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비나 Jun 24. 2021

'영원한 오늘'을 믿는 오만

서른 아홉 번째 생일을 보내며





지난 토요일, 나는 서른 아홉 번째 생일을 맞았다. 잔뜩 세워 놓았던 계획과는 달리 특별히 한 것 없이 지나가 버린 여행지에서의 아쉬운 반나절처럼, 그렇게 반생이 후다닥 지나가 버린 느낌이다.


생일을 맞은 주는 여느 해와 비슷했다. 하루 약속을 잡아 가족들과 점심을 같이 먹었다. 동생이 선물로 반지를 사 줬다. 저녁 땐 본가에 가서 미역국을 비롯한 엄마표 반찬으로 차려진 생일밥을 먹었다. 엄마가 싸 주는 반찬과 과일을 양 손에 무겁게 들고 집으로 왔다. 또 하루 약속을 잡아 애인과 시간을 보냈다. 좋아하는 생선회에 오랜만에 소주도 한 잔 먹고 케잌을 자르고 사진을 찍고 갖고 싶던 목걸이를 선물 받았다. 생일 당일엔, 몇몇 친구들과 제자들의 축하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 생일은 좀 이상했다. 여느 해처럼 반복되는 그런 일들. 가족들의 축하를 받고, 엄마가 미역국을 끓여주고, 애인이 노래를 불러 주고, 친구가 기프티콘을 보내 주고. 생일이 되면 늘 겪던 똑같이 반복되는 일들. 그래서 늘 당연했던 그런 일들이 하나하나 좀 뭉클하게 느껴지면서, 엄마가 싸 준 반찬을 가지고 집으로 오던 밤, 혼자 운전을 하고 있는데 눈물이 났다.


이상하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 달 전 나는 가족을 잃었다. 13년을 함께 한 우리 강아지 순돌이가 몇 달을 앓다가 예쁜 댕댕이 별로 떠났다.  늘 곁에 있으며 일상을 공유하던 존재와 영원히 이별하는 일을 겪은 것이다. 본가에 가면 늘 꼬리를 흔들며 맞아주던 순돌이. 장난을 치며 간식을 주고, 신이 나서 산책을 했던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침대에 누으면 따라 올라와 내 등에 등을 대고 눕던 순돌이의 감촉. 벌러덩 누운 순돌이의 배를 쓰다듬을 때 느껴지던 온기. 귀가 쫑긋해져서 던지는 공을 잡으러 뛰어 가던 건강하고 날렵한 몸. 총기로 가득하던 동그란 눈. 쓰는 언어가 달라도 사랑을 나누는 데는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게 해 줬던 그 귀여운 존재와의 달달한 하루하루.


나는 오만하게도, 그 모든 것들이 영원히 내 곁에서 지속될 거라 믿고 있었다.


영원히 내 곁에 있을 것 같던 가족이 다른 세상으로 떠났을 때. 멀쩡하던 몸이 아파  일상을 지속하기 힘들 만큼 고통 받을 때. 사랑하던 이가 갑작스레 이별을 고하며 다시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을 때.


그런 순간이 와야만 비로소 하찮은 듯 지나가는 오늘이, 당연한 배경처럼 내 곁에 있는 존재들이 얼마나 사무치게 소중한지를 알게 된다.  



엄마는 늘 반찬을 싸 주며 어떻게 보관하고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잔소리를 한다. 동생과의 카톡 대화방은 별것 아닌 푸념과 쓸데없는 농담으로 하루종일 시끄럽다. 저녁을 함께 먹는 애인은 젓가락질을 잘 못하는 내 입에 습관처럼 반찬을 넣어 준다.


오늘에 속한 이 모든 당연한 것들은 결코 영원할 수 없다. 내일 또한 그러하리라 여기며 흘려 보낸 오늘과 오늘 내 곁에 함께 한 존재들을, 그것을 잃게 된 훗날 나는 얼마나 그리워하게 될까.


영원하지 않을 이 모든 소중한 존재들이 오늘도 내 곁에 온전히 자리하고 있음에 진심으로 기뻐하며, 나는 서른 아홉 살의 첫 날을 감사히 맞았다.


그리고 이전과는 좀 다른 소원을 빌었다.





작가의 이전글 뽀뽀 한 번 못 해줘서 미안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