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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Jul 11. 2021

라떼와 타르트에 대한 수필 3

사라체노


https://brunch.co.kr/@redangel619/299







여행



그는 나보다 나이가 세 살 더 많았고, 베이커리 카페를 운영하는 외삼촌 밑에서 제빵을 배우는 중이었다. 내게 주었던 빵은 모두 그가 만든 거였다. 제과제빵  필기 시험을 준비할 때 도서관에 왔다가 나를 본 것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그는 오래 나를 봐왔고, 오래 망설인 것 같았다. 이후에도 조금씩 구워지는 빵에서 달콤한 냄새가 퍼지듯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나는 그런 그의 속도가 전혀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을 알아가고 좋아하게 되는 속도에 있어서 우리는 비슷한 부류였다.


날씨 좋은 날의 라떼처럼 내게 부드럽고 따뜻한 그였지만, 그가 그런 사람이기만 했다면 나는 그를 깊이 사랑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내가 잃어왔던 밝음을 그를 통해 찾는 것이 기뻤다. 하지만 오랫동안 내가 쌓아왔던 어둠도 결이 비슷한 면에 부벼 위로받고 싶었다. 그는 가족에 대한 얘기를 나처럼 꺼려했다.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짐작하고 그것에 대해 서로 조심스러웠다. 꺼내놓기 두렵지만 털어놓고 싶지 않은 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y섬으로 함께 여행을 갔던 첫날, 우리는 우리답지 않게 과음했다. 그리고 각자를 서로에게 털어 놓았다. 나는 비로소 나를 괴롭히던 나의 불행으로부터 죄책감 없이 놓여난 느낌이었다. 동시에 내가 원하는 방식과 속도로 삶을 함께 꾸려나갈 수 있는 상대를 찾은 느낌이었다. 차라리 혼자가 되는 것이 좋을 만큼 어두운 동반에서 벗어나, 다시는 혼자가 되는 것을 생각하기 싫을 만큼 따뜻한 동반이 시작된 기분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매일같이 엄마를 때렸다고 했다. 어느 날 아버지보다 훨씬 커져버린 그는, 아버지를 참지 못하고 때려 눕혀 버렸다고 했다. 그렇게 하고 나서야 아버지에게 당하는 엄마를 두려움 때문에 모른 척했던 어린 날의 자신을 용서할 수 있었다고. 이후  학교에도 가지 않고 오랫동안 집을 나와 거리에서 지냈다고 했다. 지금은 엄마와만 연락하고 지낸다고. 엄마와 자신을 그렇게 만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지금은 흐려졌을 뿐, 아직도 용서하진 못하겠다고 했다.


나와 만나고 난 후에야, 그런 기억을 등 뒤에 부려둔 채 앞을 향할 수 있게 되었다고. 자기 기억에서 어두운 과거를 최대한 도려내고 그 자리에 따뜻한 새 것들을 가득 채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우리는 어느덧 닮은 욕심을 키우고 있었다.


누가 봐도 그래 보이듯 나는 남자를 안거나 남자에게 안긴 경험이 별로 없었다. 지금껏 내게 잠깐이라도 다가왔던 남자들은 나를 두껍게 싸고 있는 가슬가슬한 껍데기에 호기심을 드러냈을 뿐이었다. 그 안에 자신이 원하는 무엇이 있나 기웃거리다 금새 실망하고 떠나곤 했었다. 그는 그 껍데기 안에 있는 연한 속살을 꺼내어 주었다. 그 날 밤 나는 어떻게 하는 건지 방법도 모르고서, 온몸을 다 해 그에게 안겼다. 그리고 내 깊은 곳까지 들어온 그를 온몸을 다해 안아 주었다.


불행하게 살아온 사람들은 그 불행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어쩌다 운 좋게 사랑을 발견하더라도 지난 불행을 떨치지 못하고 그 사랑을 망가뜨릴 거라고. 불행을 제대로 연습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오해한다.


불행을 잘 연습해 온 우리.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어 그 방법을 조용하고 성실하게 찾아온 우리는 오히려 그 불행 때문에 사랑을 지켜내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에게 드리운 그늘을 언제나 존중했고, 그것이 조금씩 사라지는 과정을 끈기있게 기다렸다. 속도가 비슷했으므로 미안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빚 없이 끈끈해졌다.






균열


알고보니 거울처럼 닮은 우리였지만, 모든 것이 평화로이 흘러가지는 않았다.


"그렇게 소리지르지마! 나는 화가 안 나서 가만히 있는 게 아냐. 그런 식으로 무작정 화부터 내 버리고 후회하는 거 이제 그만하면 안 돼?"


그는 가끔 욱하는 성미를 참지 못할 때가 있었다. 아무 말 않고 골이 깊어가는 가족들에게 질려서인지, 처음엔 분노를 그런 식으로 꺼내어 놓는 그의 방식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때로는 그렇게 터져나온 어둠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우리를 멀어지게 할까봐 나는 두려웠다.


"왜 그렇게 아무 말도 않고 있는 거야? 답답하지 않아? 힘든 게 있으면 털어 놓고, 화가 났으면 화도 내고 해야 하는 거야. 그렇게 어두운 표정만 짓고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면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


너무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고 지내서인지, 나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좋은 감정도 나쁜 감정도 모두. 가끔 나를 답답해하는 그를 보며, 그 감정이 내 가족에게 느끼는 내 감정과 비슷한 것일까봐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디선가 서로에 대해 면밀히 공부하고 온 사람들처럼 우리는 서로를 소중히 여겼고 쉽게 미워하지 못했다. 특히나 꺼내 놓지 못하는 내 마음의 뒷면을 잘 읽어주는 그가 늘 고마웠다. 나 못지 않게 내게 고마워하는 그는 나와 달리 그 고마움을 있는 그대로 꺼내 보여 주며 늘 나를 안심시켰다.






노란색 집



그렇게 5년을 만나는 동안 그는 혼자 가게를 해도 될 만큼 기술이 좋아졌고, 나는 오랜 수험 생활을 끝내고 선생님이 되었다. 그는 여전히 어머니와만 간간이 연락을 했다. 우리 식구들은 뿔뿔히 흩어졌다. 수연이와 내가 차례로 집을 나왔고, 우리가 없기 때문에 함께 있을 필요가 전혀 없어진 엄마와 아빠도 얼마 안 가 따로 살게 되었다. 2년 전 수연이의 결혼식 때 외에는 딱히 서로 연락하거나 왕래하지 않고 있다. 고모는 어떻게 니네는 가족이 그럴 수가 있냐며 혀를 찼다.


"충분히 그럴 수도 있어요, 고모."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진 못했다. 각자 살고 있는 우리 넷은 모두 이전보다 나아보였다.


외삼촌의 가게가 잘 되어 그가 직접 분점을 운영하게 된 지 한 달이 되었을 때 쯤이었다. 나는 언제부턴가 밥보다 빵을 훨씬 좋아하는 여자가 되어 있었다. 그날 그는 자기가 만든 딸기 케이크를 맛보러 오라며 나를 불렀다. 맨 처음 도서관에서 먹었던 타르트만큼은 아니었지만, 그가 만든 빵은 다 맛있었다. 새로운 빵을 만들거나, 특별히 맛있는 빵을 만든 날은 나를 부르거나 그걸 가지고 우리 집으로 오곤 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어느새 우리는 치즈가 올라간 프렌치 토스트에  와인까지 마시고 있었다.


"수은아, 나 예전에 외삼촌 따라 이탈리아 간 적 있다고 했던 거 생각나? 그때 아버지 때문에도 그랬고, 어떻게 살지 막막해서 많이 힘들었거든. 처음에 며칠동안 외삼촌이랑 유명하다는 관광지를 여기저기 돌았어. 어려서 그랬는지 내 기분이 별로라서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아무리 유명하다는 데를 가도 난 별로 감흥이 없었어. 근데 나중에 여행 날짜가 며칠 더 남아서 삼촌이 이제 사람들이 많이 안 가는 데도 가보자며 포시타노라는 도시에 갔었어. 계획없이 막 돌아다니다가 배가 고파서 평범해 보이는 어떤 식당에 들어갔어. '사라체노'라는 피자 가게였는데, 손님이 우리밖에 없더라고. 괜히 들어왔나 싶었는데 다시 나가기도 그래서 주인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거든? 자기 가게에서 제일 좋은 자리라며 창가 자리로 안내를 해 주더라구. 제일 좋은 자리라 해봤자 해변도 아닌데, 뭐가 그리 좋을까 싶어 별 기대 안 하고 따라갔어. 그 자리는 그 가게의 뒷벽 쪽이었는데, 우리가 들어온 입구 반대편이 보이는 쪽이었어. 근데 세상에......그 자리에서 보이는 집들이 너무 예쁜거야. 그렇게 유명하다는 데를 많이 갔는데 내 눈엔 거기만큼 예쁜 데가 없었어. 뭔가 특별한 게 있었냐면 그런 것도 아니었거든? 그냥 좁은 거리가 보이고 여러 색깔로 칠해진 집들이 보였거든? 그 가게랑 주변에 보이던 가게들이 다 무채색이라서 전혀 그런 걸 생각지 못해서였는지, 그 자리에서 보는 집들이 알록달록한 게 너무 의외였어. 특히 노란색 페인트가 칠해진 집이 구석 쪽으로 보였는데 그 집이 진짜 이쁜거야. 그 집은 파란 창이 네 개 달린 이층집이었는데, 이층 창 아래로 핀 빨간 꽃이 진짜 이뻤어. 저런 집엔 어떤 사람들이 살까. 나도 다음에 저런 집 짓고 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한참 했었어. 어떻게 그냥 무난해만 보이는 그 평범한 가게 창으로 이렇게 이쁜 풍경이 보일 수가 있지? 싶어서 기분이 무지 좋아졌어. 피자도 와인도 너무 맛있어서, 난 지금도 이탈리아 생각하면 거기밖에 생각이 안나.


내가 너한테 타르트 줬던 날. 그 날 내가 도서관 이 층에서 너 먹는 거 보고 있었거든? 왜 그 도서관 이층 창에서 보면 벤치 쪽이 바로 보이잖아. 첨엔 무표정한 얼굴이길래, 맛이 없나? 싶었는데, 조금 먹다가 네가 갑자기 조금 웃더라구? 그렇게 한참을 웃으면서 타르트를 먹다가 갑자기 다시 표정이 굳어지더니 정확히는 안보였지만 눈이랑 코가 빨개지는 게 우는 것 같더라구. 그때 이상하게 이탈리아 가서 그 노란색 집 봤을 때가 떠올랐어. 누가 저 이쁜 웃음을 저렇게 꼭꼭 숨기게 만들었을까 싶고. 왜 맛있는 걸 먹으면서 갑자기 저런 표정을 지을까 싶고. 그 식당처럼, 그렇게 이쁜 걸 뒤에 숨기고 보여주질 못하고 있는 사람이구나 싶어서 이상하게 마음이 좀 아프더라구. 사실 그땐 네가 어떤 앤지도 모를 때였는데."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말 없이 울고 있었다. 타르트를 먹던 그날처럼.


"그 식당, 사라체노에 가서 오랫동안 노란색 집을 보고 싶어. 새벽엔 어떤지, 한낮엔 어떤지, 노을이 질 땐 또 어떤지. 밤까지 다 끝나고 다시 새벽이 올 때까지 사라체노에 앉아서 그 노란집을 계속 보고 있었으면 좋겠어.


수은아 우리 결혼하자."


눈물이 넘쳐서 어깨까지 들썩이게 된 나를 그가 꼭 안아 주었다.





사라체노



해가 잘 드는 커다란 창가에 연한 색의 원목식탁. 나는 그 위에 같은 색의 라떼를 놓으며 앉는다. 매일 아침 네 식구가 둘러 앉아 이렇게 빵을 먹는다. 집안 가득 달달한 에그타르트 냄새가 난다. 내 맞은 편엔 나를 꼭 닮아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새까만 작은 딸이 앉아 있다. 작고 통통한 손에 아빠가 만든 타르트를 쥐고. 그 옆에서 남편이 이유식을 떠먹여주고 있다.


"여보 예은이는 아직 타르트 주지 마. 단 거 먹어 버릇하면 밥 안 먹는단 말야."

"아 맞다! 미안~ 우리 예은이는 타르트 먹지 마라네요 엄마가~"

"따으뜨 마이떠~따으뜨!!"

"우리 예은이 타르트 마이떠?! 하하하 안 되겠다 수은아, 좀만 먹이자~"


남편은 예은이를 번쩍 들어 예뻐 죽겠다는 듯 볼에 뽀뽀를 한다. 그리고 자기 앞에 앉히고는 예은이의 볼에 묻은 타르트를 냅킨으로 닦아준다. 예은이 손에 든 타르트를 뺏아 작게 잘라서 조그만 입에 넣어 준다.


"아빠 나도나도~ 나도 먹여줘~!"


내 옆에 앉은 큰 딸이 보챈다.


"예림이는 엄마가 먹여 줄게. 뭐 주까? 타르트? 베이글?"


예림이는 예은이가 먹고 있는 타르트를 가리킨다. 나는 예림이 입에 자른 타르트를 넣어 주며 따뜻한 라떼를 한 모금 마신다.


"수은아 나 이제 내려가 봐야겠어. 오늘 타르트 좀 일찍 구워놔야 돼. 오전에 포장 예약이 많아."

"그래? 얼른 내려가 봐. 예은이 나한테 주고~"


남편은 예은이가 태어나고 나서, 삼촌에게서 독립했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으로 이사하며 아래층에 자기 가게를 열었다. 에그타르트와 라떼가 시그니쳐인 '사라체노'라는 이름의 베이커리 카페.


내 품에 안긴 예은이의 몸이 작고 말랑말랑하다. 선명한 행복이 만져진다. 너무 좋아서 나는 예은이 볼에도 뽀뽀를 하고, 옆에 있는 예림이 볼에도 뽀뽀를 한다.


아이들 볼에 묻은 타르트 향이 내 입에 묻어 있던 라떼 향에 보태진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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