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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Apr 25. 2021

차가 없어 자유로운 섬, 이드라(Hydra)




조르바: 기분 내키면 (산투르를) 치겠지요. 내 말 듣고 있소? 마음 내키면 말이오. 당신이 바라는 만큼 일해 주겠소. 거기 가면 나는 당신 사람이니까. 하지만 산투르 말인데, 그건 달라요. 산투르는 짐승이오. 짐승에겐 자유가 있어야 해요. 제임베키코(소아시아 해안 지방에 거주하는 제임벡족의 춤), 하사피코(백정의 춤), 펜토잘리(크레타 전사의 춤)도 출 수 있소. 그러나 처음부터 분명히 말해 놓겠는데, 마음이 내켜야 해요. 분명히 해둡시다. 나한테 윽박지르면 그때는 끝장이에요.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나: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조르바: 자유라는 거지!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조르바가  말하는 '산투르'와 '짐승'은 조르바 안에 꿈틀대는 '자유로운 인간'의 은유다. 그는 인간을, 자기 자신을 '자유'라고 정의한다.


지중해를 닮은 파란색 양장본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이 구절을 읽던 순간의 전율을 잊을 수 없다. 이 구절을 읽고 맞이한 여름, 조르바는 나를 그리스에 데려다 놓았다.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중 어디를 갈까?" 하는 애인의 물음에 나는 바로 선택지에도 없는 "그리스!"를 외쳤다.




2016년 8월.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

우리는 '이드라 섬'에 있었다.


그 무렵,

나는 나를 오랫동안 억압하던 어울리지 않는 옷을 벗어 던지고 한껏 자유로워져 있었고

우리는 다시 사랑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껏 들떠 있었다.

땀이 배도록 손을 꼬옥 잡고 사랑스러운 그 섬을 함께 걸었다.



처음봤던  코발트 블루의 바다

그 바다에서 불어오던 하늘색 바람

그 바람에서 느껴지던 시원한 자유의 냄새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던 하얀 배들

바다와 그림처럼 어울리던 이방인들의 얼굴


나는 그곳에서 내 안에 꿈틀대는 산투르를 꺼냈다.

흥청거리는 마음이 산투르 소리에 맞춰 춤을 췄다.



그곳엔 차가 다니지 않았다.

대신 골목골목 귀여운 동키들이 천천히 걸어다녔다.

찻길이 정해져 있지 않은 곳에서 우리는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이후 나는 더 천진하고 호기로운 인간이 되었다.

나는 그때의 흥청거리던 산투르를 다시 꺼내어

신산한 일상에 지쳐 탁해진 눈을 닦는다.

맑아진 눈에는 내게 '자유'를 알려주었던 그날의 바다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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