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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Feb 26. 2021

모두가 백설공주가 될 수 없는 세상에서(에필로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빨간 머리 앤'


***제목의 에필로그 표시는 ‘브런치 북의 에필로그’라는 뜻입니다. 넷플릭스 스토리텔러 활동과는 무관함을 알립니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이 글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빨간 머리 앤'을 기반으로 한 스토리텔링입니다.(요약이나 단순 리뷰가 아닙니다.) 이 글을 읽고 시리즈를 감상하시면, '빨간 머리 앤'의 매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스포 X)





어릴 적 엄마 아빠는 나를  '미코'라고 불렀다. 미스코리아를 줄여서 미코. 엄마 아빠는 내가 너무 예뻐서 정말 진지하게 나중에 키만 크면 나를 미스코리아 대회에 내 보낼 계획이었다고 한다.  얼핏 보면 남자 같은 우량아가 뚱하게 앉아 있는 내 돌 사진 앞에서, 엄마 아빠의 그 진지한 착각은 개그가 되어 나를 폭소하게 했다. 지금이야 그렇지만, 당시에는 그런 엄마 아빠의 사랑에 철저히 세뇌되어 나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나중에 커서는 이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사촌 오빠랑 예쁜 드레스를 입고 결혼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나보다 생일이 빨랐던 유치원 단짝 민선이는 생일날 서울에 사는 이모한테 핑크색 드레스를 선물 받았다. 가슴 부분에 반짝이는 잔잔한 큐빅, 움직일 때마다 촤르르 물결이 생기는 프릴 밑단. 그걸 본 나는 나중에 미스코리아가 되려면 드레스를 꼭 사서 입어봐야 한다며 아빠를 조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생일 때 퍼프 소매가 봉긋한 하얀 블라우스에 풍성한 주황색 공단 스커트가 붙어 있고 등에는 큰 리본이 달린 원피스를 선물 받았다. 드레스를 입고 엄마 아빠 앞에서 팔을 펼치고 한 바퀴 돌면서, 미스코리아가 돼서 왕관까지 쓴 내 예쁜 모습을 상상했다. 아마 아빠의 뽀뽀와 엄마의 박수가 그 상상에 날개를 달아줬을 게다.


그 날개 달린 상상은 얼마 안 가 깨졌다. 재롱 잔치 때 '백설공주' 연극에서, 나도 민선이도 백설 공주가 되지 못했다. 나는 주황색 드레스를 입는 대신 주황색 부직포로 만든 고깔모자를 쓴 세 번째 난쟁이가 되었고, 민선이는 큐빅 드레스를 입는 대신 온몸에 은박지를 감은 거울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드레스를 백설 공주님과 왕비님께 빌려 드리는 굴욕까지 당해야 했다.


하얀 얼굴에 키가 큰 백설공주가 누운 침대 앞에 앉아서 , "어, 예쁜 공주님이 잠을 자고 있잖아!!"라고 말하며, (심지어 세 번째 난쟁이의 대사는 딱 한 마디였다.) 엄마 아빠 말이 거짓말이 틀림없다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어린 마음에 충격이 컸는지, 멍해진 나는 마지막 촛불 잔치 시간에 내 앞에 서 있는 은지의 머리카락을 홀라당 태워버리는 소동까지 일으켰다. 그 날 이후 거울을 보면 어쩐지 예전보다는 내가 훨씬 못생겨 보였다. 그래도 나와 꼭 결혼하겠다던 사촌 오빠와 원피스를 입고 결혼식 연습을 해 봐도 전혀 흥이 나지 않았다. 세상에서 제일 예쁘지도 않은데, 앞으로 어떻게 살지 막막해졌다.


이후 나는 우리 딸이 제일 예쁘다는 엄마 아빠의 말을 반만 믿었다. 미스코리아는 결국 되지 못한 거울 속의 나를 그래도 좋아하는, 조금은 특이한 어른으로 컸다.

 



주황색 난쟁이가 됐던 그날처럼, 세상은 백설공주 연극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종종 나를 주눅 들게 했다. 모두에게 인정받는 멋진 인생을 살려면, 분홍색 큐빅 드레스를 입은 하얀 얼굴의 백설 공주가 되어야 한다고 나를 유혹했다. 열심히 노력하면 백설공주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예쁘다고 할 수 있는 백설공주의 시녀 정도는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시키는 대로 따라가지 않는다면 세 번째 난쟁이보다 더 비참한 거울이나 나무 같은 것이 될지도 모른다고 협박까지 했다. 세상은 동의해야만 할 것 같은 기준을 만들고 그것을 따라야 행복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선전했고, 내 안에 있는 내 영혼을 보지 못하도록 내 눈을 가리는 데에 온 정성을 다했다. 한때 그런 세상에 동조하는 난쟁이가 된 나는 분주했다. 백설공주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백설공주와 비슷한 그 무엇도 되지 못했다. 그래도 고생 끝에 백설공주가 없을 땐 그럴듯해 보이기도 하는 시녀 정도는 되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 고생을 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평생 죽도록 노력해 봐야 절대 백설 공주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백설공주는커녕 백설공주에게 사과나 팔아야 하는 응큼한 마녀 같은 얼굴로 허망하게 늙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내가 되고 싶은 것은 백설공주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자유롭고 아름다운 다른 무엇이었다.


그것은 죽도록 노력해서 얻거나 이룩하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이 굴리기 쉽도록 덮어 씌워서 감쪽같이 싸 놓은 단단한 번데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 그것은 이미 내 안에 있었다. 내가 미스코리아가 되지 못한 이유는 단지 키가 작아서일 뿐이라는 웃기는 말을 믿게 해 주는 나의 사랑이 그 번데기를 벗겨 주었다. 탈피를 한 나비처럼 자유로워진 나의 영혼은 꽃의 꿀을 빨듯 그 사랑을 있는 대로 쪽쪽 빨아먹으며 더 아름답게 날개를 키웠다.


나는 백설공주처럼 모두가 우러러보는 특별한 사람은 되지 못했다. 하지만 나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세상에서 사랑을 향유하며 즐거울 수 있는 자유로운 사람은 될 수 있었다. 그것은 층이 많은 세상에서 아래에 있는 사람이 느껴야만 하는 체념적 만족감이나 위에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기만적 우월감과는 다른 차원의 어떤 것이었다. 그 차원엔 층이 없었다. 층이 없는 세상에서 나는 굳이 무엇이 될 필요가 없는 고유하고 자유로운 존재였다.





차가운 겨울 냄새 대신 마음을 간지럽히는 꽃 향기가 날 것 같은 바람이 불기 시작한 요 며칠. 나와 같은 방식으로 인생을 즐기는 특이한 아이를 만났다.


앤 셜리 커스 버드. 



그 애는 바로 어릴 적 우리 모두의 귀여운 친구였던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 머리 앤'이다.


고아인 앤은 보육원과 위탁 가정을 전전하며 따돌림과 학대로 점철된 힘든 삶을 산다. 하지만 그녀 특유의 따뜻한 감수성과 엉뚱한 상상력은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운 소녀로 그녀를 키운다. 초록지붕집으로 입양되어 마릴라와 머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그녀는 자기 색깔이 분명한 아름다운 숙녀로 성장한다.


 잠깐!!! '빨간 머리 앤' 관전 포인트

1. 인트로가 기가 막힌 예술품이다. 상상력으로 가득한 앤의 사랑스러운 영혼을 그대로 그려 놓은 작품 같다. 스킵하지 말고 꼭 보시길!

2. 어릴 때 애니메이션 ‘빨간 머리 앤’을 봤다면, 그때의 느낌과 비교하며 더 재밌게 볼 수 있다. 배경과 인물이 애니메이션과 찰떡이다. 연출, 연기 모두 흠잡을 데 없다.

3. 클래식하고 엔틱한 인테리어와 패션에 관심이 있다면 보는 내내 눈이 즐거울 것이다. 장면 장면이 얼마나 예쁜지!

4. 페미니즘이나 인종문제와 관련된 편견과 차별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해 주는 작품이다. 내가 스토리텔링 한 주제가 가장 큰 주제이지만 다른 작은 주제들도 함께 생각해 본다면 더욱 재밌을 것이다.

5. 이 글에는 스포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내 글을 읽고 이 시리즈를 보면 감동이 배가 될 것을 보장한다. 빨간 머리 앤은 상상력이 풍부한 이야기꾼이다. 작가 지망생인 브런치 작가님들께 분명 큰 영감을 주는 작품일 것이다.



1. 사람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랑이다.


커스 버드 가로 입양된 앤은 마릴라의 브로치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다시 보육원으로 쫓겨 가게 된다. 보육원 앞에 도착했지만 끔찍했던 기억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우유 배달 아저씨의 마차를 타고 기차역으로 다시 돌아간다. 앤이 떠난 뒤 소파 틈에서 브로치가 발견되고, 머슈는 앤을 찾아 나선다. 우여곡절 끝에 기차역에서 시를 암송하며 구걸을 하는 앤을 발견하고 집에 데려가려 한다. 누명을 쓴 것에 화가 난 앤은 머슈를 거부하고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한다. 어린 소녀에게 치근덕대는 나쁜 사람으로 오해받은 머슈를 주변 사람들이 저지하자, 머슈가 말한다.


"She's my daughter!!"


그 말을 들은 앤은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머슈에게로 달려가 안긴다. 오랜 시간 앤을 괴롭혔던 미움과 조롱과 불신 같은 것들이 머슈의 사랑으로 말끔히 씻긴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얼굴로 앤은 다시 초록지붕집으로 돌아간다. 이후로도 머슈는 항상 꿀 떨어지는 눈에 포근한 아빠 미소로 앤을 바라보는데, 이런 머슈의 사랑은 앤을 누구보다 행복한 소녀로 키운다.



사람이 자기의 영혼을 사랑하게 되는 일에는 의외로 그리 많은 사람의 동의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때때로 나는 아주 강력한 한 사람의 동의만으로도 내가 사랑받아 마땅한 인간임을 인정할 수 있었다. 내가 빨강머리 앤처럼 쉴 새 없이 떠들 때 '네가 무슨 말을 해도 나는 너를 받아줄 수 있어.'라고 말하는 눈으로 누군가가 나를 바라봐 주고 안아 주고 입을 맞춰 주는 순간들이 왔을 때, 나도 그에 동의하며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람은 아빠이기도 했고, 엄마이기도 했고, 연인이기도 했다. 나중에는 내가 낳은 아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같은 걸 좋아한다는 동질감으로 늘 행복했다.




2. 사람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그 사랑을 더 아름답게 하는 것은 상상력이다.


농사를 도울 남자 아이를 입양하려 했던 마릴라는 앤을 보육원으로 돌려보내려 한다. 돌아가는 마차 위에서 앤은 말한다.


“돌아가는 이 길을 즐기기로 마음먹었어요. 즐기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으면 항상 즐길 만한 걸 찾을 수 있어요.”


앤은 에번리와 초록지붕집에서의 하루를 선물이라 생각하며 온갖 상상으로 즐거워한다.



결국 초록지붕집에 살게 된 앤은 들떠서 마릴라에게 고모라고 부르면 안 되냐고 묻는다. 그건 실제와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말에 앤은 "뭔가를 실제와 다르게 상상해 보신 적 없으세요?"라고 묻는다. 마릴라가 그런 적 없다고 하자, 앤은


"정말 많은 걸 놓치고 계시네요."


라고 말한다.


우리의 삶이 늘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에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양적으로 계산하자면 아름답지 않은 날이 훨씬 많을지도 모르겠다. 아름답게 살고자 사랑을 실컷 한다고 한들, 그 사랑의 이면에는 번민과 고통이 늘 따라다니게 마련이다. 그 고통과 번민까지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상상력이다. 상상력이 빠진 삶이라고 해서  아름답지 않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채색되지 않은 그림처럼 생기가 부족하다. 내가 겪은 사랑들은 솔직히 말해서 세기의 연인의 사랑보다 더 예쁘다고 할 수도 있었는데, 나는 그 예쁨을 그대로 표현할 수 없어서 종종 답답했다. 그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지어낸 이야기밖에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아파트 값과 주식이 오르는 것보다 그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이 내게는 훨씬 중요한 일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나는 살아있는 동안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 소설을 쓸 것이다. 살아있다면 언제나 사랑할 것이고, 사랑한다면 그것을 제대로 말하고 싶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세핀 할머니의 파티에서 조각품을 보고 감탄한 폴이 말한다.


이 조각은 외로움을 덜어 줘요.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진정한 슬픔을 아는 사람이에요. “


자신이 그 조각의 주인임을 밝힌 조각가가 폴에게 말한다.


“그것이 예술의 숭고함이야. 예술을 만드는 능력은 아무나 경험할 수 없는 방식으로 슬픔에 의미를 부여하지.”



다친 손 때문에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어 좌절했던 폴은 이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얻어 찰흙으로 조각을 만들기 시작한다. 상상하지 않고, 예술을 향유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그야말로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파티 전야에 앤과 조세핀 할머니는 이런 대화를 한다.


"제가 파티는 처음이라서 분위기도 모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

"그냥 즐기기만 하면 된단다. 다른 사람이 아닌 너 자신의 모습으로."

"제가 그러다 항상 실수하고 어울리지 못하고 그랬거든요. 좀 유별나서요."

"그렇다면 네게 딱 맞는 파티다."


우리는 다들 유별나지만 우리에게 딱 맞는 파티에 온 것처럼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그냥 이 삶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나는 더 이상 세상이 좋다고 떠받드는 백설공주 같은 것에 인생을 허비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나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즐기며

나만이 할 수 있는 사랑을 하고

나만이 만들 수 있는 이야기로 그 사랑을 말할 것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많이 달라졌다. 내 육체는 늙어가고 있지만 내 영혼은 점점 채색되는 그림처럼 생기로 가득해지고 있다. 언젠가 나의 이야기가 내 슬픔에 의미를 부여하고 누군가의 외로움을 덜어줄 것을 믿는다.







***본 브런치 북에는 넷플릭스 스토리텔러 활동을 하며 쓴 글이 몇 편 포함되어 있어(본 브런치 북의 주제와 흐름에 맞아 포함시키게 되었습니다.), 브런치 북과 무관한 안내 글귀가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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