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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May 09. 2021

이거 누구 목줄이야? 5

완결편


https://brunch.co.kr/@redangel619/262





5.


"6주입니다. 축하드려요."


인상이 좋은 여의사는 마치 가족의 임신을 축하하는 것마냥 온화하게 웃으며 그 동안의 몸의 변화에 대해 묻고,  앞으로 주의해야 할 것들에 대해 꼼꼼하게 일러준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나는 의사의 말과 간호사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엽산, 입덧, 체중, 조심, 같은 단어들이 섞여 귀에 웅웅거린다.


'일단 앉아서 생각을 좀 하자.' 싶어 병원 맞은 편 카페로 왔다. 무의식적으로 주문한 아메리카노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산모 수첩을 본다.


산모 이름: 한정원(만 33세)
아기 이름(태명):


한정원.


"우리 정원이 이름은 넓은 꽃밭이라는 뜻이야. 꽃처럼 예쁜 우리 정원이는 꽃밭에 예쁜 꽃들을 키우는 것처럼 많이 많이 사랑하고 많이 많이 사랑받게 될 거야. "


아빠가 지어준 이름이다. 내가 말을 알아 듣기 시작할 무렵부터 아빠는, 키를 낮추고 쪼그려 앉아 내 볼에 자기 볼을 부비며 자주 내 이름의 뜻을 말해주곤 했다. 사랑이 뭐냐고 물으면, 아빠는 볼에 뽀뽀를 하며


"아빠가 우리 정원이를 이렇게 예뻐하는 게 사랑이야."


라고 말해줬었다. 돌아가신 아빠가 지금 내 마음 속에 키우고 있는 것들을 보면 뭐라고 하실까.


근처에 아파트 단지와 공원이 있어서인지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내 또래 여자들이 유난히 많이 보인다. 그 여자들을 보며, 일 이 년 후의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아이에게 어떤 이름을 지어주면 좋을까. 아빠의 꽃밭에서 너무 멀어져 버린 나처럼, 아이도 이름을 짓는 나의 기대로부터 멀어져 갈까. 기대와 기대로부터 멀어지는 것. 그것의 끝없는 반복.


맞은 편 테이블 옆, 유모차에 앉은 노란 옷을 입은 아기가 나를 보며 방긋 웃는다. 하얗고 예쁘다. 나도 방긋 웃어주며 애써 쓸쓸한 생각들을 떨쳐 본다.






집에 오니, 순돌이가 나를 반겨 준다.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는 유럽 여행 중이시다. 신혼여행으로 갔던 산토리니가 너무 좋았다며 남편이 시어머니 생신 기념으로 보내준 여행이다. 시어머니는 예쁜 여행지 사진을 계속 내 카톡으로 보내신다.


"정원아, 여기 바다가 너무 이쁘다. 어쩜 이리 파랗니?! 성당도 너무 이쁘고. 사진 좀 봐. "

"진짜 이쁘죠?! 풍경 사진만 보내지 말고, 어머니 사진도 좀 보내 보세요~"


시어머니가 보낸 사진에는 산토리니 이아마을의 하얀 집들로 빼곡한 절벽과 그 아래 파란 바다가 보인다. 그림처럼 색감이 선명하고 예쁘다.


남편과 신혼 여행을 갔을 때, 차를 빌려 산토리니 섬을 한바퀴 돌았었다.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어느 마을의 구릉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본 적이 있었다. 가까운 건물의 옥상이 보였다. 식당인 것 같았다. 소녀같은 실루엣의 여자가 저녁 타임을 준비하고 있었다. 들리지는 않았지만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것처럼 동작에 리듬이 있어 보였다. 그녀는 천천히, 다정한 느낌이 드는 빨간 체크 무늬의 식탁보를 테이블마다 깔고 있었다. 일을 하고 있는 그녀가, 여행을 하고 있는 나보다 가벼운 마음인 것 같아,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이후, 그 장면이 이따금씩 떠오를 때마다 나는 우울해졌다. 누가 여행을 하고 있고, 누가 일을 하고 있나. 즐기는 사람은 누구이고, 복무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ㅎㅎ 우리 순돌이는 잘 있지? "

"순돌이 잘 있어요. 좀 있다 산책 데려 가려구요. 걱정 말고 예쁜 거 만끽하세요, 어머니. 맛있는 것도 많이 드시구요. ^^"


순돌이는 중성화 수술 이후에도 잘 지낸다. 사료도 간식도 잘 먹고, 이제 제법 훈련이 되어 배변도 정해진 장소에 한다.


"순돌아, 간식 줄까?"


단번에 내 말을 알아들은 순돌이는 꼬리를 흔들며 내게 다가 온다. 나는 냉장고에서 사슴고기 간식을 꺼내 손으로 조그맣게 자른다.


"순돌아, 앉아. 기다려."


순돌이는 앉아서 간식이 든 내 손만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우리 순돌이,,, 먹어!!"


몇 번의 기다려와 먹어가 반복되는 동안, 순돌이는 행복해 보였다. 순돌이를 안고 쇼파에 앉아 승우에게 카톡을 보낸다.



"지금 뭐해? 순돌이 산책시킬 건데, 물빛 공원으로 나올래?"

"오늘 금요일인데, 집으로 안 오구?"

"응, 일단 밖에서 보자."

"ㅇㅋ 지금 순심이도 여기 와 있어. 데리고 나갈게."





금요일 오후, 물빛 공원은 한적하다. 저 멀리 순심이와 승우가 보인다. 순돌이도 그걸 봤는지 목줄을 당기며 그쪽으로 뛰어간다.


"사람이 하나도 없네. 목줄 좀 풀어 놓을까?"

"그래, 그럼 되겠다."


목줄을 풀어 놓으니, 두 강아지는 서로 살짝 살짝 깨물며 뒹굴고 논다. 아주 신이 났다.


"며칠 동안 왜 그렇게 연락이 없어?"

"계속 남편이랑 같이 있고, 좀 바빴어. 근데, 너 향수 뿌렸어?"

"향수 냄새 많이 나? 얼마 전에 와이프 왔었는데, 내 옷 빨아서 정리한다고 넣으면서 향수를 잔뜩 뿌려놨어. 내 옷장에서 와이프 없는 것 같은 남자 냄새가 난다나 뭐라나."

"그래? 난 향수 안 뿌린 니 냄새가 더 좋은데. 근데 이 향수는 향이 꽤 괜찮은 편인데? 비누 냄새랑 비슷한데, 잘 맡아 보면 다르네."


순돌이가 앞에서 뛰어가고 그 뒤를 순심이가 쫓는다. 우리는 한참을 말 없이 순돌이와 순심이만 보고 있다.




오랜 정적을 깨고, 내가 먼저 입을 뗀다.


"나 임신했어. 우리 그만해야 될 것 같아."

"임신?......"


승우의 하얀 얼굴이 귀까지 붉어진다.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문다. 그의 다문 입이 아쉬우면서도, 다행이라 여긴다. 이렇게 이별까지 흔쾌한 것이 승우의 장점고, 우리 관계의 매력일 것이다. 순심이와 순돌이는 신이    시간이 넘도록 뛰고 놀았다.  동안 우리는 강아지들 얘기만 했다. 그리고 나는 레몬티를, 승우는 커피를  잔씩 마셨다.






순돌이를 안고 현관에 들어서자, 남편의 구두가 보인다.


"당신, 일찍 왔네?"

"응, 좀 빨리 마쳤어. 산책 시키고 온 거야?"

"으응. 나가서 맛있는 거 먹을까?"

"그래. 순돌이 발부터 씻겨야겠다."


바로 욕실로 들어가 순돌이를 세면대에 앉혀 발을 깨끗하게 씻긴다. 까만 발 사이사이 낀 흙을 씻겨내고, 하얀  털에 묻은 먼지도 씻겨낸다. 깨끗하게 씻겨진 귀여운 발을 수건으로 닦고, 드라이기로 말려준다.


"여보, 이거 누구 목줄이야? 이 별 모양은 없었잖아. 이거 우리 꺼 아닌데?"


순간, 순돌이 목줄과 비슷하게 생긴 순심이의 목줄이 떠올랐다. 순돌이와 순심이의 목줄은 맨 끝에 하트 모양과 별 모양만 다르고 색깔과 무늬가 거의 똑같았다. 아까 공원에서 풀어놨다가 다시 맬 때 바뀐 것 같다. 매사에 예민하고 꼼꼼한 남편은 그걸 또 알아본 것이다.


"이거 봐. 여기 별모양이 아니고 하트 모양이었잖아."

"그랬어? 아 맞다! 이거 우리 목줄 맞아! 얼마 전에 산책나갔다가 순돌이 풀어놨을 때 목줄을 잃어버려서 내가 근처 샵에서 새로 하나 샀어. 난 똑같은 건 줄 알고 샀는데, 모양이 달랐네?! 당신은 어떻게 그런 것까지 기억을 해?"


겨우 거짓말로 둘러대고, 남편의 표정을 미처 살피지 못한 채 나는 분주한 척 안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가방 속 산모 수첩에 끼워 둔 초음파 사진을 꺼내들고 다시 거실로 나간다.


"여보, 오늘 나 산부인과 갔었는데,,,,,, 임신이래."

"정말?!"


남편은 초음파 사진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며, 드라마에 나오는 남편처럼 행복하게 웃는다.


                                                                


                                                               -끝-




https://youtu.be/iyATMcIlQ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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