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문학론’
나는 예전부터 '글쟁이', '문학소녀' 같은 말이 싫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쿰쿰한 다락방에서 칙칙한 옷을 입고 상 앞에 구부정하게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아저씨가 떠오르거나,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쓰고 두꺼운 양장본 책을 가슴에 안고 수줍어하며 걸어가는 촌스러운 여학생이 생각난다.
"난 소설 읽는 것 좋아해."라고 하면 가끔 "너 문학 소녀구나."라고들 했는데, 내가 생각하는 '소설'이나 '문학'이 주는 느낌은 '문학소녀'라는 말과는 너무 괴리가 커서, 말한 사람의 의도와는 별개로 혼자서 못마땅해 하곤 했다.
내가 생각하는 '문학'(특히 '소설')은 그런 이미지가 아니었다.
배신을 찬양하는 '사비나'처럼 도발적이고
연주하고 싶을 때만 산투리를 연주하고 춤을 추는 '조르바'처럼 자유롭고
동굴 속에서 옷을 벗던 '이그리트'와 '존스노우'처럼 순수하고
귀를 자르는 '고흐'처럼 광폭하고
브론스키와의 사랑에 생을 던지는 '안나'처럼 일탈적이고
자기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며 마약중독자가 된 '프랑수아즈 사강'처럼 치명적인.
그러면서도
난쟁이 '티리온'이나 넘버3의 '송강호'처럼 유쾌하고 재밌는.
문학은 종종 오해를 받아,
사회개혁가들의 사상적 도구가 되거나, 고리타분한 모범생들의 고지식한 취미같은 것으로 취급될 때가 있다.
문학은 그렇게 못생기고 재미없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힙하고 섹시하고 스타일리쉬한 예술이다.
브런치가 예쁘다고 제목을 붙여놓고
장황한 나의 문학론을 늘어놓고 말았다.
그동안 종종 딱딱하고 못생긴 걸로 오해 받던 '글쓰기'가 브런치에선 말랑말랑하고 재미있고 예쁜 걸로 본 얼굴을 내 놓게 된 것이다. 브런치 작가가 되기 전 브런치 로고가 너무 예뻐서, '혹시 작가가 되어 글을 발행하게 된다면 꼭 저 로고 실컷 써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감성 가득한 그림이나 사진과 함께 발행된 글들이 가득한 브런치는 웹 상의 어떤 글쓰기 플랫폼보다 예쁘다.
겉으로는 예쁜데, 속은 좀 비어있지 않을까. 하고 주저했었다. 진짜 등단 문인만 있는 것도 아니고, 문학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문가들만 있는 것도 아니라서 좀 중구난방이 아닐까. 나같은 사람도 글 발행을 시켜 주는 걸 보면 좀 퀄리티가 떨어지는 플랫폼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건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었다.(역시 나는 내 걱정만 하면 될 것 같다.ㅋㅋㅋ)
브런치를 시작하고, 현실에서 만나기 어려웠던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나 작가를 똑같이 좋아하는 사람들. '내 생각을 먼저 적어 놓으셨네?!'싶을 정도로 생각의 결이 비슷한 작가님들. '이렇게 좋은 글이 아직 책이 되지 못했다니!'라는 생각에 라이킷을 백 개 쯤 달아주고 싶었던 글들을 쓴 탁월한 작가님들. 내 닉네임을 알아보고 그 캐릭터를 자기도 좋아한다며 내 최애 소설의 이름을 말하던 독자님. 나만 아는 줄 알았던 독립 영화의 리뷰를 발행한 작가님들. 가벼운 취향 고백에 반응하는 나와 취향이 비슷한 독자님들.
이곳은 '영혼의 스트립쇼 스테이지' 같은 곳이다.
세상에 잘 없는, 서로의 내밀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장소. 이런 경험으로 인한 만족감에 아마 이곳의 작가님들이나 독자님들은 공감하실 것 같다. 소개팅 나가서 남자랑 커피를 마시며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나 작가를 말했을 때, 자기도 그 작품을 읽었다며 같이 특정 장면이나 구절에 대해 신이나서 이야기할 때 느끼는 쾌감같은 걸 이곳에서 종종 느끼고 있다.
브런치는 굉장히 재밌고 예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