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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May 12. 2021

엄마한텐 '효도'하고 싶지 않아





엄마는 뭐든 잘 기르는 사람이었다.


어릴 적 살던 이층집은 긴 베란다를 두르고 있었다. 거기에 엄마는 스무 가지가 넘는 식물을 길렀다. 동백, 관음죽, 계발, 벤자민, 돈나무, 군자란......식물에 관심이 없던 도시 꼬마였던지라, 그것들의 세세한 모습은 기억나지 않는다. 투명한 볕이 예쁘게 들어오는 베란다는 늘 먼지 하나 없이 말끔했고, 엄마의 정성을 듬뿍 받은 식물들은 늘 반들반들 윤이 났다.


거실에는 수족관을 두고 금붕어를 길렀다. 파란 수족관 안에 동글동글하고 하얀 돌들. 입을 뻐끔거리며 천천히 헤엄쳐 다니던 주황색 금붕어들의 도톰한 몸이 생각난다. 엄마는 가끔 내 손 위에 금붕어 밥을 뿌려 주었다. 자갈처럼 생긴 그것에선 비릿한 냄새가 났다. 그 냄새가 꼭 쥐포 냄새 같다고 생각하며 수족관 위로 그것을 뿌리던 기억이 난다.


아침이 되면 엄마는 우리 두 자매의 머리를 단정하게 묶어 주었다. 우리는 "한 가닥!", "두 가닥!", 또는 "디스코!" 중 한 가지를 주문하곤 했다. 그러면 엄마는 주문대로 머리를 예쁘게 묶거나 땋아주었다. 마지막엔 꼭 고무줄이 안 보이도록 동글동글한 방울이나 알록달록한 리본으로 덮어 묶어 주었다. 피죤 냄새가 포근하게 나는, 엄마가 골라 준 옷을 입고 우리 자매는 유치원에 가고 학교에 갔다.



따로 사는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본가에서 반찬을 가져온다.

"귀찮아서 또 안 물까봐(안 먹을까봐)."

라고 말하며 수박을 바로 먹을 수 있게 잘라서 통에 넣어 주고, 상추도 씻어서 팩에 담아 준다. 그렇게 가져온 음식들을 냉장고에 넣고 있노라면, 평범하디 평범한 인간인 내가 엄마에겐 얼마나 소중한가 싶어 새삼 코끝이 찡해지곤 한다.


아주 가끔 자기 자식만 소중하신, 우리 엄마가 아닌 엄마들에게 상처 받을 일이 생기곤 한다. 그럴 때, 나는 일부러라도 내가 먹을 음식을 담는 엄마의 손끝을 떠올린다. 내 머리를 땋아 주고 옷을 입혀 주던 손. 이제는 그러지는 못 해, 생선을 발라 주고 김치를 담아 주는 손. 그 손을 떠올리면 그 손에게만큼은 내가 정성스레 길러진 꽃처럼 귀한 존재라는 실감이 가슴에 박힌다. 그런 실감 때문에 나는 어느 때건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자유롭게 살지만, 아무렇게나 살지 않는 건 엄마 때문인지도 모른다.


손으로 만지며 기르던 내가 이제 엄마보다 커졌다. 그래도 엄마는 나를 매만지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제 눈으로 만지고, 입으로 다듬는다. 내가 울어 눈이 붓거나, 조그만 상처가 생기면 엄마가 제일 먼저 알아 본다.

"니 눈이 왜 그래 부었노? 울었나?"

"팔에 멍이 들었네? 와 글로(왜 그러니)?"


"오징어 무친 거 이거 미나리랑 무 봐라(먹어 봐)."

"오렌지 꺼내 물라 했제(먹으려 했지)? 엄마가 짤라 주께. 있어 봐라."

말하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내가 먹고 싶은 반찬을 내 앞에 놓아 주거나 내가 먹고 싶은 과일을 냉장고에서 꺼내곤 한다. 엄마가 되면 또 다른 감각기관이 생기는 건지, 볼 때마다 신기해 입이 쩍 벌어진다.



이렇게나 정성스레 나를 길러준 엄마이지만,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이나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에 대해  단 한번도 간섭한 적이 없다.

"우리 딸이 잘 했겠지. 나넌 믿넌다(나는 믿는다)."

"우리 딸래미가 똑똑해서 그렇다."

여느 부모가 보면 말리거나 반대했을 일을 저질렀을 때도, 엄마는 늘 내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그 선택의 결과와 무관하게 나는 단 한 사람, 엄마에게만큼은 내 삶의 모든 과정을 존중 받았다. 내 스스로 하는 선택과 그것이 만들어가는 과정, 그 순간순간이 모두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내 삶이라는 것을 나는 엄마에게서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엄마에게 존대를 하지 않는다. '존대'는 나이나 지위의 고하를 표현하기도 하지만, 관계의 친소를 내포하기도 한다. 존대가 내포하는 '멀다'는 느낌이 싫어서 나는 앞으로도 엄마에게 존대를 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그토록 가까이 매만지며 정성스레 길러 준 엄마를 조금이라도 멀게 대하하고 싶지가 않다.


그런 엄마에게 '효도'라는 걸 하고 싶지도 않다. '효도'라는 말에 담긴 '의무'나 '도리' 같은 딱딱한 '윤리'가 우리의 관계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사랑은 자발적이어야 아름답다. 나는 내가 속한 문화에 종속되지 않고, 내가 가진 사랑을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은 자유롭고 싶다. 엄마에게 부모로서의 '권위'나 '본보기' 같은 무거운 짐을 지게 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그냥 엄마가 길러 준 정성만큼 귀하고 예쁜 존재로 언제까지고 엄마 곁에 남고 싶다. 엄마가 이제는 좀 기대어 쉴 수 있는 편한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어릴 때 엄마가 해줬던 것처럼, 엄마가 병원에 가야 할 땐 꼭 같이 가 준다. 엄마가 좋아하는 시장에도 종종 같이 가 준다. 다정하게 팔장을 끼고. 철이 바뀔 때 형편이 허락하는 수준에서 엄마에게 어울리는 예쁜 옷을 직접 골라 사 준다. 엄마가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을 때(항상인 것 같긴 하지만)나  내가 보고 싶을 때 자주 엄마를 찾아 간다. 건강하고 재미있게 잘 살고 있는 밝은 얼굴을 엄마에게 자주 보여 주고 싶어서.


나는 미약하게나마 엄마에게 받은 사랑에 이런 식으로 응하고 있다. 고맙고 기쁘게도, 엄마는 내가 주는 건 뭐든 좋아한다.


지금도 본가에 가면 집 안 가득 윤이 나는 화분들이 차분히 줄을 서서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쑥쑥 크고 있다. 엄마는 기르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사람 같다. 작은 몸에서 언제까지고 사랑이 뿜어져 나올 것 같다. 무언가를 정성스레 기르고 또 기를수록 엄마는 더 예쁜 사람이 되어간다. 엄마의 웃는 얼굴은 엄마가 사랑으로 기른 것들의 '귀함'을 증명한다.


나는 아직도 엄마의 눈길로 귀하게 길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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