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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Feb 21. 2021

음악으로 말할 수 있다면






소설을 읽다 보면 소설을 쓰고 싶어지듯, 음악을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노래를 부르고 싶어진다. 


나는 괴정시장이 떠나가라 '아기 염소'를 부르며 노란 옷을 입고 유치원으로 뛰어가는 꼬마였고, 갈매 계곡 벤치에서 통기타를 끌어안고 애드립 애들과 입 모아 '여행스케치'를 부르던 여고생이었으며, MP3 이어폰으로 두 귀를 막은 채 '기억의 습작' 뮤직비디오라도 찍는 것 같은 착각으로 노을 진 캠퍼스를 내려가던 여대생이었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꾸준하게, 그리고 편안하게 음악을 좋아했다. 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게 음악은 문학과 다르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가 가진 언어 중에 가장 멋진 것이었으면 하고 늘 동경하는 문학에 비해, 음악은 잘하고픈 욕심 없이 그저 좋아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기어이 내 것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저돌적인 욕망 없이, 가끔 만나 차 한 잔 나누면 그 여운만으로 기분이 산뜻해지는 쿨한 우정 같은 마음. 나는 항상 그런 마음으로 음악을 대해왔다.


깊이 알고 싶다기보다 그냥 내가 느끼는 대로 즐기고 싶은 마음이 주는 가벼운 행복. 음악은 내게 그런 걸 알려주었다. 그러다 보니 오래 좋아했음에도 특별한 조예가 없다. 장르나 아티스트에 대한 깊은 지식도 없고, 특별히 잘 다루는 악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좋아한다. 잡식성으로. 어쩌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그것대로 기뻤고 더 즐길 수 있었다.


사람도 담백하게 바라는 것 없이 좋아하다 보면 더 좋은 사이가 되듯, 나와 음악은 나이가 들수록 더 자연스럽고 멋지게 친해지고 있다.



가슴속에 뒤엉켜 부유하는 감정들이 내 목소리에 생생하게 담겨 사랑하는 이의 귀로 흘러가거나, 내 손가락을 타고 하얀 화면에 가지런히 찍혀 마음이 같은 이들의 눈에 담기는 것.


그것 이외에 그럴 수 있는 방법이 더 있다면 좋을 것 같아서 피아노를 다시 배우고 있다.


음악은 말이나 글보다 훨씬 원초적인 느낌으로 좋다. 뜨거운 여름 숲에서 계곡물을 찾아 비로소 발을 담글 때 느끼는 청량감 같은. 중간에 거치는 것 없이 바로 와서 닿는 느낌. 악보에 옮겨지는 것이 오래 걸렸을 뿐, 음악은 어쩌면 언어 이전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노래를 잘하거나 춤을 잘 췄다면 더 행복하게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익숙하게 연주할 수 있는 코드가 하나씩 늘어가는 것은, 말할 수 있는 단어가 하나씩 늘어가는 것처럼 기쁘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할 수 있는 말이 조금씩 더 늘어가는 외국인처럼 설렌다.


음악은 어쩌면 내가 말하기 이전부터 잘 알던 언어였는지도 모른다.







요즘 연습 중인 '로망스'라는 뉴에이지 곡인데 어설프지만 과정을 기념하고 싶어 첨부합니다.

편안한 주말 오후 보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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