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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Jul 08. 2021

라떼와 타르트에 대한 수필 1

사라체노






식구


어김없이 식탁엔 네 식구가 둘러앉았다. 식구. 한 집에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 그렇다면 우리 넷은 명백한 식구다. 이렇게 매일 아침 둘러앉아 끼니를 같이 하니까. 내 맞은 편엔 아픈 사람처럼 얼굴이 검은 아빠가 앉아 하품을 한다. 아침에 일어나 아무것도 먹지 않았을 때 나는 단내가 입김을 타고 내 코에 닿는다. 나는 숨을 참는다. 아빠 옆에는 수연이가 국을 떠 먹고 있다. 나와 전혀 닮지 않은 동생. 가족 중 유일하게 일요일에 약속이 있는 수연이는 눈화장을 진하게 하고 앞머리에 핑크색 롤을 말고 있다. 내 오른쪽엔 엄마가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쌈장에 고추를 찍고 있다. 체념을 넘어 감정이 없는 표정이다. 북향이라 볕이 들지 않는 주방, 어두운 그곳을 채우고 있는 침침한 조명과 짙은 체리색 식탁, 식탁을 둘러 앉은 식구들. 모든 것이 어둡게 가라앉아 있다. 오로지 수연이만이 합성된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도드라져 보인다.


'우리'라는 말이 이제 어색한 우리는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수저가 자기들끼리 부딪거나 그릇에 닿는 소리와 씹거나 삼키는 소리만이 무거운 정적을 채운다. 말뿐만 아니라 눈길도 오가지 않는다. 우리는 상대가 보이지 않는 안경을 쓴 사람들처럼 침묵에 자연스럽게 응하고 있다.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되었나. 익숙해질 만큼 오래되었는데도 여전히 이 침묵에 나는 숨이 턱 막힌다. 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반 넘게 남긴 밥을 두고 일어선다. 의자가 끌리는 소리에 엄마는 반사적으로 내 쪽을 한번 쳐다보다가 이내 원래의 무감한 표정이 되어 자기 밥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관성


아빠가 하던 정화조 공장이 문을 닫은 건 고등학교 때였다. 이후 그걸 만회하려 벌인 사업은 모두 망했다. 한때 아빠는 매일 술에 취해 들어왔었다. 물건을 집어 던지는 소리, 뺨을 때리는 소리, 욕을 하는 소리와 화를 참지 못하고 북받쳐 우는 소리. 오랫동안 그런 소리들이 이 어두운 집의 밤을 가득 채우는 날들이 있었다. 아빠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고, 엄마도 수시로 집을 나갔다. 친구가 많은 수연이도 자주 친구 집에서 잤다. 기숙사가 있는 지방 국립대를 혼자 힘으로 졸업하고 임용 준비를 위해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 땐 집이 조용해져 있었다. 엄마 아빠가 따로 방을 쓰고 있어서 나는 수연이 방에서 지내게 되었다. 같이 방을 쓸 뿐, 수연이와 나도 서로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어른이 되면 자매는 친구가 된다는 말을 들으며 나는 갸우뚱했다. 증오가 사라지지 않은 채 식기만 한 엄마 아빠의 건조한 분위기가 우리에게도 전해진 건지, 우리는 "불 좀 꺼줘."나 "나가서 통화할래?" 같은 필요한 말만을 아주 가끔 할 뿐이었다.


어떻게 같은 집에서 이렇게 지낼 수 있는거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대답하기가 무척 곤란할 것이다. 내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기 힘들다는 점이 나를 가장 힘들게 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절정에 다다른 갈등이 결말에 이르러 해소되는 것이 당연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나를 제외한 셋은 집 밖에서 밝고 시끄러운 삶을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 집 안에는 관성으로 끈적한 침묵만이 가득했다.


양치질을 하고 방에 들어온 나는 잠깐 거울을 본다. 거울 앞에는 수연이의 섀도우와 마스카라 같은 화장품들이 널려 있다. 그것들의 뒤에 있는 로션를 열어 입과 그 주위에 바른다. 펌도 염색도 한 적 없는 새까만 생머리는 자른 지도 오래되어 가슴 아래까지 길어 있다. 살이 더 빠진 건지 눈이 좀 퀭하다. 입술에도 아주 옅은 핏기만이 비쳐서, 내 얼굴을 담은 거울은 커다란 흑백사진 같다. 너무한가 싶어 수연이의 립스틱 중에서 제일 연한 색을 찾아 발라 본다. 청바지를 꿰어 입고 그 위에는 하얀색 린넨 셔츠를 입는다. 책상 위에 디데이 달력을 한번 확인하고 아무 말 없이 집을 나선다.




라떼


시험이 187일 남았다. 이번에 또 떨어지면 그냥 일단 학원이나 기간제라도 구해서 집을 나갈 것이다. 집만 아니라면 어디든 괜찮았다. 혼자 있으면 차라리 덜 적막할 것 같았다. 그런 면에서 도서관은 마음이 편했다. 말을 주고 받지 않는 것이 당연한 곳이기 때문에. 고독하지만 자연스러웠다. 고독에도 우열이 있다. 나는 고독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고독이라면 괜찮았다.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어 라떼를 샀다. 나는 아메리카노를 싫어한다. 어두운 갈색은 우리 집 주방의 체리색 식탁이나 밤에 그 아래를 기어다니는 바퀴벌레를 생각나게 한다. 위장을 긁는 것 같은 쓴 맛도 싫었다. 뾰족한 아메리카노와 다르게 라떼는 폭신했다. 우유가 섞여 보드라워진 색깔에 빈 속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맛까지. 쓴 것이 좋다는 사람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게 안 어울릴 것 같지만 나는 포근하고 달콤한 것들을 좋아한다.




햇볕


도서관에 도착하면 내가 늘 앉는 자리가 어김없이 비어있다. 볕이 직선으로 들어오는 자리라 인기가 없다. 나는 햇볕 쬐는 것을 병적으로 좋아한다. 얼굴이 타거나, 뜨거운 것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편이다. 자리는 비어 있는데 책상 위엔 무언가가 올려져 있다. 뭐지? 누가 자리를 잡아 놓은 건가?


어? 투명한 비닐에 작은 초코머핀이 여러 개 들어 있고, 베이지색 리본이 묶여있다. 라떼와 같은 색깔이다.  일부러 신경을 쓴 것 같은 포장. 그 밑에는 작게 접힌 종이가 깔려 있다.


해가 잘 드는 좋은 자리를
늘 독차지 하시네요.

오늘 구운 거라 맛있을 거예요.
라떼랑 같이 드세요. 부담 갖지 마시구요.

좋은 하루였으면 좋겠네요.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글씨체다. 무슨 일일까. 도서관을 다녔던 2년을 통틀어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가도 마찬가지다. 남자를 만나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이런 방식은 낯설다. 나는 언제나 눈에 잘 띄지 않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어느 화면 속에 나를 넣어 놓아도 아무도 그 변화를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나는 늘 남들의 관심 밖에 있는 배경 같은 사람이었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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