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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Oct 31. 2019

사주에 남편이 없구먼

없긴, 조신한  전남편과  스위트한 현남편 둘이나 있는걸.


우리는 언제 점쟁이를 찾을까?


  모를 때일 것이다. 빨간 머리 앤을 보면 다이애나의 동생 미니 메이가 후두염으로 열이 날 때, 앤은 창문을 열어 열을 식히고 가래로 숨을 못 쉬는 아이를 부엌 식탁에 엎어 놓고 가래를 빼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다이애나의 부모님은 안 계셨고, 조세핀 할머니앤의 행동에 깜짝 놀란다. 그리고는 앤을 말리며 기도를 해야 한다고 한다. 앤의 응급처치로 미니 메이의 열은 내리고 다음날 돌아온 부모님은 앤이 딸을 살렸다고 고마워한다.


   후두염의 증세를 모르니 기도를 해야 한다고 했듯이 우리는 결혼이나 새로운 사업 시작을 시작할 때 점쟁이를 찾거나 기도를 하고 싶어 질 것이다. 내가 노력으로 되는 영역이 아닐 때 불안을 느끼고, 큰돈이 움직일 때 특히나 불안해하는 건 이해가 된다. 결혼에는 왜 그리 절차가 복잡해졌을까? 아마도 되돌릴 수 없다고 생각해서는 아닐까? 무르기가 쉽다면 그리 복잡할 것도 없는데 말이다.  한 번 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두려움이 커지고, 따라서  미신이 관여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혼을 한 후 영어를 가르치며 시골 학교 방과 후 수업을 했다. 그러다, 인근 중학교 원어민 교사로 온 남편을 알게 되었고, 사춘기 아이를 키우던 나는 재혼을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남편과 3년을 만나 오면서 아이들 키우며 지칠 때, 뇌경색으로 누워계신 엄마가 돌아가실 때 , 현재 남편은 나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그리고 딸이 고등학교를 갔을 때 청혼을 한 것이다.


   남편이 한국인이었다면, 남편을 따라 외국으로 떠날 상황이 아니었다면 굳이 점쟁이를 찾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점집에 들어서니 대기실이 있었고 하필 그 대기실에서 학부모를 만났네. 서로 민망하게 인사를 하고 순서를 기다렸다. 점쟁이는 진짜로 방울을 흔들었다. "아이고야 오빠야가 한 개 보이네. 근데 평생 같이 뒹굴 남편은 아니네. 사주에 남편이 없어".


     그렇구나. 내 팔자에 무슨 남편? 그럼 그렇지, 했다. 그렇게 말하는 점쟁이가 야속했다. 평소에 남편에게 내가 왜 좋냐고 물으면, 재밌고 독립 적이어서 라고 했었다. 그 말도 내겐 야속했었다.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일을 하던 내 심신은, 그만 독립적이고 싶었다.  그냥 누군가에 얹혀 가고 싶은 상태였다.


  하지만 점쟁이가 현재의 남편의 사주가 참 좋단다. 아주 시적인 표현을 써서 '향기를 만드는 사람'이란다. 나와 좋은 친구가 될 사이라 했다. 점쟁이의 말을, 당시 청혼을 하고 답을 기다리던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평생 좋은 친구 하나 만들기가 얼마나 힘드냐고, 그 친구가 남편이 된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 아니냐고 했다. 완전 설득되었다.


점쟁이에게 사주에 남편이 없다거나, 스님이 될 팔자라거나, 남자를 만나도 바람을 피울 팔자라거나.. 이런 말을 들었다고 낙심하지 마시길.  바람피우는 남자 만날 팔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남자나 여자나 길게 만나면 바람을 피우는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혼자 살 팔자라고? 그럴 수 있겠지. 그럼 혼자 살 수밖에 없는 내 삶에 남자가 짧게라도 있으면 그저 즐거워하면 안 될까?


전남편은 애가 어릴 때는 유부녀와 바람을 피우더니 이혼을 한 후에는 아이들에게 헌신적인 전남편이 노릇을 잘했다. 딸에게 늘 하는 얘기는, "아빠는 최고의 전남편이야. 전남편을 정말 잘 골랐어."


재혼을 하면서 생각했다. 혼자 살 팔자인 내게 남편이 주어 졌으니 고맙게 잘 써먹자. 남편 유통기한이 다 하는 날까지 최대로 행복하자. 5년째 옆에 있는 남편이 고마워서 자다가도 잘 있나 확인을 한다. 


흰머리는 수북하고 영양제를 한 웅큼씩 먹는 중년이지만, 사실상 신혼을 아직도 누리고 있으니 나는 복이 많다. 전남편 복도 많고 현남편 복도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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