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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Jan 05. 2021

향수를 안 뿌린 것 같은데 사랑스런 비누향이 나는 향수

뿌안뿌 향수 추천




나는 개코다. 

주위 사람들을 다소 피곤하게 할 정도로 후각이 예민하다. 예쁜 풍경을 보는 것만큼이나 좋은 냄새를 맡는 것을 즐긴다.



비 온 뒤나 해무가 짙고 습한 날, 동백섬을 걸을 때 나는 찐한 풀 냄새

플라워 수업할 때 맡을 수 있는 꺾인 유칼립투스 향이나 프리지아 향

추운 겨울날, 현관을 열 때 나는 상쾌한 겨울 공기 냄새

장작 태울 때 나는 불 냄새

오렌지 껍질 깔 때 나는 상큼한 오렌지 향

수박 반으로 가를 때 나는 시원한 수박 향

딸기 씻고 꼭지 자를 때 퍼지는 딸기 향



이런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자연적인 향들. 생각만 해도 코가 즐겁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돈을 주고 사는 인공적인 향에 대한 취향이 더해졌다.


누가 맡아도 향수를 뿌린 게 분명한 독하고 진한 향수는 싫어한다. 향수를 뿌리지 않은 것 같은데 뭔가 고급스럽고도 자연스러운 비누냄새 같은 향이 나는 향수들을 좋아한다.



인공향이지만 최대한 자연스러운 '뿌안뿌 향수들'


나와 비슷한 향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분명 이 향들을 좋아할 거다.


첫번째, 산타마리아노벨라 프리지아(Santa Maria Novella FIRENZE)



'찐' 비누향이 난다. 밖에 나갈 때보다 잠자기 전에 잠옷 입고 나서 뿌릴 정도로 편안하고 방금 씻은 것 같은 상쾌한 향이 난다. 개인적으로 목욕하는 걸 정말 좋아하는 데, 목욕하고 난 뒤에 이 향을 뿌리면 그 상쾌하고 깨끗한 느낌을 두 배로 만들어서 지속시킬 수 있다. 프리지아 꽃으로 만든 비누를 코에 대고 있는 느낌이다.


두번째, 바이레도 블랑쉬(BYREDO BLANCHE)



어릴 때 맑은 날 옥상에 빨래 널 때 젖은 수건(반드시 젖어야 하고 수건이어야 한다.)에서 나는 피죤(핑크색) 냄새를 진짜 좋아했다. 빨래 널다가 혼자서 수건을 코에 대고 킁킁거렸다. 그 때가 생각나는 향이다. 섬유유연제의 편안한 향에 약간의 고급스러움이 더해지면서도 절대 독하지는 않은 향. 이 브랜드에서 블랑쉬와 라튤립이 양대산맥인데, 라튤립이 풀메이크업 같은 향이라면 블랑쉬는 자연스러운 쌩얼같은 향이다.


세번째, 에르메스 운 자르뎅 무슈 리(LE JARDIN DE MONSIEUR LI)


20대 때 알았다면(그 옛날엔 없었겠지? ㅋㅋ)  더 좋았을 것 같은 귀여운 향이다. 아이유나 설리같은 애들의 얼굴이나 악동뮤지션 수현의 목소리가 떠오르는 그런 상큼하고 어린 향. 숲에서 귤이나 오렌지 따고 있는 느낌이 난다.(이름이 그런 비슷한 뜻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깊고 진한 개성을 표현하기 보다는 그냥 가볍고 귀여운 느낌을 내고 싶을 때 뿌리면 좋다.


마지막, 끌로에 러브(Chloe LOVE)



위의 세 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일 향수 뿌린 것 같은 향이 난다. 십 년 전부터 뿌리고 다녔던 내 인생 향수이자 메인 향수. 뭔가 강렬하게 내 이미지를 드러내고 싶을 때 뿌리는 향.(오글^^;;) 좀 강한 비누향인데, 향이 여성스럽고 예쁘다. 남자가 뿌리면 절대 안될 것 같은 여자여자향. 쌩얼인 날보다 좀 꾸민 날 더 어울리는 향이다. 넷 중 베스트이지만 슬프게도 단종되었고, 대체향을 못찾았다. 쟁여논 걸 아껴 쓰고 있는 중.


이 향수들은, 꽤 오랫동안 쌓아온 내 취향이고,

이 글은, 향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내 느낌이다.

하지만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충분히 좋은 정보일 것 같다. (요즘 코로나로 향수 시향이 안된다 하네요.)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향기로운 하루 보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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