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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Jul 09. 2021

라떼와 타르트에 대한 수필 2

사라체노


https://brunch.co.kr/@redangel619/298






성격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누군가 장난을 치는 걸까. 그건 아닐 것 같다. 장난도 재밌을 것 같은 사람한테 치겠지? 나처럼 잘 웃지도 않는 사람에게 장난을 칠까. 아무 반응도 없을텐데. 아니면 혹시 나를 해치려고? 그러기도 힘들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특별히 선의를 내보이지도 않았지만 악의를 표현한 적도 없다. 특히나 도서관에만 다닌 2년 동안은 이 곳에 있는 사람들과 거의 말을 섞지 않았다. 종종 식당에 내려가 “정식 하나요.” 이런 말을 했을 뿐이다. 어느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호의를 가지고 내게 누군가가 이런 걸 줬다고 생각하기도 힘들지만, 장난과 해침과 호의 중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쪽은 그나마 호의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원하는 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 적이 언제였을까. 언젠가부터 원치 않은 결과를 그저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 안에서 아주 작은 개선을 이루며 살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일은 내가 원한 것이었을까. 좀 기분이 좋아진 걸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혹시 내가 예상치 못할 좋지 않은 일이 있다고 해도, 그냥 나는 좋은 기분을 유지한 채 머핀을 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해가 잘 드는 좋은 자리', '라떼랑 같이'. '좋은 하루' 같은 말들이 진심처럼 느껴져 믿고 싶었다. 내가 그나마 내 기호를 표현할 수 있는 두 가지. 그 두 가지가 적힌 하얗고 작은 종이를 조심스럽게 접어 다이어리에 끼워두고, 라떼와 머핀을 가지고 도서관 밖으로 나왔다.


날씨가 좋았다. 수연이 같은 애들은 이런 날 애인을 만나 아침과는 다른 점심과 저녁을 먹겠지. 성격을 환경 탓이라 믿어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지만, 수연이가 그러지 못하게 했다. 우리는 거의 똑같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수연이는 나와 너무 다른 사람으로 자랐다. 한때는 그애처럼 살아볼까란 생각도 했지만, 이내 그만뒀다. 잘 지내는 걸 포기한 건 아니다. 나는 나대로의 방식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겉보기에 건조해 보여서 사람들은 종종 내 삶의 태도에 대해 오해한다. 비관적이거나 체념적일 거란 뻔한 틀에 나를 담는다.


"너도 좀 재밌게 살아봐."

"축 쳐져 있지말고 힘 좀 내봐."


이런 말 앞에서 나는 당황하곤 했다.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내가 재미없게 사는 것은 아니며, 조용히 살 뿐이지 축 쳐진 것이 아니라고 오해를 풀어 주려다가 그만 두었다. 풀려할수록 더 굳건해지기도 하는 것이 오해라는 걸 알 것 같아서.


그들의 오해와 다르게 나는 내 나름으로 삶을 내치지 않고 끌어 안는 방식을 터득해 왔고, 그런 태도가 일정 부분 내 성격이 되었을 것이다. 흑백 사진 같은 얼굴에 옅은 립스틱을 바르거나, 도서관을 오르며 라떼를 마시는 것. 그런 것처럼 나는 무미한 일상을 어떻게든 천천히라도 앞으로 끌고가고 있었고, 언젠가는 나도 (수연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소박하게나마 내 삶을 꾸려갈 힘을 얻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가지고 있다.  


엄마와 아빠의 불화가, 그것으로 인한 매일의 침묵이 내게 묻어있지 않을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묻은 것일 뿐, 새겨진 것은 아니다. 부모의 불행에 자식이 무조건 종속될 거라 믿는 것은 편견이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가루가 되어 삭아내린 성을 다시 쌓을 순 없다. 나는 다소의 자책을 안고라도 다른 성을 쌓을 것이다. 내 몸에 묻은 어쩌지 못할 불행을 붙들고 그럴 필요 없을지도 모르는 슬픔을 과장하고 싶지는 않았다.


너무 거대한 꿈을 꾸는 사람들은 작은 균열에도 쉽사리 무너진다. 나는 내게 어울리는 옷처럼, 소박하지만 나를 만족시킬 수 있는 소소한 삶을 원하기에 큰 흔들림에도 의연한 편이었다. 스스로에 대해 자부심이 있진 않지만, 나는 내 다가올 삶을 잘 받아들이고 끌어안아갈 힘 정도는 내게 있다고 믿고 있다. 머핀의 주인이 나를 오해했다 해도 나는 특별히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머핀


머핀은 밀도 높게 달콤했다. 내 손에 들어오게 된 과정 때문인지 나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 기분이었다. 라떼랑도 잘 어울렸다. 비어있던 속이 부드러운 것과 달콤한 것으로 꽉 채워진 느낌이었다. 낯설었다. 낯을 가리는 나는 이럴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몰랐다. 혹시나 어디선가 나를 볼 머핀의 주인이 내 얼떨떨한 표정을 보고 실망하면 어쩌나. 그런 생각에 표정이 더 어두워졌을지도 모르겠다. 기쁨이나 설렘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말이나 표정으로 자연스럽게 바로 뱉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긴 했다. 기쁨이나 설렘은 그걸 느끼고 스스럼없이 표현하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런 감정을 느낄 때 언제나 내가 그 감정을 온전히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주눅이 들곤 했다.




에그타르트


수요일마다 나는 빵을 받았다. 머핀을 시작으로 마들렌, 마카롱, 타르트가 차례로 내 자리에 놓여 볕을 받고 있었다. 타르트가 놓이던 날.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워요.
우리 한번 볼래요?
괜찮으시면 내일 11시에
1층 등나무 아래 벤치에서 기다릴게요.


공부를 하기가 힘들었다. 집에는 가기 싫었기 때문에 계속 앉아서 내일을 상상하고 계획했다. 그리고 조금은 주저했다.


타르트는 머핀과는 다른 맛이었다. 더 맛있지만 더 조심스러웠다. 바삭바삭하게 부서지는 겉. 그 안에 액체처럼 부드러운 속이 있었다. 연약한 그 맛을 놓칠세라, 나는 씹지 않고 오랫동안 입 안에 담고 혀로 굴리며 음미했다. 먹는 것에 이토록 공을 들였던 적이 있었을까. 먹어야만 하는 것을, 함께 먹어야만 하는 사람들과 둘러 앉아, 마지 못해 입에 꾸역꾸역 넣었던 나의 지난 식사들이 떠올랐다. 입 안에서 구르던 타르트가 목을 넘어갈 때 나는 조금 울었다.




이런 날은 무슨 옷을 입어야 할까. 내게 한 달 동안 빵을 먹인 그 남자가 어떻게 생긴 사람이든, 나는 그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그가 이미 내 얼굴을 보았다는 것에 안심이 되긴 했지만, 그가 생각하는 내 이미지에 부합하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알아봐 준 내 안에 있는 좋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꺼내어 보여주고 싶었다.


청바지에 하얀 린넨 셔츠를 또 입었다. 가끔씩 발랐던 수연이의 립스틱 중 가장 연한 색이 오늘은 하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것보다 조금 진한 걸 최대한 얇게 발랐다. 다행히 나만 알 것 같은 차이였다. 머리를 어깨 뒤로 넘기고, 거울을 보며 한번 웃어봤다. 어색한 게 웃겨서 좀더 크게 웃었다. 두번째 웃음이 훨씬 자연스러워 마음에 들었다.





한준우


머핀을 먹던 그날처럼 날씨가 좋았다.


"수은씨, 안녕하세요?!"

"혹시,,,,,,그 타르트......?"

"네 저예요. 저는 한준우라고 합니다. "

"네에...안녕하세요.  근데 제 이름은 어떻게...?"

"아,,, 수은 씨 책에 적힌 걸 봤어요. 제가 너무 실례를 많이 했죠? 일단 이거 받으시고 좀 앉으세요."


단정한 베이지색 면바지에 하늘색 데님 셔츠를 입은 그는 아이스라떼를 건넸다. 젓지 않은 라떼는 우유와 에스프레소가 두 층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쑥스러워 빨대로 빠르게 라떼를 저었다. 라떼는 금방 그의 바지와 같은 색깔로 변했다. 언제나처럼 부드러웠다.


섬세한 사람인 것 같아 좀 곱상한 외모를 상상했었는데, 생각보다 덩치가 크고 조금은 투박한 느낌이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졌다. 코도 어깨도 손도 발도 큼직큼직했다. 저런 큰 손으로 빵에 리본을 달고 그런 섬세한 쪽지를 썼다는 게 잘 상상이 안 돼 웃음이 났다.



 



*** 3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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