기려하지 않았다. 늘 당당했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친구들에게도, 학교 선생님들께도 나는 내가 이혼가정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언제나 아무렇지 않게 말해왔다. ‘나는 아빠가 두 명이야’ 같은 말을 너무 쿨하게 이야기해서 오히려 듣는 쪽에서 당황스러워했다. 엄마의 쿨한 이혼 고백을 듣고 당황스러워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내 인생의 한 장면에서도 오버랩 되는 순간이다.
만약 엄마가 나 때문에 꾹 참고 살았다면 나는 나중에 어떻게든 그 사실을 알았을테고, 그 때 나는 나의 삶 전체를 부정하게 되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엄마가 행복했기 때문에 나도 행복할 수 있었고 지금의 나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자리를 빌어 제가 감히 자식 때문에 이혼을 망설이는 많은 분들게 말씀드립니다.
당신의 이혼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