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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Dec 24. 2020

너 왜 결혼을 안 하냐?

멸치를 안 먹는 것에 대단한 이유가 있어야 할까요?




"너 왜 결혼을 안 하냐?"


몇 년 전까진 꽤 자주 들었고, 요즘은 (결혼할 시기가 한참 지났기 때문에) 가끔 듣는 말. 이 질문은 뭐랄까.


"너 왜 멸치를 안 먹냐?"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이런 질문이랑 비슷한 느낌이다. 그래서 이 질문을 받으면 할 말이 없다. 그냥 맛이 없으니까 안 먹는 것이고, 이유가 있다면 오히려 멸치를 먹는 사람에게 있을 것이다.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선호에 따라 선택하는 관습일 뿐이기 때문에 애초에 대단한 이유가 없는 것이다.


"너 왜 밥을 굶어?"

"너 왜 연애를 안 해?"


이런 질문들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는 것과 다르게 결혼을 안 하는 것에는 크게 의식적인 동기가 없다. 자칭 '비혼 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은(나는 '비혼주의자'까지는 아니다. 이유가 생기면 결혼하게 될 수도 있다.) 결혼을 안 하는 것이 '기본값'이고, 이유는 결혼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야 한다고 하던데, 나도 거기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그런데  '기본값'이니 '비혼'이니 이렇게 의식적으로 명명을 해 가며  ‘선언’을 할 정도로 결혼이라는 것이 대단한 의미가 있거나 관심이 가는 일이 내겐 아니다. '비혼주의자'라는 말도 솔직히 너무 거창하게 느껴진다. 결혼이라는 게 이데올로기에다 붙이는 '주의'까지 붙일 정도로 대단할까. 멸치를 안 먹는 게 뭐가 대수라고. 전 '비멸치주의자'이구요, 멸치를 안 먹는 게 '기본값'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좀 과하게 느껴진다.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결혼을 안 하는 것에 이름까지 붙여가며 해명하는 것은, 결혼을 하고 안 하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의식하도록 만드는 세상의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이 꼰대 같은 세상이 '결혼을 하지 않으려면 뭔가 그에 맞는 대단하고 멋진 이유가 있어야 할 것만 같게 만드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세상이 분위기를 그렇게 만들든 말든 크게 동요하지 않고 내 갈 길 그냥 가는 게 내 스타일이지만, 주변에서 자꾸 물어보니 나도 모르게 이유를 자꾸 생각하게 되고, 그렇게 떠오른 이유들을 여기 한 번 적어봐야겠다.




왜 나는 그 대단한 결혼을 아직 안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연애를 좋아하고 상당히 즐기며 그것에서 큰 에너지를 얻는다.

성인이 된 이후 지금까지 약 20년 간 애인이 없었던 날보다 있었던 날이 압도적으로 많다. 나는 친구와 노는 것보다 애인과 노는 것을 더 즐긴다. (우정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고 개인적인 취향을 말하는 것이다.) 취향(개그 코드 같은 사소한 것들 포함)이 비슷한 것, 깊은 교감이 가능한 것, 서로에게 집중하고 서로를 지지하는 것, 서로의 고유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등이 내가 사람을 만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인데, 이러한 것들은 친구와의 관계에서보다 애인과의 관계에서 훨씬 더 만족도가 높다.


*이미지 출처: 영화 '노트북'


그런데 결혼을 하면, 연애를 할 수 없다. 물론 아이를 낳지 않고 연애하듯 살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진짜 ‘연애’는 서로를 사랑하여 재미있게 같이 노는 것 외에 ‘의무’나 ‘책임’ 같은 무거운 것이 끼어들지 않는 것이다. 근데 결혼을 해서 공식적인 부부가 되면 내가 생각하는 이런 ‘연애’는 하기 힘들다.


내가 연애를 좋아하는 이유는 일정 부분 ‘일탈 있기 때문이다. , 경제 활동, 사회관계 같은 일상적 의무에서 벗어난 것이 ‘연애인데, 결혼을 하게 되면 연애는 일상적인 것이 되고 연애가 가진 핵심인 ‘일탈성 훼손된다. 많은 결혼한 사람들이 연애가 가진  달콤한 ‘일탈성 좇다가 외도를 하게 되는데 그것은 가족을 기만하는 행위가 되고 만다. 사랑하는 상대가 바뀌는 것은 동물인 인간에게 지극히 원초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인데, 결혼해서 이혼이라도 하게 되면 얼마나 많은 정신적, 물질적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 결혼을  하면 그냥 하면 되는 연애가, 결혼을 하면 기만적 범법 행위가 되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결혼한 친구들은 결혼이 주는 ‘안정감’이나 ‘영원한 내편’ 같은 것이 네가 원하는 일탈성보다 더 큰 만족을 줄지도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 나는 연인과의 관계에서 서로에 대한 지지와 깊은 교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미 연인에게서 ‘영원한 내 편이 주는 안정감’은 충분히 느끼고 있기에 결혼으로 그것을 굳이 더 얻을 필요를 못 느낀다.


또 내가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는 원치 않는 것에 너무 많은 돈과 시간(=삶)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게 되면 우선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꾸려가는 것에 가지고 있는 시간과 버는 돈의 대부분을 써야 한다. 물론 그것에 평생을 바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는 분들의 선택과 삶에는 경의를 표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가치를 두는 부분에 돈과 시간을 쓰는 것이고, 그것이 무엇이냐는 각자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것보다는 그때그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재밌고 편하게 사는 것에 좀 더 큰 의미를 두기 때문에, 결혼을 해서 그것에 내 삶을 쓸 생각이 지금은 없다.




종종 '결혼한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아 보인다'는 이유로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을 본다. 그런 생각에는 동의하기가 힘들다. 관습 하나를 선택하냐 마냐에 따라 행불행이 결정될 만큼 우리 삶이 단순할까. 주변만 봐도 결혼으로 행불행의 경로가 바뀌는 사람은 잘 없다.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들은 결혼을 해도 행복하게 잘 산다.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지만,  결혼이라는 관습이 나의 기질에 적합하지 않아서 선택하지 않을 뿐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의 선택을 나의 선택과 비교해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각자의 기질에 맞는 선택을 하고 그것에 책임을 지며 자기에게 어울리는 행복을 찾으면 그뿐이다. 나는 나와 다르게 사는 이들의 삶과 가치를 존중하며, 그들의 삶에서 내 삶과 다른 아름다움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많은 비혼자들이 결혼을 안 하는 것에 대해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 집 한 채 마련하기 힘든 경제적인 상황 같은 거창하고 심오한 사회 문화적인 이유를 대지만


나는 사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결혼하지 않는 것이다. 나의 기질, 즉 내가 무엇에서 행복을 찾는가를 알기 때문에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근데, 여기 쓴 건 아주 깊고 진지한 내 진짜 생각이고 평소에 다른(별로 안 친한) 사람이 내게 사비나 씨는 왜 결혼 안 해요?라고 물으면


“저 능력이 안 돼서 결혼 못해요.”

“내년에 하려고요.”


라고 그냥 얼버무린다. 귀찮아서. 사실 오해해도 상관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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