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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Feb 15. 2021

'의심'이라는 불행

넷플릭스 오리지널 '파라메딕 앙헬'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이 글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파라메딕 앙헬'이라는 스페인 스릴러 영화를 기반으로 한 스토리텔링입니다.(요약이나 단순 리뷰가 아닙니다.) 이 글을 읽고 영화를 감상하시면, '파라메딕 앙헬'의 매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



방심이 깨지던 날


예쁜반에 적응하며 엄마랑 아빠 말고 좋아하는 것들이 마구 늘어가던 여섯  무렵이었다. 80년대 버블 경제의 풍운아였던 아빠는 파친코에 빠져서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그런 아빠와 달리 엄마는  아침이면 예쁜 방울로  갈래로 머리를 묶어 주고, 밤이면 잠들 때까지 옆에 누워 자장자장을  주었다.  갈래 머리를 휘날리며 놀이터에서 모래를 잔뜩 묻히고 들어온 어느 날이었다. 집에 엄마가 없었다. 옥상까지 올라가 봐도 엄마가 없어서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나 보다. 낮잠을 자다 엄마 냄새를 맡고 몽롱한 눈을  머리맡에 엄마를 보는 것은 여섯  아이에게 얼마나 당연한 방심이고, 달콤한 평화였을까.


그날 처음으로  아이의 방심이 깨졌다. 눈을 떠 보니 엄마는 없고, 고모와 사촌 언니가 보였다.

"ㅇㅇ아 너희 집 이제 망했어. 숙모가 가방 싸서 집 나갔대."

사촌 언니의 철없는 말에 벌떡 일어나 옷장과 화장대와 신발장을 차례로 열어보며 조금씩 커진 울음소리는 아빠가 오고 나서도 계속됐다. 엄마가 아팠을 때 아빠가 묶어 준 머리는 최악이었다. 너무 못생겨 보여서 유치원에 가기도 싫었다. 아빠는 자장자장도 너무 세게 해서 자꾸 잠을 깨웠다. 엄마가 없으면 어떻게 살지. 엄마 아빠가 멀리 돈 벌러 가서 할머니랑만 사는 예쁜반 친구 유진이가 떠올랐다. 유진이의 노란 유치원복 소매는 늘 시커맸고, 유진이 집에 가면 엄마 냄새가 안 나고 쿰쿰한 할머니 냄새가 났다. 생각할수록 막막해서 나는 계속 울 수밖에 없었고, 아빠와 고모는 집 나간 엄마보다 울음을 그치지 않는 나에게 더 기가 질려 버렸다.


다행히 엄마의 가출은 아빠의 눈물겨운 사과와 고모의 정성 어린 다독임으로 일주일이 못 되어 끝났다. 하지만 나에게는 어두운 비밀이 생겼다. 나는 엄마가 또 도망가 버릴까 봐 무서웠다. 엄마가 계모임 같은 데 간다고 화장을 하고 구두를 신고 나가는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나만의 의식을 치렀다. 그 의식은 엄마가 나가자마자 엄마의 옷장과 신발장과 화장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꼼꼼했는데, 엄마가 가지고 있는 옷과 신발, 보석과 화장품의 목록과 위치를 거의 다 외울 정도였다. 그 의식이 모두 끝나고 나서야, 나는 겨우 안심하고 놀 수 있었다. 그 의심이 다시 방심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의식을 치르는 동안 나는 내가 '집 없는 아이'에 나오는 '래미'처럼  불쌍하고 쓸쓸한 아이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슬퍼했다. 그 비밀은 아무한테도 털어놓지 못했다. 더 교묘한 방법으로 나를 속이고 도망갈까 봐 엄마한테는 당연히 말할 수 없었고, 내가 유진이처럼 불쌍해 보일까 봐 유치원 친구들한테도 말하기 싫었다. 아빠나 고모한테 말하면 엄마한테 말해서 또 엄마를 화나게 할까 봐 무서워서 말할 수 없었다. 옷장의 서랍을 하나하나 열어 엄마의 옷을 확인하는 여섯 살 아이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아이는 한동안 그 비밀만큼의 어둠을 갖게 되었다.


다행히 엄마가 다시 도망가는 일은 생기지 않았고, 나는 엄마의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다시 방심하며 컸다. 혼자서 머리를  갈래로 예쁘게 묶을  있게 되면서,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사랑의 대상은 단짝이나 같은 학원의 남자아이였다가, 방울로 머리를 묶지 않으면서부터는 공식적인 남자 친구들로 변해갔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며 느꼈던 '행복'에는 언제나 '방심하는 마음' 포함되어 있었다. 연애의 도입부에 있게 마련인 불안을 포함한 설렘은, 연애의 중반부로 접어들며 편안한 방심으로 변했다.  방심은 언제나 나를 평온하게  주었다.




의심이라는 불행


영화 '파라메딕 앙헬'에는 방심할 수 없어 불행한 남자가 나온다.



구급대원인 앙헬은 비밀이 많다. 구조한 환자의 선글라스나 사망한 환자의 보석을 상습적으로 훔친다. 밤새도록 옆집 개가 짖는 소리에 시달린 다음 날, 개 주인의 진심 어린 사과를 냉정하게 무시한다. 학교에서 동물 심리를 배운다는 애인에게 "그런 걸 왜 배워? 동물은 감정도 없는데."라며 이해할 수 없어한다. 짧은 바지를 입고 학교에 가는 애인을 근거 없이 의심하며 핸드폰을 훔쳐본다. 생리 중인 애인의 거절을 무시하고 억지로 섹스를 하려 한다. 앙헬은 뒷면이 많은 사람인만큼 타인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하고 타인의 진심을 믿지 못한다.


***이제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된 내용이 나옵니다. 스릴러 장르인 이 영화를 좀 더 재미있게 감상하고 싶으시다면, 다음 단락은 스킵해 주세요.



어느 날 환자를 이송하던 중 앙헬은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의 장애인이 된다. 애인인 바네는 변함없이 앙헬을 사랑하지만, 앙헬은 바네를 의심한다. 바네가 변심할까 두려운 앙헬은 몰래 바네의 폰에 스파이 웨어를 깔아 그녀를 감시한다. 선을 넘는 앙헬의 의심에 지쳐가는 바네의 마음을 알게 된 앙헬은 바네가 떠나지 않게 하려고 가식적으로 바네에게 잘해준다. 앙헬이 자기를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바네는 앙헬을 떠나게 된다. 공교롭게도 그녀는 앙헬이 사고를 당할 때 구급차를 운전했던 앙헬의 친구와 사귀게 되고 그의 아이까지 갖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앙헬은 복수를 결심하고 바네를 집으로 유인한다. 앙헬은 바네를 진정제로 기절시켜 결박하고 마취제를 사용해서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그렇게 바네를 납치한 것을 감추기 위해 이웃도 죽이고, 바네의 애인인 옛 친구도 죽인다. 앙헬이 잠시 나간 사이 바네는 숨긴 손톱깎이로 결박을 겨우 풀고 앙헬의 집을 탈출하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앙헬에게 발각된다. 격렬한 몸싸움 끝에 앙헬은 계단 난간에서 일층으로 떨어진다. 전신 불구가 되어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앙헬에게 "이제 내가 너를 돌봐줄 거야."라고 말하며 휠체어를 밀고 가는 바네의 뒷모습이 멀어지며 영화가 끝난다.



러닝타임 내내 앙헬이 행복해 보이는 장면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그에게는 바네를 믿고 방심할 여유가 없었다. 타인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해서 사랑받지 못한 건지, 사랑받지 못할까 봐 방어를 하느라고 타인을 이해할 여유가 없는 건지. 뭐가 먼저인지는 알 수 없다. 공감하지 못하는 마음은 사랑을 모르고, 의심하는 마음은 사랑할 여유가 없다. 앙헬에게 사랑은 바네를 결박해서라도 자기 곁에 억지로 두는 것이다. 마취제 때문에 다리를 쓸 수 없어 다리를 끌면서 화장실에 가는 바네를 '너도 한 번 내 심정이 어떤지 느껴봐.'라는 눈으로 지켜보던 앙헬의 얼굴은 섬뜩했다. 그리고 불쌍했다.


어릴 때 우리 집에 낮에만 가끔 놀러 오던 엄마 친구 윤희 이모는 늘 불안한 표정이었다. 이모는 남편의 의처증을 사랑으로 오해하고 결혼했다. 남편 때문에 이모는 거의 집 밖에 나가지 못했고, 나가더라도 귀가가 늦어지면 근거 없는 추궁과 손찌검에 시달려야 했다. 이모의 남편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 사람도 앙헬처럼  어둡고 불안한 얼굴로 세상을 대했을 것이다. 앙헬이 바네의 마음을 가질 수 없었던 것처럼, 이모의 남편도 결국 이모에게 이혼을 당했다. 이모는 이혼 후 편하게 잘 살고 계신다. 아마 바네도 앙헬을 버리고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언젠가 애인에게 이런 편지를 쓴 적이 있었다.

'넌 내가 내 마음을 마음껏 부려 놓을 수 있는 장소 같은 사람이야.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너만 만나면 나는 폭신한 기분으로 쉴 수 있어.'


모래가 잔뜩 묻은 통통한 아이의 몸을 엄마가 다정하게 씻어 준다. 그 일련의 순서는 작은 코를 잡은 엄마가 "흥"하면 아이가 따라서 "흥"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엄마의 자장자장 소리를 타고 아이는 온몸에 나른하게 힘이 빠지도록 꿈을 꾼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실눈을 뜨면 머리맡에 엄마가 있다. 포근하고 따스한 엄마 냄새가 난다. 작은 손을 뻗어서 엄마 찌찌를 쪼물쪼물 만지면서 엄마 무릎을 베고 다시 눈을 감는다. 엄마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아이를 간지럽힌다. 아이가 신이 나서 “히히히히히”하며 자지러지게 웃는다.



아이는 더 이상 엄마의 옷장을 열어보지 않는다.

나는 아이처럼 마음을 놓고 싶어 엄마가 아닌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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