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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Jan 28. 2021

사람은 ‘사랑’하고 물건은 ‘사용’해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미니멀리즘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이 글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미니멀리즘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기반으로 한 스토리텔링입니다.(요약이나 단순 리뷰가 아닙니다.) 이 글을 읽고 영화를 감상하시면, '미니멀리즘'의 매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

***글 제목은 미니멀리스트(이름 미상)의 말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 글에는 영화의 내용이 상당 부분 녹아 있습니다.(스포 O) 하지만 다큐 영화이기 때문에 스포와 무관하게 영화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1. 물건 중독, 물신의 개미지옥


최신 핸드폰을 사기 위해 몇 달 전부터 예약을 걸고, 곧 가격이 오르는 한정판 명품백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백화점 앞에 줄을 선다. 블랙 프라이데이가 되면 할인율이 파격적인 가전제품을 차지하지 위해 다 큰 어른들이 기꺼이 몸싸움을 하고, 고급 수입차와 도심의 비싼 브랜드 아파트가 우리 모두의 목표가 됐다.


자본주의 윤리와 소비 지상주의 윤리는 동전의 양면이다. 이 동전에는 두 계율이 새겨져 있다. 부자의 지상 계율은 '투자하라'이고, 나머지 사람들 모두의 계율은 '구매하라'이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부자나 빈자나 목적은 같다. 바로 물신.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물건(돈)에 대한 사랑 때문에 사람을 사용(이용)하고, 그것에 인생을 송두리째 바치고 있다.



나는 이 '끔찍한 물신'과 '산뜻한 미니멀리즘'을 연결하기 위해 한 여자의 이야기를 준비했다. 이 여자는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면서 당신의 가족이며 애인이고 친구이다. 이것은 물신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2. 성공한 여자의 불행한 이야기


여자는 행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대단히 부유한 것은 아니었지만 부족함 없이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여자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IMF가 터졌다. 건실하게 꾸려오던 아버지의 작은 공장은 직격탄을 맞았다. 공장은 부도로 문을 닫게 되고, 아버지는 빚쟁이들에게 쫓겼다. 알코올 중독으로 심신이 망가진 아버지는 엄마와 여자를 때렸다. 엄마와 여자는 견딜 수 없었다. 마지막 남은 월세집과 아버지를 버리고 모르는 도시로 도망쳤다. 아버지만 없으면 행복할 거라 생각했다. 기초 생활 수급자가 되어 보조금을 받으며, 불을 켜면 바퀴벌레들이 빠르게 구석으로 숨어 들어가는 눅눅한 반지하 사글셋방에서 겨우 하루하루를 견뎌냈다. 이제는 여자의 엄마가 망가지기 시작했다. 뭘 파는 건지 알 수 없는 술집에 나가 돈을 벌어 오는 엄마는 항상 술에 취해 있었다. 여자는 이 모든 불행이 가난 때문이라 생각했다. 엄마가 술에 취해 아무리 시끄럽게 난동을 부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친 듯이 공부만 했다. 명문대에 가고 좋은 직장을 얻어 돈을 많이 버는 것만이, 할 수 있다면 거기서 돈이 많은 남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는 것만이 자기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 믿었다. 그것은 여자만의 믿음이 아니었다. 모든 매체가, 온 세상이 그것이 정답이라고 여자의 믿음을 지지해 주었다. 여자는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고, 졸업과 동시에 일류 기업에 취업했다. 가난으로 인한 고생이 준 탁월한 처세술과 타고난 영리함은  여자를 최연소 고속 승진자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는 사이 여자는 삼십 대가 되어있었다. 휴일조차 공부와 일에 바치며 살았던 여자의 얼굴과 삶은 지쳐있었다.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이상하게도 여자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지친 얼굴과 삶을 달래기 위해 여자는 일에 바치고 남은 삶을 투자와 쇼핑에 쓰기 시작했다. 차곡차곡 쌓인 월급에 대출을 보태 아파트를 사고, 탄탄한 직장을 담보로 꿈꾸던 수입차를 리스로 샀다. 주식과 부동산을 더 키우고 싶어 재테크 공부에 주말을 바쳤다. 고급 가구들로 아파트를 채우고, 찌든 얼굴을 위해 럭셔리 에스테틱을 끊고, 피곤한 몸에는 명품을 휘감았다. 세상이 말하던 성공한 삶을 살게 된 여자. 집 값이 오르고, 주식도 올랐다. 직장 여자 후배들은 그녀를 롤 모델로 삼았고, 회사 홍보팀에서 그녀를 인터뷰하기도 했다. 모두가 여자를 향해 찬사를 보냈다. 여자는 일주일의 80프로는 일에, 10프로는 투자와 투자 공부에, 나머지 10프로는 쇼핑을 하는 것에 쓰고 있다. 그러니까 인생의 전부를 '돈을 버는 것'과 '돈을 쓰는 것'에 바치고 있다. 아주 가끔 아무것도 하지 않고(거의 그럴 시간조차 없지만) 거실 소파에 앉아 있을 때, 여자는 공허했다. 이상했다. 그토록 원하던 것을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다 얻게 되었는데,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 그 무렵, 여자의 성실함과 끈기를 사랑하며 여자 주위를 맴돌다 애인이 된 그녀의 예비 남편은, 여자의 그 악착같은 성격이 무섭다며 여자를 떠났다. 그와 거의 동시에, 학교를 졸업한 후 연락을 끊었던 엄마가 간암으로 죽었다. 탄탄해 보이던 여자의 삶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이 여자의 이야기는, 다큐 영화 '미니멀리즘(오늘도 비우는 사람들)'의 주인공인 조슈아와 라이언의 이야기에 내 경험을 적당히 섞어 한국식으로 각색한 것이다. 전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일정 부분 실재하는 경험과 생각이다.


3. 왜 우리는 이토록 물건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가?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기 전까지 끊임없이 광고를 본다. 다양한 얼굴을 한 광고는 인스타그램과 합세해서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또렷하고 매력적인 이미지로 보여준다.  우리가 손에서 놓지 않는 스마트폰(을 비롯한 여러 매체 기기들)은 우리가 누군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탈탈 털어서, 우리에게 물건을 팔고 싶어 혈안이 된 거대 기업들에게 모두 전해 준다. 덕분에 거대 기업들은 우리를 직접 만나지 않고도 우리의 비밀을 모두 알고 있다. 게다가 이제  우리는 인스타그램 때문에 슈퍼 스타의 집과 차, 강아지까지 구경할 수 있게 됐다.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된 우리는 그들까지 우리의 경쟁자로 포섭하고, 그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기만 한 우리의 삶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결코 이길 수 없는 게임에 인생을 올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모든 사람이 전부 부자에 유명해졌으면 좋겠다. 그럼 이게 정답이 아니란 걸 알게 될 테니까."
- 영화배우 '짐 캐리'


이야기 속의 여자는 가난했던 유년의 결핍으로 인한 상처까지 있었기 때문에 물건과 돈에 대한 맹목을 멈추기 힘들었을 것이다. 물건과 돈이 완벽하지 못한 자신을 완벽하게 만들어 줄 것이며 ,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를 우러러보고 존경하게 할 것이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완벽함과 존경이 자기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사실 사치품의 역사는 탐욕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감정적 상처의 기록으로 읽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이 역사는 남들의 경멸에 압박감을 느껴 자신에게도 사랑을 요구할 권리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텅 빈 선반에 엄청난 것들을 전시하려 했던 사람들이 남긴 유산이기 때문이다. 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전래의 물질적 형벌이라면, 무시와 외면은 속물적인 세상이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다.
-알랭 드 보통, '불안'


4. 광고가 말해 주지 않는 비밀


가난했던 시절에 비하면 상상도 못 할 물건을 엄청나게 많이 가지게 됐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것들을 가질 수 있는 능력도 생겼는데 왜 여자는 행복해지지 않았을까. 다큐의 주인공인 조슈아는 대기업의 최연소 임원이 되는 아메리칸드림을 이루고, 가족 수보다 많은 화장실이 있는 전원주택에서 고급 가구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었는데도 완벽하고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뭐가 잘못된 걸까?



그들이 행복해지지 못한 이유를 추적하려면  '동경과 갈망'에서 시작된 물건에 대한 사랑이 어이없는 '무관심과 싫증'으로 변해 버리는 과정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는 광고에 현혹되어 우연히(?) 어떤 하나의 물건을 짝사랑하게 된다. (각자 자기가 짝사랑 끝에 가지게 됐고 열렬히 사랑했으나 결국은 심드렁해진 물건을 하나씩 떠올려 보시길!) 그 물건만 가지게 된다면 정말 행복하고 자랑스러울 거라는 생각이 시작된다. 대부분은 그 물건을 집에서 남몰래 끌어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걸 가지고 나가서 어떻게든 남들에게 보여주는 행복한 상상을 한다. 만약 그것이 가지고 나가지 못하는 물건(이를테면 아파트 같은)이라도 그것을 우리의 친구들에게 어떤 방법으로든 보여 주는 달콤한 상상을 하게 된다. 상상은 우리의 사랑을 키운다. 그것은 이제 우리 삶의 동력이 된다. 어떻게든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사표를 던지고 싶은 회사에 꾸역꾸역 출근을 하고, 추가 수당을 위해 야근까지 견딘다. 한 대 갈기고 싶은 상사의 얼굴에 가식적인 자본주의 미소를 날리고, 진상 고객들의 무례한 행동도 초인적으로 견뎌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 사랑스러운 물건이 내 것이 되는 날. 비로소 우리는 마약 같은 기쁨을 맛본다. 길게는 며칠간 그것을 우리의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며 그 기쁨의 찰나를 연장시킨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흐른다. 한 때는 나를 살게 했던 그 사랑스러웠던 물건에 우리는 어찌 된 건지 좀 심드렁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심드렁을 넘어 심한 경우 그것의 존재조차 잊게 된다. '내가 저런 걸 사랑했다니?'라는 생각을 하기 바쁘게 더 매력적인 새로운 물건과 또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똑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우리는 이런 마약에 중독돼 있다.



*이미지 출처: 알랭드보통 ‘불안’
새로 산 자동차는 우리가 이미 소유한 모든 경이로운 물건들과 마찬가지로 곧 우리 생활의 물질적 배경 속으로 사라져, 특별히 눈길을 주게 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다가 강도가 창문을 깨고 라디오를 훔쳐가는 역설적인 봉사를 해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감사할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 깨달을 것이다. 광고는 또 어떤 물품이라도 우리의 행복 수준을 바꾸기는 어렵다는 점에 대해서도 침묵한다. 이것은 감정적 사건이 발휘하는 압도적인 힘과 비교하면 금방 알 수 있다. 아무리 우아하고 세련된 자동차라도 그 만족감은 인간관계가 주는 만족감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 집에서 싸움을 하거나 버림을 받은 뒤에 그 자동차가 아무런 위안이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순간이면 오히려 자동차의 냉정한 능률, 그 지시 장치들의 정밀한 딸깍거림, 탑재된 컴퓨터의 꼼꼼한 계산에 화가 치밀어 오를지도 모른다.
-알랭 드 보통 '불안'


이런 과정은 물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야기 속의 여자를 다시 생각해 보자. 여자는 명문대 졸업장, 높은 직위가 적힌 대기업 사원증 같은 유형의 상징물과 우등생으로서의 우월감, 골드미스라는 자부심, 고속 승진으로 인한 만족감 같은 무형의 성취감 등을 모두 가지게 된다. 하지만 기대한 만큼의 큰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마침내 갖게 된 물건과 성취가 모두 무의미하니까 그런 것들에 대한 갈망을 전면적으로 멈추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불순한 의도로 선전된 물건과 성취를 열렬히 사랑하다가 결국은 심드렁해지는 '왜곡된 선망의 과정'을 유심히 되짚어 보고, 그것들이 과연 인생을 바칠 정도로 대단한 것인가에 대해 깊이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소비와 성취를 잠시 멈추고 그것들이 사실은 진짜 우리의 욕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서 오는 벅찬 마음에 비해 그것들이 턱없이 무력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것을 모르고 의미 없는 맹목에 취해 살게 된다면,  피곤한 삶의 끝에서 ‘원치도 않은 것을 미친 듯이 쫓으며 인생을 소진했다는 사실’에 우리는 어이가 없어 절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갖고 있지도 않은 돈으로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사서
싫어하는 사람들한테 잘 보일 필요가 없다.
-'미니멀리즘(오늘도 비우는 사람들)' 데이브 레임스


5. 미니멀리즘에 대한 오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조슈아는 어머니의 죽음과 아내와의 이혼을 계기로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자기의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가장 먼저 한 것이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정리해서 팔거나 기부한 것이었다. 라이언 또한 조슈아의 영향으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하고 '박스 파티'를 시작한다. '박스 파티'란 집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을  박스에 포장한 뒤 한 달 동안 필요한 물건만 박스를 뜯어서 사용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충격이었다. 그 많은 박스 중 한 달 동안 라이언이 사용한 것은 단 20%뿐이었다. 십 년 동안 뼈 빠지게 일해서 힘들게 사들인 물건들이 사실은 자기에게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이었고, 나중에는 그게 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그들은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기 시작했고, 결국은 팔로우 몇백만의 미니멀리즘 전도사가 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미니멀리즘을 '근검절약 운동'이나 '미니멀한 인테리어' 같은 것으로 오해한다.


미니멀리즘은 '돈을 아끼는 것'이 아니다. 미니멀리즘을 저성장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한 절약의 지혜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미니멀리즘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미니멀리스트는 필요하지 않은 곳에 돈을 쓰지 않고, 불필요한 물건을 사 모으지 않는다는 점에서  '알뜰한 사람'일 수 있다. 하지만 진짜 미니멀리스트는 돈과 시간을 쓰고 싶은 곳에는 쓰고 싶은 만큼 쓰고, 쓰고 싶지 않은 곳에는 조금도 쓰지 않는 것이다. 그 기준은 자기의 가치관과 선호에 있다.


미니멀하지 않은 디자인의 물건을 다 갖다 버리고 온 집안을 하얀 가구로 채우는 것은 진짜 미니멀리즘이 아니다. '김 알파카'라는 유튜버가 방송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집에 있는 멀쩡한 물건들 다 갖다 버리고, 온 집안을 새하얗게 만드는 그딴 게 미니멀리즘이야?"

이 사이다 발언에 나는 격하게 공감했다. 인테리어를 유행하는 미니멀한 디자인으로 바꾸는 것이 미니멀리즘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또 하나의 맥시멀리즘이다. 그냥 유행하니까 자기의 기호와 관계없이 시간과 돈을 쓸데없이 쓰는 짓이다.


결국 진짜 미니멀리즘은 물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멘털과 인생에 대한 것이다. 물건을 버리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삶을 오로지 우리가 원하는 것들로만 채우기 위해, 또 우리가 원치 않는 것들을 우리의 삶에서 비워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물건을 버리는 것은 그다음의 일이다.


6. 돈을 내고 다시 인생을 돌려받은 여자의 행복한 이야기


그 여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한 순간에 엄마와 애인을 잃은 여자는 슬픔과 외로움을 견딜 수 없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지속할 수 없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여자가 가진 성취와 물건들은 그녀에게 조금의 위로도 되지 못했다. 일단 여자는 사표를 냈다. 집을 가득 채운 값비싼 물건들을 팔고, 리스가 끝나지 않은 차도 작은 국산차로 바꿨다. 물건도 없으니 큰 집도 필요 없어서 소형 아파트로 이사했다. 물건들과 주식을 판 돈과 퇴직금은 여자가 수개월간 쉴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주었다. 더 이상 좋아하지도 않는 비싼 물건을 사는 데 돈을 쓰지 않으니,  시간은 더 늘어났다. 마음껏 쉬고 자주 긴 여행을 떠났다. 여자는 그제야 자기가 돈이나 명품 말고 뭘 좋아하는 사람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중고등 학교 때 좋아했던 소설책들과 백일장에서 받았던 상들이 떠올랐다. 오후에 산책을 하며 햇볕을 마음껏 쬐고 풀 냄새를 맡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장을 봐서 자기를 위해 요리를 하고 맛있게 먹는 여유가 좋아졌다.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책을 실컷 읽는 행복을 알게 됐고, 일상을 짧을 글로 쓰고 문학 공모전을 기웃거리게 됐다.

그렇게 느릿한 시간이 흐르고 흘러 여자는 몰라 보게 변했다.

여자는 더 이상 몸에 딱 붙는 비싼 옷을 입지 않는다. 여자에게 가장 중요하고 즐거운 일상은 소설을 읽고 소설을 쓰는 것이다. 그녀는 지방의 작은 독립서점의 주인이 되었고, 그녀와 함께 좋아하는 것을 하며 느긋하게 살기를 원하는 애인도 생겼다. 둘을 닮은 아이를 가질까 하다가, 귀여운 강아지 두 마리를 입양했다. 여자는 더 이상 세상의 요구에 자신의 기호를 양보하지 않는다. 여자는 자신이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할 때 진심으로 행복한지 분명히 알게 됐다.


그녀는 비로소

사랑하지 않는 것들을 삶에서 모두 비워 내고,

사랑하는 것들로만 자기의 삶을 채우게 된 것이다.



7.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은 당신에게


우리가 당장 집 안에 있는 불필요한 물건들을 버린다고 해서, 바로 대단한 행복이 우리를 찾아 오지는 않을 것이다. 조슈아나 라이언처럼 팔로워가 몇백만인 인플루언서가 되기도 힘들 것이고, 이야기 속의 여자처럼 시간을 살 수 있는 돈이 우리에겐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읽은 당신이  '저 차만 사면, 저 집만 사면, 저 소파만 가지면, 저 사람처럼만 살게 된다면' 같은 물신의 개미지옥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당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에 당신의 인생을 쓰기를 바란다. 진짜 당신이 원하던 '자유'를 찾기를 바란다.


불필요한 것들을 잔뜩 파는 상점이 즐비한 시장에서 하나라도 더 팔아 보려고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천박한 호객꾼들을 뿌리치고 오로지 내가 갖고 싶은 것만을 향해 우리는 단호하게 걸어가야 한다.
by sav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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