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아홉 번째 생일을 보내며
지난 토요일, 나는 서른 아홉 번째 생일을 맞았다. 잔뜩 세워 놓았던 계획과는 달리 특별히 한 것 없이 지나가 버린 여행지에서의 아쉬운 반나절처럼, 그렇게 반생이 후다닥 지나가 버린 느낌이다.
생일을 맞은 주는 여느 해와 비슷했다. 하루 약속을 잡아 가족들과 점심을 같이 먹었다. 동생이 선물로 반지를 사 줬다. 저녁 땐 본가에 가서 미역국을 비롯한 엄마표 반찬으로 차려진 생일밥을 먹었다. 엄마가 싸 주는 반찬과 과일을 양 손에 무겁게 들고 집으로 왔다. 또 하루 약속을 잡아 애인과 시간을 보냈다. 좋아하는 생선회에 오랜만에 소주도 한 잔 먹고 케잌을 자르고 사진을 찍고 갖고 싶던 목걸이를 선물 받았다. 생일 당일엔, 몇몇 친구들과 제자들의 축하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 생일은 좀 이상했다. 여느 해처럼 반복되는 그런 일들. 가족들의 축하를 받고, 엄마가 미역국을 끓여주고, 애인이 노래를 불러 주고, 친구가 기프티콘을 보내 주고. 생일이 되면 늘 겪던 똑같이 반복되는 일들. 그래서 늘 당연했던 그런 일들이 하나하나 좀 뭉클하게 느껴지면서, 엄마가 싸 준 반찬을 가지고 집으로 오던 밤, 혼자 운전을 하고 있는데 눈물이 났다.
이상하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 달 전 나는 가족을 잃었다. 13년을 함께 한 우리 강아지 순돌이가 몇 달을 앓다가 예쁜 댕댕이 별로 떠났다. 늘 곁에 있으며 일상을 공유하던 존재와 영원히 이별하는 일을 겪은 것이다. 본가에 가면 늘 꼬리를 흔들며 맞아주던 순돌이. 장난을 치며 간식을 주고, 신이 나서 산책을 했던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침대에 누으면 따라 올라와 내 등에 등을 대고 눕던 순돌이의 감촉. 벌러덩 누운 순돌이의 배를 쓰다듬을 때 느껴지던 온기. 귀가 쫑긋해져서 던지는 공을 잡으러 뛰어 가던 건강하고 날렵한 몸. 총기로 가득하던 동그란 눈. 쓰는 언어가 달라도 사랑을 나누는 데는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게 해 줬던 그 귀여운 존재와의 달달한 하루하루.
나는 오만하게도, 그 모든 것들이 영원히 내 곁에서 지속될 거라 믿고 있었다.
영원히 내 곁에 있을 것 같던 가족이 다른 세상으로 떠났을 때. 멀쩡하던 몸이 아파 일상을 지속하기 힘들 만큼 고통 받을 때. 사랑하던 이가 갑작스레 이별을 고하며 다시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을 때.
그런 순간이 와야만 비로소 하찮은 듯 지나가는 오늘이, 당연한 배경처럼 내 곁에 있는 존재들이 얼마나 사무치게 소중한지를 알게 된다.
엄마는 늘 반찬을 싸 주며 어떻게 보관하고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잔소리를 한다. 동생과의 카톡 대화방은 별것 아닌 푸념과 쓸데없는 농담으로 하루종일 시끄럽다. 저녁을 함께 먹는 애인은 젓가락질을 잘 못하는 내 입에 습관처럼 반찬을 넣어 준다.
오늘에 속한 이 모든 당연한 것들은 결코 영원할 수 없다. 내일 또한 그러하리라 여기며 흘려 보낸 오늘과 오늘 내 곁에 함께 한 존재들을, 그것을 잃게 된 훗날 나는 얼마나 그리워하게 될까.
영원하지 않을 이 모든 소중한 존재들이 오늘도 내 곁에 온전히 자리하고 있음에 진심으로 기뻐하며, 나는 서른 아홉 살의 첫 날을 감사히 맞았다.
그리고 이전과는 좀 다른 소원을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