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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Feb 11. 2021

나를 정확히 읽는 사람

이방의 언어로 가득한 세상에서




예전에 그 사람이랑 아테네에 있었을 때, 몇 주 동안 그 사람이 사라진 적이 있었거든? 그래서 그 사람이 다시 올 때까지 기다릴 작정으로 밤만 되면 근처 노천 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셨어. 그러다가 뚱뚱하고 시끄러운 어떤 히피 아줌마랑  친해져서 밤새도록 웃고 떠들고 마시고 했었는데, 그 여자는 진짜 심각한 수다쟁이였어. 시끄러워서 그만 좀  떠들면 안 되겠냐는 뜻으로 당신은 어쩜 그리 말이 많냐고 하면, 조용히 할 생각은 않고 자기가 어릴 적 살았던 나라에 대해 또 말을 막 많이 하기 시작하는 거야.

그 여자가 태어난 곳은 나라라고 하기 애매할 만큼 작았대. 인구가 천 명도 안 되는 오지. 전쟁이 나도 모르고, 지도에도 없는 곳이래. 사는 방식이 인디언처럼 원시적이라는데, 내가 듣기엔 인디언보다 더 심했어.  인간이라기보단 짐승에 가까운, '정글북'에 나오는 '모글리'처럼. 어떤 느낌인지 알겠지? 그 여자한테서도 그런 야생 동물 같은 느낌이 좀 났는데, 그게 친근하게 느껴져서 처음에 내가 맥주를 사 줬어. 근데 그 나라 사람들은 모두 각자 개인어를 쓴대. 그러니까 사람들마다 쓰는 말이 다 다르다는 거야. 그 개인어라는 게 영어랑 비교하면 엄청 수준이 낮대. 한 사람의 개인어를 모두 다 배우는 데 몇 주면 가뿐할 거라나? 근데 그게 영어까지 배운 그 여자한텐 가뿐해졌겠지만 미개한 그 나라 사람들한텐 꽤나 어려운 일인데다가 개인어 하나를 배워봤자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고작 한 사람 늘어나는 것일 뿐이니까  그걸 시도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대. 그래서 그 나라 사람들은 대화를 제대로 할 수가 없어서 바디랭귀지나 감탄사 같은 걸로 최소한의 소통만을 하고 산대. 그래도 먹고 싸고 새끼 낳아 기르고 하는 덴 아무 문제가 없대. 짐승들처럼. 근데 마냥 짐승 같다고 할 수만은 없는 게, 사람들이 그렇게 혼잣말을 많이 한대. 아무도 못 알아듣는 혼잣말을 각자 하고 있는 걸 상상해 봐. 웃기지 않아?

그 나라에선 사냥을 잘하거나 남이 사냥한 걸 잘 뺏을 수 있는 사람이 부유하게 살았는데, 그런 부유한 사람들은 대부분 번역가를 고용한대. 그 번역가를 가리키는 이상한 말이 있었는데  잘 기억이 안 나. 번역가들은 부유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랑 대화할 수 있게 개인어를 번역해 줬대. 근데 진짜 웃긴 게 뭔지 알아? 번역가라는 사람들이 제대로 개인어를 번역한 건지, 그냥 자기 마음대로 말한 건지, 그걸 알 수가 없다는 거야. 그 번역가들이랑 부유한 사람들은 서로 제대로 말이 통하긴 한 거냐고 내가 어이없어하며 물으니까, 자기도 그게 의심스럽다는 거야. 어쨌든 그 나라에선 용맹하고 영리한 것과 함께 대화 가능한 상대가 많다는 것도 부의 상징이었대. 많은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하고, 다들 부러워했대. 그 나라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외로웠대.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아도 눈빛만 보고도 각자 고독하다는 건 서로 알 수 있었대. 근데 외롭다는 말이 또 각자 다르니까 외롭다고 말해 봐야 아무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대. 이 말을 할 때 그 여자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어. 외로운 짐승처럼 눈물이 고인 커다란 눈을 꿈벅거렸지. 세상에 그렇게 쓸쓸한 일이 또 있을까. 그 여자는 외롭다고 말해봐야 아무도 못 알아듣는 그 나라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어.

근데 부자가 아니라도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주 드물게 있었대. 그런 사람들은 우연히 개인어가 비슷해서 그리 많지 않은 문장이나마 서로 주고받을 수 있다는 거야. 그렇게 대화가 가능한 상대를 만난 사람들은 어김없이 서로 사랑에 빠졌대. 그 여자는 이 부분에 대해 말할 때, 성교(sex) 말고 사랑(love)이라고 했어. 그 여자도 열일곱 살에 그런 사랑에 빠졌대. 자기랑 비슷한 말을 같은 의미로 하는 사람을 찾았던 거지. 그 여자는 평생 그 남자랑만 살려고 했는데, 그 남자는 야망이 컸대. 더 많은 사람들이랑 대화할 수 있는 세상이 있다는 걸 어디서 듣고 와서는 여자를 두고 그 나라를 떠나 버렸대. 그래서 그 여자도 그 남자를 찾아 그 나라를 떠나 왔다는 거야. 떠돌며 살다가 영어를 배우게 됐는데, 사람들이 자기 말을 모두 알아듣는 게 너무 좋아서 그때부터 말을 많이 하기 시작했대.

난 그 이야기를 다 듣고, 그런 말도 안 되는 나라가 세상에 어딨냐고 거짓말 마라고 했어. 그랬더니 사실은 자기 전생 이야기라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거짓말인지 모를 이상한 이야기들을 잔뜩 늘어놨어. 같은 언어를 써도 말이 잘 안 통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그 여자는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았어. 당신은 너무 시끄럽다고 말한 뒤 그다음부턴 그 여자 말을 듣는 척만 했어. 그 여자의 투박하고 검은 얼굴, 인도 사람처럼 발음이 어색한 영어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두꺼운 입술을 쳐다보면서 나는 그 밤 내내 네 생각만 했어.

만약에 그런 가혹한 나라에 살아야 한다면, 나는 너한테 돌아갈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었어. 나를 두고 종종 다른 곳으로 떠나곤 했던 비밀이 많은 그 사람과 나. 그리고 너. 우리가 만약 그 여자의 나라에 살았다면, 나는 누구와 사랑에 빠졌을까. 만약 이 소설이 세상에 나온다면 그래서 네가 이 페이지를 읽게 된다면 너는 분명 내가 하는 말의 뜻을 알 거야. 여기까지 읽으면 네가 먼저 나를 찾겠지.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완성되지 않은 내 소설 ‘솔직한 거짓말’ 중



세상은 이방의  언어로 가득했다.







몇 해 전 애인과 산토리니 이아마을에서 석양을 본 적이 있었다. 키가 작아 까치발을 해도 눈 앞엔 모르는 사람들의 등만 빼곡히 보였다. 내 손목을 꽉 잡은 그는 수많은 등을 뚫고 눈 앞에 노을이 보이는 곳으로 나를 끌고 들어가, 양 손으로 내 어깨를 잡아 자기 앞에 세우고는 뒤에서 안아 주었다. 사람들이 빽빽한 가운데 부부로 보이는 중년의 남녀가 앉아  바이올린과 기타를 연주하고 있었다. 매일 노을이 질 때마다 그곳에 나와 함께 연주를 한다고 했다. 노을과 중년 부부 사이에서 부드럽게 흐르던 바이올린 소리. 내 어깨를 감싸고 있던 따뜻한 손의 감촉과 사방에서 들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들. 낯선 사람과 낯선 말이 가득한 곳이라도, 이 사람과 매일 이런 예쁜 노을을 볼 수 있다면 내게 그보다 더 좋은 삶은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 보다 더 오래전, 나는 친절하지만 나의 말을 잘 못 알아듣는 남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만 걷고 어디에라도 걸터앉고 싶은 마음이었을 때 만나서인지 우리는 쉽게 가까워졌다. 손길과 말투가 다정했고, 어떻게든 나의 이야기에 적절히 반응해 주려 애썼던 그는 상냥한 사람이었다. 그런 상냥함과는 별개로, 그는 자주 내 언어를 오역했다. 웃기려고 한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내 토라짐에서 애정을 읽지 못하고 이별이 올까만 두려워했다. 결혼 적령기라는 우습고 멍청한 상황이 얼마간 우리를 억지로 붙여 놓았다. 나는 평생 서로를 알아듣지 못해서 쓸쓸할 삶이 두려웠다. 친절한 그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죄스러웠지만, 그대로 가다간 더 큰 상처를 주고받을 것이 뻔했다. 나는 용기를 내었다.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인 줄 알고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잘못 탄 사람이 문이 닫히기 직전에 그곳에서 내리 듯, 가까스로 나는 그 사람과 헤어졌다. 그 사람이 자기와 닮은 상냥한 여자를 만나 행복하기를 바랐다.


그 후, 나는 지금의 그와 다시 만났다. 그와 연락이 닿고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 혼자 경주에 갈 거라고 그에게 흘려 말했었다. 낮은 집들이 많아 편안한 경주를 우리는 둘 다 좋아했었다. 그는 출발 직전에 집 앞에 나타나서는 기어이 내 차에 탔다. 변덕이었는지 사실 같이 가고 싶었던 건지, 나는 비집고 들어온 그에게 운전을 시켰다. 조수석에 옮겨 앉은 나는 소설 속 히피 여자처럼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이 년을 참고 가슴에 쌓아 놓은 모국어를 쏟아내는 기분이었다. 겨울의 찬 기운이 거의 남지 않은 따뜻한 봄볕이 차창으로 가득 들어왔다. 그는 봄볕 같은 눈으로 내 긴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었다. 양쪽으로 받는 볕은 더없이 따뜻했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며 말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던 그 해 봄의 시작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우리는 같이 경주에 도착했고,  그 이듬해에 산토리니에서 같이 노을을 봤다.




*표지 이미지 출처: 영화 ‘노트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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